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5화

어글리 15 _라스트콘서트

by 햇빛투게더

“나도 스케줄 있는 사람이거든? 니 맘대로 왜 일정을 잡아.”

“당연히 해줄 줄 알았지. 정 싫으면 뺄게, 빼지 뭐.

뺀다, 클레어 한 마지막 콘서트 게스트.”


‘마지막 콘서트’라는 말에 선호는 짜르르 가슴이 아팠다.


“누가 빼래? 도모하기 전에 미리 말해야 된다는 거지, 멍충아.”

“한 가지 확실한 건 ‘클레어 한’ 타이틀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또 뭔 꿍꿍이야. 괜히 사람들 농락하지 말고.”

“어그로 아니야. 걱정 마.”


그제서야 선호는 안심이 됐다. 마지막 남은 탕수육 한 점을 집어 올리는데, 젓가락으로 인터셉트하는 은호.


“라스트는 내꺼.”


얄밉게 메롱하며 자기 입 속으로 탕수육 한 조각 넣는 은호다. 너털웃음 나는 선호인데..


“아, 그때 그 인디밴드. 스케줄 괜찮으면 모실까 하는데?”

“형들한테 연락해 볼게.”






공연장은 연중스케줄로 운영되기 때문에 제 아무리 ‘클레어 한’이라도 쉽지 않았다. 월드클래스 슈퍼스타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형 경기장도 시즌 운동경기 러시인 데다가 다른 가수들의 콘서트 예약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럼, 야외인데... 야외세트와 음향 문제 고려해 열심히 뛰었고 은호는 SNS에 공지했다.


엄마는 은호의 발작 이후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한마디, ‘기회 줄 때 안 하면 한선호 다 준다.’에 다급해진 모양이다. 아님 확실하게 돌아갈 다리를 끊어버린 미친 딸내미를 당황시킬 묘수를 찾고 있을 수도. 은호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평화를 만끽하기로 한다.


공연은 4개의 섹션으로 진행됐다. 선호와 인디그룹의 크로스오버, 신유민의 독주, 은호와 선호, 유민의 협연, 그리고 피날레는 은호의 독주.

현정은 이 공연을 위해 특별한 의상을 선보였고 은호 맘에 쏙 들었다. 공연의 퀄리티를 한층 높여주었고 정통 클래식의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자유롭고 생기 발랄한 분위기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현정과 정민은 무대를 체크하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연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다. 현정은 클러치백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정민에게 건넸다.


“선물.”

정민은 말없이 상품권 만한 봉투를 내려다봤다.


“이만 가볼게. 나 가면 봐. 너무 활짝 웃진 말고.”


현정은 서둘러 백스테이지를 빠져나갔다.


작은 봉투를 열어보자 작은 메모가 붙은 이혼서류다.


[메모]

축하해. 이제 당신, 자유야.


정민은 다급히 뒤따라 나갔다. 그러나 그 짧은 시차에도 현정은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민은 이 정의할 수 없는 양가감정에 착잡해졌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거다. 현정이 이걸 준비하기까지 겪었을 고통에 시야가 흐려졌다.

당돌하게 고백했던 고등학생, 늘 너는 동생이지 여자 아니야 밀어내고는 절친 은호와 사랑에 빠졌으니 그 참담함이야 짐작이 간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일방이면 숨통이 막히는 것. 어찌어찌 결혼을 했지만 뒷모습만 보여줬다. 현정의 사랑이 깊을수록 정민의 죄책감도 깊었던 몇 년의 세월은 이제 멈췄지만 평생 그 짐을 지고 가겠지.




첫 번째 무대는 신유빈이다. 대기실 겸 드레스룸으로 렌트한 트레일러에서 선호와 은호는 유빈의 공연을 찬탄하며 지켜보았다.


“저 친구가 왜 [포스트 클레어 한]인지 알겠네.”

“난 쟤가 너무 부러워.”

“왜,”

“처음부터 자유로웠어, 신유빈은... 나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참고하는 게 아니라 음악 자체를 즐기거든. 쟨 성공하든 말든 상관없대. 쟤네 부모도 그렇고. 애가 좋아하니까 행복해하니까 길을 터주는 거야. 성공의 기준이 ‘쟤 마음이자 쟤 선택’이라고.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나 봐. 그래서 부러워.”

“......”

“어떤 면에선 오빠 너랑 비슷한 거지.”

“나는 빼주라, 그냥 난 비전공 듣보잡이야. “


그때 무대 스탭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어글리 님, 준비하세요.”


나가는 선호의 뒤통수에 대고 은호의 목소리가 꽂혔다.


“무대는 어디든 똑같아. 시장통이든 콘서트홀이든. 하던 대로 해. 잘하잖아, 신유빈처럼 즐기는 거.”




선호의 순서가 되고 인생 최고의 쇼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평소라면 인디밴드의 무대에 아주 잠깐 메뚜기 뛰는 처지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선호의 무대에 인디밴드가 초대되어 완벽한 합을 이루었다. 절대다수가 은호의 팬이었음에도 선호의 새로운 곡해석에 열광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 봉이다. 봉이는 정성스럽게 만든 피켓을 흔들며 선호를 응원했다. 선호의 긴 터널을 방구석 1열에서 지켜본 목격자이자 증인으로서 환호받는 오늘의 선호를 지켜보자니 울컥해지는 봉이다.

오늘의 메인 무대, 은호가 들어서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 야외공연장을 들썩였다. 그 환호 소리와 함께 열광하는 인파 속을 헤집고 걸어가는 여인, 해령이다. 해령은 평소와 다르게 화장기 없고 대충 차려입은 채 와인병을 들고 추적추적 이동한다.

은호의 연주에 열광하는 팬들은 해령의 등장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고 해령은 무덤덤한 얼굴로 무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맨 앞줄까지 걸어간 해령은 남은 와인을 병째로 들이키고 은호를 노려봤다. 연주 중에도 어미를 발견한 은호는 해령 보란 듯 더 텐션 높은 공연을 이어갔다. 무대 위의 은호, 그리고 맨 앞줄의 해령, 두 여자는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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