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2화

어글리 12 _어글리 비긴즈 2

by 햇빛투게더


해령의 편애는 그 사고 이후 극심해졌다. 은호는 엄마의 품을 차지해서 기뻤고 선호는 동화 속의 신데렐라 계모를 매일매일 울면서 대면했다. 선호의 기억 속에는 자신의 실수가 없었기 때문에 늘 아빠의 품에서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어디에선가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해령은 화들짝 놀랐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보니 선호가 그 작은 손으로 엄마를 흉내 내고 있었다. 물론 어린 선호의 연주는 아직 손 볼 데가 많았지만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건가.. 해령은 선호에게서 일말의 가능성을 느꼈다.


내 꿈은 너로 인해 강제종료됐지만 어쩌면 저 아이를 잘 키워낸다면 내 꿈은 이어질 수도 있어!!


그 길로 나가 어린이용 바이올린 2개를 사들고 왔다. 은호와 선호에게 하나씩 쥐어주고 바이올린 영상을 보여줬다. 한동안 엄마를 독점했던 은호는 엄마가 선호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질투하기 시작했다. 더 어린 은호보다는 확실히 선호가 두각을 드러냈다. 그래, 이거야. 내 꿈을 선호에게 이식하자. 어쩌면 하늘이 일깨워준 이 기회를 꼭 되살리고 말리라 마음먹었다.

그 속을 모르는 형순은 해령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손에 피가 맺힐 정도로 고강도 훈련을 하자 해령과 매일 싸웠다. 형순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 와중에 선호는 더 이상 바이올린이 재미없었다. 엄마의 사랑이 고파서 처음엔 신나게 공부했지만 화내고 다그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공포는 반항이 되고


해령의 1차 목표는 어린이 콩쿠르. 선호 네가 용서받을 길은 이 작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것이다. 보타이에 올백머리, 정장까지 맞춰 입은 선호는 그 무대가 너무 겁이 났고 급기야 연주는 하지도 못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극대노한 해령은 그 자그마한 선호에게 매를 들었다. 피멍 든 손가락이 아물기도 전에 종아리에 여러 줄의 상처가 그어졌다. 아마 그때 형순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선호의 여린 종아리는 터지고 말았을 것이다.


“너, 이거 학대야. 알아?”

“그럼 쟤가 나한테 한 짓은 뭔데?”

“사고지. 그게 엄마가 할 소린가?”

“그러는 당신은? 도대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한 번 눈이 돌아버린 해령은 좀체로 돌아올 줄 몰랐다. 이런저런 핑계로 시모를 굳이 지방 본가로 보내버린 후라 아이들은 부모의 살벌한 전쟁에 아이들은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콤플렉스야.”

“뭐라구?”

“그 동창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선호를 위한 게 아니라.”

“뭘 안다고 떠들어? 송주희 걘 내 라이벌 주제도 못됐어!!”

“이젠 아니지!! 제발 정신 좀 차려. 널 직시하라고!”


형순도 말해놓고 아차 했지만 누적된 분노가 비아냥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그 말에 제대로 긁혔던 해령은 발작버튼이 눌려 온갖 세간을 떄려부숴버렸다.




불행은 떼 지어 온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잠들고 형순은 특히나 선호의 피멍 든 손가락과 종아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난생처음 결혼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해령은 믿을 수 없는 엄마, 환멸스러운 아내가 되어버렸으니까.

형순도 평균나이보다 이른 결혼이었다. 해령의 임신 소식에 당황했지만 기뻐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문중에서 내쳐지기까지 한 해령이었기에 책임감은 더 묵직했다. 이 어린 아빠는 꼬물거리는 아이들을 와락 안고서 평생 사랑을 듬뿍 주리라 다짐했었다. 해령이 니가 싫다면 나 혼자라도 한다.


고향에서의 이른 아침, 눈을 뜬 형순은 화들짝 놀랐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맨발로 뛰어나온 형순에게 모친은 웃으며 집 앞 바다 저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까르르 거리는 내 소중한 아이들... 형순은 환한 미소로 뛰쳐나갔다.


아이들을 둘러메고 바다에서 한바탕 뛰어놀았다.


“바다가 너무 예뻐요, 아빠.”

“너희가 훨씬 예쁘거든?!”

“진짜요?”

“그럼, 아빠 눈엔 우리 선호 은호가 천만 배 더 예뻐.”

“바다가 너무 넓어요, 아빠. 끝이 보이지 않아.”

“저 바다 보다 아빠가 너흴 더 사랑해.”

“저렇게 넓은데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천만번 왔다 갔다 해봐. 그거 보다 아빠가 너흴 더 사랑해.”


아빠의 너른 어깨 위에 올라앉은 은호와 선호는 까르르 웃었다.

이 아이들이 훗날 이날을 기억하지 못한대도 사랑스러운 눈망울에 가득 담긴 새벽바다와 아빠의 든든한 어깨와 이 웃음소리는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랐다.


형순은 어머니에게 맡기고는 다음 스텝을 위해 급하게 다시 서울로 향하기로 한다. 어머니는 형순이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다며 아이들 걱정은 말라했다. 형순은 문 앞에서 매달리는 아이들을 다시금 와락 안아주고 차에 올랐다.


직장부터 고향 근처로 옮기고, 반드시 이혼한다.. 결심했다. 아내를 짓누르고 있는 성공에 대한 욕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욕망으로 인해 아이에게 상처 주는 꼴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아빠 금방 올게...’ 했던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서울로 향하던 그 길에 아빠는 트럭의 전복사고에 희생양이 됐으니까...




해령의 두 번째 구원자, 은호



형순의 상을 치르는 동안 아이들은 집 앞의 바다에 있었다. 어른들이 문상객을 맞이하면 아이들은 철없이 모래놀이를 하기도 했고 할머니의 눈물에 같이 따라 울기도 했다. 이 어린아이들은 ‘죽음’이라는 낯선 개념 앞에 쉬이 섞이지 못했고 그저 ‘금방 올게.’ 했던 아빠의 부재가 막연히 슬펐을 뿐이다. 그 그리움이 훨씬 더 컸던 선호가 침울해하자 은호는 고사리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며 선호를 위로했다. 선호는 엄마로 인해 바이올린이 싫었지만 은호가 어깨너머로 터득한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해령은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한 은호의 천재성에 무릎을 쳤다.

은호로구나.. 나를 구해줄 작고 귀여운 구원자...

이혼 직전까지 갔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시모도 둘 사이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지 서류준비까지 했던 건 몰랐다. 해령은 형순의 죽음과 동시에 보상금과 알량한 재산 등을 빠르게 현금화했다.



할머니 이야기



형순의 모친은 아들의 장례식 때 회사 동료가 가져다준 소지품 박스를 받아 들고 오열했다. 해령은 탁상용 선풍기, 책, 방석, 카디건 등등이 들어있는 이 박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어미는 달랐다. 아들의 체온과 손길이 가득한 물품들에 얼굴을 묻었다.


차마 태우지 못하고 귀한 아들이 넘겼을 책장을 들추다가 두 사람의 직인이 찍힌 이혼서류를 발견하게 됐다. 이 종이 쪼가리가 이제와 무슨 소용 있겠는가만 적어도 어딘지 믿음이 안 가는 며느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예상대로 해령은 수시로 선호만 시모에게 맡기고 은호만 싸고돌았다. 마치 아들은 없는 셈 치기로 한 듯...

이미 해령에겐 선이 그어진 듯했다. 시모와 선호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 외면.. 물론 아들 보상금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소중한 아들의 목숨값이 은호의 레슨과 치장에만 쓰이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선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선호를 고향의 초등학교로 입학시키려 했지만 시모는 단칼에 거절했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길로 시모는 선호를 위해 그 지긋지긋한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형순의 집 근처에 아들의 절친 봉이네 아빠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식당 반찬 좀 만들어줘요. 어무이.”


봉이네 아빠는 모친을 직원으로 고용했다. 친구의 불행이 가슴 아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형순 모친의 음식 솜씨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일자리도 생겼고 귀한 손주도 돌보며 남은 삶을 선호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모친에게 선호란 또 하나의 형순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모친의 여생도 달라졌다. 달라졌어야만 했다.


한 두 해 후, 해령은 본색들 드러냈다. 그것도 봉이네 찬거리 사러 간 그 사이, 그것도 뜬금없는 문자로 “미국 가요. 선호는 어머니가 알아서 하세요.” 그게 다였다.

그래도 지 아들인데 이 괘씸한 것이 전세금까지 진작에 빼서 오갈 곳 없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하긴 했다. 에미도 애비도 동생도 없이 남겨진 선호에게 최소한 지붕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고향의 집을 처분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서 그 집을 사수했다. 저 며느리년은 선호의 인생을 짓밟은 것이다.


모친의 목표는 하나다. 선호가 대학을 다닐 수 있게끔, 잘 곳 없어 헤매지 않게끔, 배곯지 않게끔, 장가 보낼 수 있게끔만 하자. 그래서 병을 얻을 지경으로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다. 그리고 버림받은 헛헛함 없게끔 사랑을 부어주리라.. 그게 아마 앞서 간 내 아들 형순이가 에미에게 바라는 그 하나 일 테니.



선호, 다시 태어나다



미국으로 엄마와 은호가 떠난 이후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선호가 며칠 후 평소의 모습을 보였다. TV 만와영화를 보고 웃기도 하고 알아서 숙제도 하고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선호가 묻거든 더하기 빼기 없이 솔직하게 말하리라 다짐한 할머니였다.


“아가...”

“응?”

"엄마 안 보고 싶어?"

"여기 있잖아. 선호 엄마."


그 소릴 듣고 모친은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이 어린것이 충격을 많이 받았구나... 그러나 선호는 그렁한 눈망울로 말했다.


"선호엄마는 이제 할무니야.”

“응?”

“세상에서 젤 사랑해 주는 게 엄마잖아. 그니까 할머니가 선호 엄마야.”


어린 선호는 할머니의 마른 허리를 와락 안았다.


“할무니는... 아빠처럼 선호 안아줘. 아빠가 안아주면 귀신도 안 무서워. 할무니도 그래.”

“당연하지, 귀신 천마리 와도 할미가 다 때려잡아주게. 내 새끼 내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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