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3화

어글리 13 _오빠 너 어글리 아니야

by 햇빛투게더


휴게소 이정표가 보이자 선호는 방향을 틀었다. 자는지 마는지 은호는 오는 내내 두 눈 꼭 감고 있었다.


“야. 한은호. 일어나. 휴게소야.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그때 은호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한은호!!!!!!!”


식겁해진 선호는 급히 세우고 은호를 미친 듯이 흔들어 깨웠다. 눈 감고 피식피식 웃는 은호를 보고서야 선호는 열불이 터졌다.


“야!!!!!”


은호는 눈 감은 채 선호를 놀렸다.


“암튼 낚기 쉽다니까.”

“이게 진짜..!!”


은호는 얄밉게 메롱하고 차 문 열고 나갔다. 차창 너머의 은호는 휴게소 간식거리 앞에서 기웃거리며 선호에게 손짓했다.


그래, 한은호. 놀려먹어도 괜찮다.

그렇게 삐딱하게 오빠 옆에 있어라.

그렇게 찬란히 웃고 살아.




딱 봐도 몸에 해로운 간식들을 잔뜩 쌓아놓고 은호는 허겁지겁 먹었다.


“계속 굶다가 불량식품 몰아먹으면 클 나.”

“오빠 넌, 잔소리도 듣게 좋게 하네. 잔소리에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있어.”


볼이 터져라 설탕이 잔뜩 묻은 핫도그를 먹으며 선호를 빤히 들었다.


“흘려듣지 말고.”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뭐래.”

“그런 잔소리만 들었거든. 이런 걸 ‘지삐 모른다.’ 하던가.”

“너네 엄마 싫어하지만 너랑 마주 앉아서 씹고 싶진 않아.”

“하자, 쫌. 뒷담은 아는 사람끼리 해야 제맛이지.”

“..........”

“어떻게 살았어?”

“뭐, 그냥 대충.”

“왠지 잘 큰 거 같아. 비뚤어진 데 없이.”

“뭔 소리야, 척추 죄다 비틀어졌구먼.”

“안 봐도 알지. 할머니가 얼마나 이뻐했을 거야.”

“한은호.”


은호는 먹는 입을 멈추고 선호를 바라보았다.


“하나만 약속해.”

“뭘..”

“나 솔직히 니 상태 몰라.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진단을 받은 건지 그냥 기분이 그런 건지. 그래도 니 손으론 끊지 마. 만약에 허튼짓 하면...”

“하면...?”

“제대로 삐뚤어질 거야.”

“아이고... 협박 참 말랑말랑하네.”

“입에 설탕 범벅이나 닦고 먹어.”

“진짜 나한테 방 내줄 거야? 시집도 보내주고?”

“시집은 가고 싶나 보네. 니 방 그대로 있어. 취향대로 꾸미든가.”

“엄마 당장에 쳐들어올 거야. 분명히.”

“싸워보자, 어디 한 번.”

“오빠 넌 개입하지 마, 내 전쟁이야, 내 존엄이고, 내 인생이라고!”


선호는 제법 단단해 보이는 은호에게 응원의 미소를 보냈다.


“오늘 밤엔 그 사람들 만나야 돼. 호텔에 델다줘.”




선호의 차는 은호의 숙소 앞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은호는 손짓하며 차창을 내리게 했다.


“오빠 너, 어글리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나지. 그 닉네임 이제 내 꺼야.”


은호는 환히 웃으며 호텔로 들어갔다.


룸으로 들어온 은호는 바닥에 뒹구는 빈 술병을 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해령은 만취해 카펫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정민도 현정도 보이지 않았다. 은호는 엄마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들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두만... 어디 있어? 나 할 말 있는데. 알았어, 호텔로 빨리 와. 엄마는 만취상태네. 아, 1층 카페에서 보자. 현정이도 오라고 해.”







은호를 호텔에 내려준 선호는 홀가분해졌다. 물론 함께 넘어야 할 산봉우리가 한 두 개가 아니지만 다행히 은호는 단단해 보였고 유쾌한 막말로 선호를 뒷목 잡게 했다. 어쩐지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문득 봉이 생각이 났다. 요 며칠 부침을 겪는 동안 사실 봉이가 떠올랐던 건 사실이다. 이럴 때 봉이가 있으면.. 봉이가 있어줬으면...


늦은 밤 집 앞 골목으로 접어들다가 선호는 멈칫한다. 봉이가 남자와 살벌하게 싸우고 있다. 둘의 동작은 거칠고 말소리는 날카롭다.

++

일각에 차를 세워두고 달려가는 선호다. 현재 봉이와 냉각기를 지내건 말건 선호는 눈이 돌았다.

화가 난 남자는 봉이를 밀쳤다. 그 순간 달려가 남자를 돌려세워 턱을 가격하는데 그의 정체는 새 남친 그 자식이다. 선호가 얼른 봉이부터 일으켜 세우는데 재근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의욕이 앞서 빗맞고 정작 자기가 휘청했다.


선호는 덤덤한 얼굴로 그 자식의 팔을 잡았다. 선호의 악력 때문이기보다는 지가 뭔가 찔리는 눈치다. 재근은 거칠게 선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남사친 씨네요.”


공연히 옷깃을 털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그 순간 선호는 처참한 얼굴의 봉이를 본다. 어디에 내놔도 기세로 지지 않는 봉이였지만 선호의 부드러운 미소에 안도의 한숨이 스쳤다. 선호는 봉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 광경을 고깝게 보던 재근은 그간의 깍듯함을 내던지고서 느물거렸다.


“참 궁금한 게 있었는데 내가 최봉이를 만나는지 한선호를 만나는지 모르겠더라고. 말끝마다 우리 선호, 우리 선호!!!!”

“야, 이 스파이 자식아. 꺼져. 어디 한 번만 더 눈에 띄어? 어?!”

“스파이는 무슨. 우리 같은 전국구 프랜차이즈가 니깟 국밥집 따위 뭐가 아쉽겠니.”


열받은 봉이는 재근의 휴대폰을 홱 채서는 집어던졌다.


“야!!”

“우리 아빠 일하는 거 죄다 녹화했지, 너!! 백날 해봐라. 우리 아빤 비법 육수 나도 안 가르쳐줘. 알어?”


재근은 휴대폰을 집어 들며 봉이를 쏘아봤다.


“잘난 대기업급 프랜차이즈님, 이런 게 스파이 짓이야. 레시피 때문에 나한테 접근했지, 너?”


뭐에 찔렸는지 긁혔는지 재근은 공연히 어푸거리다 가버렸다. 그 자식이 시동을 걸고 사납게 가버릴 동안 봉이와 선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스파이야, 저 자식?!”

“쪽팔리니까 꺼져라.”

“봉, 소주 한잔 해?”
“싫다고.”




봉이의 ‘싫다고’는 ‘그러시든가’다. 살면서 봉이와 이토록 긴 냉각기는 거의 처음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베프 봉이와 선호'로 돌아왔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동안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골치 아픈 일들이 있었어.”

“......”

“너 못 보니까 답답하더라, 봉.”


봉이는 갑자기 걸음 멈추더니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쁜 자식.”

“미안해.”

“너 말고 멍충아!!!”

“뭐야, 설마 저 자식 좋아했어?”

“아니이... 너 때문에 저 나쁜 자식한테 휘둘렸잖아!!!”

“......!!......”

“너 열받으라고, 너 신경 쓰이라고, 너 찔리라고, 너 마음 아프라고... 근데 하필 골치 아픈 일들이 있으면 어떡해. 내가 바라던 그 상황 넌 모르고 지나쳐버린 거네!!”

“그랬을 거야, 평시였으면.. 열받고, 신경 쓰이고 찔리고 아팠을 거라고.”

“무슨 뜻이야, 그거..?”

“니가 그 남자 만난다 할 때 기분이 좀 이상했어. 그냥 기분이 나쁜 건가..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뭔가 헛헛했어. 있을 수 없는 상실감, 있어서는 안 될 배신감... 이 드러운 기분이 뭔가 고민했는데 좀 전에 말아버렸네, 진짜 내 속 마음.... ”

“뭐래... 짜증 나..”


봉이 머리 위에 ‘로딩 중’ 아이콘이 돌아갈 무렵 봉이의 두 볼을 감싸 쥐는 선호다.


“앞으로 많은 게 달라질 거다, 우리.”


그 말에 봉이는 울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선호는 따사로운 눈망울로 봉이를 어루었다.


“망할 놈, 빨랑 선 넘어라.”


피식 웃으며 선호가 봉이에게 달려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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