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7화

어글리 17 _A/S를 부탁해

by 햇빛투게더


병원에 도착한 은호와 선호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의사 말은 고비는 넘겼고 좀 지켜보자 한다. 남매는 망연자실 복도의자에 등을 기대앉았다.


“그때, 오빠 니가 달려오지 않았다면 엄만 호텔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손목을 그었을 거야. 와인병은 그래서 들고 다녔나 봐..!”

“다른 집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이 집에서는 왜 자꾸 터지는 건지..”

“우리가 큰 거 바라냐? 평범한 엄마를 갖는 게 이렇게 힘든 거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고비는 넘겼다잖아.”

“이대론 안 되겠어.”

“왜. 뭐. 어쩌게.”

“A/S 받아야지.”

“뭔 소리야.”

“........”

“야,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데 너는 자리 지켜야지.”

“내가 회복에 도움이 되겠어? 내 성격에, 이 상황에? 가자고.”

“어딜?”

“외가로.”

“뭐? 거기가 어딘데?”


은호는 비장한 얼굴이 되어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갔다.





은호와 선호가 도착한 건 부산에 위치한 한 저택이다.


“넌 여길 어떻게 알았냐.”

“내가 성공이란 걸 하니, 엄마는 으스대고 싶었겠지. 당신들이 내친 새끼의 새끼가 이렇게 유명해졌다. 그러니 VIP티켓 2장을 보냈나 봐. 그런데 안 오셨더라고. 그즈음 적혔던 초청리스트를 봤어. 차대표가 그러더라고 a.k.a 외가라고.”

“그때도 안 온 냉정한 냥반들이 퍽이나 A/S 해주겠다.”


은호는 냅다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중년의 여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마도 일하는 분인가 보다.


“누구.. 세요?”

“이해령 씨 자녀입니다. 외조부모님들 만나 뵈러 왔어요.”

“여쭤봐야 할 거 같은데 기다려주세요.”


중년의 그녀는 다시 대문을 철컹 닫고 들어갔다.


“헐..! 문 안 열리면 꺼지란 거네.”

“그럼 버선발로 나오실 줄 알았냐. 연 끊고 산 게 몇 년이겠어, 너랑 나 태어나기도 전인데.”


잠시 후, 철컥하고 대문이 열렸다.




거실에 들어서자 은발의 귀부인이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저택의 웅장한 사이즈에 비해 집도 주인도 다소 검소하다 못해 썰렁할 지경이다.


“이해령 씨 주니어들입니다.”


다소 도발적인 은호의 말투였다.


“앉아요.”


분명히 신원을 밝혔는데 이 노인은 존대어로 선을 그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선호라고 합니다.”


노인의 경계 가득한 시선은 살짝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 친구는 은호입니다. 클레어 한이라고..”

“알아요, 유명하신 분.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전에, 외조부는 외출하셨나요? 두 분이 같이 계셨으면 하는데요.”


은호는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았다. 노인은 또다시 냉랭하게 남매를 바라보았다.


“그분은 몇 년 전에 작고하셨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공기를 더 무겁게 했다.


“이해령 씨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피로 연결된 이 세 사람이지만 모두가 그녀를 ‘이해령 씨’라 칭했다. 이 대화를 이어가는 게 맞을까.


“네. 큰일이 있어요. 지금 병원에 계세요. 본인의 손목을 본인이 그었거든요.”

“그래서요?”


은호가 못 참고 끼어들었다.


“A/S를 요청합니다.”


그녀는 비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마치 평온한 수채화처럼 그대로 앉아있을 뿐이다.


“이해령 씨가 이 집을 나간 후론 타인처럼 살았답니다. 연이 끊어진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제가 왜 A/S를 해야 하죠?”

“끊어진 건가요, 끊어내신 건가요.”


그녀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목을 적셨다. 결심한 듯, 찻잔을 내려놓으며 남매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금전적인 A/S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보세요, 할머니! 할머니 보단 내가 부자일걸?”


은호는 모욕감을 느꼈나 보다. 선호가 무겁게 입을 뗐다.


“저는 8살 때 이해령 씨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저만 두고 미국으로 갔거든요. 저는 엄마의 품이 따뜻한 것이라는 세상의 통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저는 예전 가족과 대면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요. 아직 화해하지도, 화해할 생각도 없습니다.”

“한선호 씨라고 했나요?”

“네.”

“왜 혼자 남겨진 겁니까.”

“어릴 때 저흰 바이올린 때문에 엄청난 가스라이팅을 당했어요. 바이올린을 잘 해내면 사랑받았고 잘 해내지 못하면 꾸지람을 받고 살았죠.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이올린으로 이해령 씨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저 대신 재능이 많은 은호가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 지옥을 홀로 은호가 견딘 거구요.”

“그래서 저토록 전투적인 건가요?”

“모계 DNA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한은호, 넌 좀 가만히 있어.”


노인은 선호를 따사롭게 바라봤다.


“금전적 A/S가 아니면 어떤 A/S를 바라시나요? 아, 물론 무조건 수락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 들어보죠.”

“이해령 씨가 보통의 모성 절절한 분은 아닙니다. 자식의 행복보다도 본인의 성공이 더 중요한 유형이고 뜻을 거스르면 가차 없이 버렸으니까요. 반대로 성공한 자식은 본인과 동일시해서 그 아이의 성공이 본인의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얼마 전 은호가 결별선언을 하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괴해졌습니다. 은호의 콘서트에서 만취된 채 찾아왔고 무대를 망치려 했거든요. 경호원에게 쫓겨나자 끝내 호텔에서 손목을 그었고 지금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

“그간의 모든 일들을 세세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은호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지극히 제 입장에서 말씀드릴게요.”

“그러시죠.”

“현재의 이해령 씨가 되기까지 많은 이유와 사연이 있을 테니 전부 선생님 탓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회복할 때까지만이라도 엄마가 되어 주세요. 무서운 엄마건, 다정한 엄마건, 잔소리꾼 엄마건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이해령 씨는 절대 회복될 수 없을 거 같아요. 이상한 엄마가 됐던 건, 아마도 그 부모에게 인정을 받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은호 콘서트 초대권을 보낸 게 증거라면 증거겠죠.

선생님, 이 불행을 끊어내 주세요.”

“한은호 씨도 같은 생각인가요?”

“당연하죠. 엄마는 엄마가 고쳐줘야하는 거 아닌가.”


은발의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원하는 결과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가부간은 꼭 연락하리다. 거기 연락처 메모해 두고 가요.”


끝까지 사무적으로 말하곤 은발의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헐..! 봤냐? 둘이 아주 똑같네.”


선호는 반듯한 글씨로 연락처를 적고는 일어섰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운전하는 선호 옆에서 은호는 과자를 아삭거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니 말이 맞는 거 같다.”

“뭐.”

“엄마는 엄마가 고쳐야 한다는 거.”

“얼굴도 아주 그냥 판박이더라. 엄마가 더 늙으면 저 모습일 거야.”

“와줄까?”

“아니.”

“난 왠지 와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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