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1화

어글리 11 _어글리 비긴즈 1

by 햇빛투게더

빙빙 도는 호텔룸의 조명을 바라보며 카펫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린 해령은 은호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신세한탄 중이다. 가누지도 못하는 몸뚱이를 버둥거리는데..


“은호, 이 나쁜 기집애..!”


억울했다. 서운했다. 하지만 진짜 원망은 선호를 향했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난생처음 폴링 인 럽



촉망받던 예고시절, 오늘날의 은호처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자 했던 해령이다. 이 전국구 천재소녀는 미국의 명문 음악대의 유학의 길도 열렸더랬다. 유학 대비 영어과외를 하면서 처음 만난 대학생 오빠 한형순에게 첫눈에 반했다.

공부 외에, 바이올린 외에 일절 관심이 없던 해령이 처음 맛본 신세계-

형순은 꼬맹이 해령에게 지엄하게 선을 그었지만 이미 형순에게도 설렘 가득 변화가 시작되었다.


“쌤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예요.”

“책 봐.”

“누가 자기랬나. 쌤 같은 사람이랬지.”

“까불지 마, 꼬맹이.”

“꼬맹이 아닌뎅.. 아직 안 까불었는뎅..”


당돌하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해령이 당혹스러웠지만 사실 막 들이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어어어.. 하는 사이 빠져들었고 급기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낸 혜령에게 하늘이 무너질 고민이 생겼다. 유학을 떠날 무렵 배가 불러왔고 엄격한 부모에겐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해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녀의 부모는 더 세속적인 사위를 원했다.


형순의 꿈같은 프러포즈에도 겁이 덜컥 난 해령은 아이를 어쩌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때, 그 아이가 발로 차지 않았다면 아마도 해령답게 수술대 위로 튀어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 순간 발동된 모성은 결국 해령을 주저앉혔고 그 잘난 부모에게 장렬히 내쳐졌다.



한정적 모성



선호를 낳은 후 한동안은 눈부시게 행복했다. 아기 선호도 너무 예뻤고 형순 또한 다정하고 근사한 남편이었다. 그래, 언제든 기회는 또 올 거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유학에 도전하리라 마음먹었다. 밤새 땡깡부리는 아기 선호를 돌보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 게다가 일 때문에 정신없는 남편 형순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독박 육아에 독박 살림도 척척 해내고 둘째 은호 출산까지 이어지며 한동안 이 어린 엄마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마음속의 토네이도



그러던 어느 날 예고 동기 송주희의 콩쿠르 수상 소식을 듣고 해령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예고시절 해령의 스타일과 주법을 따라 하던 듣보잡 송주희의 수상은 해령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간에 누렸던 그녀의 행복은 옅어지고 예민해졌으며 아이들을 방치하고 형순과도 다투기 시작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부엌데기로 바뀐듯한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다. 그 멍청한 동기년이 그 권위 있는 콩쿠르 대상이라니 말도 안 돼!! 저건 내 것이어야 해! 내 길이었어야 해!! 육아와 가사 스트레스가 천만 배로 밀려왔고 초라한 일상이 지긋지긋해졌다.


삐딱선을 탄 한동안 해령 대신 일과 육아, 살림을 전담하던 형순도 힘에 부치고 결국엔 지방에 사시던 모친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시모가 같이 살자 해령은 더 히스테릭해졌다.

차라리 그때 해령이 형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좋았겠지만 속마음을 감춘 채 밑도 끝도 없이 발작버튼이 눌리니 모두가 지옥이었다. 갑작스러운 해령의 돌변에 당황한 건 형순이다. 특히나 모친에게 함부로 하는 해령에게 질려버린 형순의 실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몇 년을 허비한 해령은 이혼을 하고서라도 다시금 재기해야 했다. 그 집의 하숙생처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고 오직 바이올린에만 집중했다. 꽉 막힌 내 길을 돌파해야 한다.

남편 형순과는 상의하지 않았다. 어차피 반대할 테니. 그간의 내 희생이 있으니 너는 무조건 이해해.. 하는 마음이었다.


예고 졸업 후 입학하려 했던 명문 음대에 다시 지원한 해령은 연주영상을 제작하며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송주희 딱 기다려라. 너 따위는 금방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어!!



걸림돌



분위기는 해령의 의도대로 흘러가는듯 싶었다. 이제 준비는 거의 되어가고 형순에게 유학비를 요구하든 이혼을 하든 양단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마음은 홀가분했다.


오랜만에 가족을 위해 큰 솥에 곰탕을 끓였다. 아가들이 잘 먹기도 했고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어쩌면 마지막 끼니일지도 모르겠다. 서너 살의 아이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본 엄마에게 달려들어 동선을 엉클었다. 선호 은호는 엄마의 양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징징 댔다.


“선호, 은호 데리고 저리 가. 얼른.”

“엄마아...”

“엄마아...”

“얘들이 진짜 왜 이래. 가라고 좀.”


은호는 엄마가 소리치자 울면서 저쪽으로 가는데 선호는 계속 매달렸다. 선호를 떼어내고 홱 돌아서는데 뜨거운 곰탕솥이 휘청한다.


“까악...!”



선호가 사달이다



병원으로 실려간 해령은 절망했다. 펄펄 끓는 곰탕이 해령 쪽으로 쏟아졌고 왼손가락 2개가 오그라들었다. 변형되어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는 손.. 그녀의 꿈은 그렇게 강제종료 되었다. 생애 가장 가혹한 순간이자 금쪽같은 아들에 대한 미움이 시작된 지점이다. 첫 번째 유학은 선호가 생기면서부터, 두 번째 유학은 선호가 매달리는 바람에 어그러졌다. 이제 송주희를 이길 방법은 없다.


병원에 온 어린 선호는 엄마의 병상 위로 올라와 품을 파고들었다. 해령은 그런 선호가 미웠다. 선호가 울며불며 매달리지만 해령은 차갑게 내쳤다. 그날 이후 해령은 선호를 단 한 순간도 안아주지 않았다. 선호의 서러운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태어날 때부터 넌 나의 발목을 잡았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넌 엄마를 잃었을지 몰라도 난...

세상을 잃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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