브런치북 어글리 01화

어글리 01

바이올린 여신과 거리의 악사

by 햇빛투게더

생일... 누군가에겐 최고의 기념일, 먹고살기 바쁜 누군가에겐 거추장스러운 날, 누군가에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 또 누군가에겐 드물게 ‘환멸’이다. 환..멸. 꿈과 기대와 환상을 멸하는 바로 그것.

선호에게 생일이란 네 번째 유형의 형벌이다. 평범히 잘 지내가다도 생일이 훅 다가오면 가슴에 3줄의 호랑이 발톱자국이 그어진달까.




선호는 그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생일 케이크도 없이, 먹기 싫은 미역국도 없이,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로봇 선물도 없이 엄마와 은호가 떠나버린 날이었다. 그때 겨우 선호는 여덟 살이었다.

그날 선호는 늦잠을 잤다. 눈 비비고 거실로 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훑어보다 창밖을 내다보니 엄마와 은호가 택시 앞에 서있고 기사님은 트렁크에 커다란 가방을 싣고 있었다. 선호는 맨발로 뛰쳐나갔다.


“엄마아~ 선호는...? 나도 데꼬 가~”


파자마차림의 어린 선호는 택시를 타려는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엄마아~ 나도 갈래, 엄마랑 살래~”


그때의 엄마는 성가신 얼굴로 어린 선호를 떼어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들 따윈 아랑곳없이.


“들어가 있어. 할머니 곧 오실 거야.”

“싫어. 안 해~”


먼저 타고 있던 어린 은호도 택시에서 내려왔다.


“오빠도 같이 가~ 엄마아..”


아이들이 울며불며 엄마에게 매달리지만 역시나 매몰차게 떼어냈다. 엄마의 완력에 털썩 주저앉은 선호를 보고도 엄마는 어린 은호를 택시에 쑤셔 넣고 문을 닫았다.




지금 같으면야 선호 쪽에서 얄짤없을 것이다, 허나 그때 선호는 어렸다. 여덟 살에 엄마란 존재는 우주 그 자체다. 엄마와 분리된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십여 년이 흘러 은호는 해령(엄마)의 원대로 클래식계의 젊은 거장이 되었다. 선호는 알량한 형편에 음대에 진학하지 못했고 4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대학, 평범한 학과를 나와 거리의 악사로 활동 중이다. 선호에게 허락된 무대는 ‘거리’ 뿐이었으니까. 이 무대라도 지키기 위해 갖가지 생활 알바를 하며 생존력을 높인다.

누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다. 가족의 빈자리를 음악으로 충당하고 있을 뿐. 거리의 무대지만 그 안에선 행복한 거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봉이다.


“야, 한선호. 내려와서 케키 불 꺼.”

“지치지도 않냐, 내가 언제 생일 챙기든?”

“지치지도 않냐, 내가 언제 케키 안 챙기든?”

“지가 먹고 싶어서 사놓고 꼭 내 핑계 대더라.”

“어허... 니노무새끼 먹일라고 알바했다고. 튀어와라.”


최봉이. 초딩 때 짝꿍이자, 이웃이자, 가족이 버린 소년 곁을 지켜준 소녀는 어른이 되고서도 그 빈자리를 살뜰히 채워줬다. 성가실 때도 많지만 선호에게 이 아이가 없었다면 그 삶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래도 서로 만만한 사이라 고마움은 저 마음 깊숙이 처박아두련다.


오늘은 인디밴드의 거리공연에 초대되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연미복재킷, 하얀 반가면, 선호 특유의 곱슬머리, 그리고 일렉 바이올린.. 이것이 거리의 악사 선호의 시그니처다. 악기와 가면과 의상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선호가 차에 짐을 싣고 운전석에 오르는데 누군가 귀를 잡아당겼다.


“잡았다, 요 녀석.”

“놔라, 최봉이. 안 놔? 어?!”

“미역국 먹구 가라고.”

“야야, 놓고 얘기해. 미역국 싫다고.”


결국 귀잡혀 봉이네 식당으로 끌려가는 선호다. 힘으로야 한 줌도 안 되는 봉이를 단박에 걷어낼 수 있지만 이렇게 순순히 귀 잡혀 주는 건 선호가 표현할 수 있는 고마움의 최대치다.


“아들내미 왔냐.”


국밥집 가게 안의 봉이네 아저씨가 반갑게 선호를 맞았다.


“귀빠진 날이지?”

“네, 이 댁 따님 때문에 귀빠지겠어요.”


봉이는 선호를 테이블에 앉힌 후에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봉이가 아침부터 저 난리다.”

“아저씨 생신에도 쟤 저래요?”


봉이는 미역국 한 대접과 잡채, 섞박지 쟁반을 들고 식당 주방에서 나왔다.


“한우 넣고 끓인 거야. 뚝배기 바닥 보일 때까지 못 일어난다, 너.”


선호가 짧은 한숨과 함께 크게 한술 뜨는 동안 봉이네 아저씨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들내미!!!! 니 동생 아니니?”


봉이네 아저씨가 리모컨을 눌러 음량을 크게 올렸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레어 한이 귀국했습니다.>


앵커는 연신 클레어 한을 띄우며 호들갑을 떨었다. 늘 이런 식이다. 한국의 자랑이 된 은호가 몇년에 한 번씩 귀국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난리가 났다. 온 세상이 떠들어대는 통에 잊고 살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다. 은호가 온갖 뉴스와 이슈를 몰고 다니는 통에 선호는 원치 않아도 그들의 궤적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이 선호의 삶에 느닷없이 등장할 때마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여덟 살 꼬맹이로 기어이 역행하고 만다. 왜 버려지는지 납득조차 시키지 않고 매몰차게 떠나버린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다 결국 선호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저 뼈와 살을 내어준 [생. 모.] 그뿐이다.


“니 엄마 맞지?”


미역국을 먹던 선호는 대답 없이 분노의 저작운동 중이다. 케이크에 촛불 붙이고 주방에서 나오던 봉이는 화들짝 놀란다.


“니 엄마가 더 신났다. 지가 연예인이고 모고..”


TV 속 은호는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오히려 더 근사해 보였고 그 옆에 엄마란 작자는 여왕처럼 차려입고 오버액션 중이지만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마치 자신이 ‘클레어 한’인 것처럼.


“아빠, 쫌..!!”

“선호야, 니 동생 봐라. 어릴 때도 그렇두만, 너랑 똑같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니까.”


여전히 선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봉이는 아빠의 눈치 없음에 고개를 절레거리며 TV를 꺼버린다. 선호는 굳은 얼굴로 일어선다.


“잘 먹었다.”

“야, 케키는!!!”


선호가 씁쓸한 얼굴로 나가자 봉이가 아버지에게 한 소리 한다.


“아빠. 눈치 좀 챙겨.”

“내가 뭐~”

“선호가 대답 안 하면 못 들은 게 아니라 듣기 싫다는 거야.”

“지 애비를 그렇게 살뜰히 챙겨봐라.”

“자꾸 그럼 콩나물 안 다듬어.”


봉이는 속상한 얼굴로 선호가 남긴 음식을 치웠다. 저 아줌만 하필 이때 TV에 나오고 난리야. 우리 애 밥맛 떨어지게.





선호는 그들이 오든 말든 죽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얼굴을 보니 착잡해졌다. 선호 기억에 단 한 번도 엄마였던 적이 없던 여자다. 그럼에도 이토록 태풍급 영향을 받는다.

허나 이제 와서 어쩌랴... 선호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걸. 그 어리고 여린 소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 다짐해 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여보세요.”

“한국 왔다.”


젠장... 은호, 그 애다.


“왜 대답이 없어. 오늘 뭐 해. 얼굴 좀 보자.”

“이 번호는 또 어떻게 알았냐.”

“애쓰지 마. 무조건 오빠 너 찾아낼 거니까.”

“살던 대로 사셔. 오늘 나 일정 있어.”

“나 미운 거 아는데.”

“제발 남남으로 살자, 어?!”

“나 그때 같이 울어줬다. 기억나지? 택시 앞에서.”

“그러니까 말이라도 섞어주는 줄 알아. 끊어.”




은호는 씁쓸한 얼굴로 휴대폰을 닫았다.


“여전하네. 한선호”


은호는 통화 때와는 달리 웃음 머금고 얼굴로 연습실을 나왔다. 건물 앞 엄마는 반짝이는 명품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은호를 재촉했다. 짜증 나.. 저 액션... 은호는 벌써 숨이 막힌다.


“실수 다섯 번 했더라. 문자로 틀린 파트 체크해 보냈어.”

"틀린데 없어."

"감정이 틀렸어."

"내 감정이야."

"그게 틀렸다고."


말을 말자. 말어.


“쉬겠다는 사람 앞세워 기어코 연습시키더니 실수랍시고 카운팅을 해?”

“니 명성에 내 지분도 있어.”

“이러니까 자꾸 월권한다 소릴 듣지. 엄만 그냥 내 모친이야. 감투 쓴 거 아니라고.”


해령의 휴대폰 울리면, 액정에 ‘장관님’ 뜬다. 보란 듯이 은호 얼굴에 대고 확인시킨다.


“이래도 그냥 모친이니? 난, 차대표보다 더 큰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알아?”


해령, 농염하게 걸어가며 통화한다.


“어므나... 장관님~ vip초대권 받으셨죠? 네, 지금 리허설 끝내고 가려구요. 우리 애가 워낙 연습벌레잖아요. 우리 클레어, 젊은 거장 소리 들어요, 요즘.. 네네~ 꼭 와주실 거죠?”


해령은 과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일각으로 사라졌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엄마의 뒷모습 보던 은호는 빈 택시를 세워 올라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와 통화하는 엄마를 쯧, 하고 바라본다.




거리 버스킹 무대에서 인디밴드는 강렬한 노래를 하고 있다. 간주가 시작될 타이밍에 그룹 리더가 선호를 소개했다.


“일렉트로닉 바이올리니스트, 어글리!”


강렬한 조명과 함께 등장하는 반가면의 선호는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물론 대다수가 인디밴드의 팬들이겠지만 내 팬클럽도 70여 명은 된다. 신기하기도 하지...

선호의 강렬한 연주는 짧게 마무리된다. 퇴장하려는 그때 선호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환호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폴짝거리는 젊은 여자. 볼캡을 눌러썼지만 선호는 그녀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봤다.


한은호다.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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