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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부모님 탓일까? 부모님 덕분일까?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막냇동생이 사주팔자 공부를 하더니 두 언니의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무심하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時)를 불러주고 관심 없는 척했지만, 사주 풀이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작은 언니는 대운이 들었어. 투자를 계속해 봐. 큰 언니는 보필이 들었네.”

듣다 보니 화가 났다.


‘뭐라고, 나는 대운이 없어? 한낱 보필? 나는 선생님 할 팔자였던거야?’

나는 운명이란 말을 싫어했다. 나는 운명처럼 엄마 바람대로 교육대학교에 갔기 때문이다.

공부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주셨던 엄마는 내가 진학할 대학을 교대로 정해두셨다. 나는 의대도 가고 싶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가고 싶었다. 교대에 가라고 하시는 건 초등교사가 결혼하고 애 키우기에 좋은 직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결국은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였다. ‘그럼 경찰대 시험을 봐야지.’하고 엄마 몰래 시험을 준비했다가 딱 들켰고, 나는 고3 수능을 앞두고 엄마에게 맞았다. 일곱 살 때 지갑 속 엄마 돈을 훔쳐 종이 인형을 샀다가 빗자루로 맞은 일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교대 진학을 상처로 안고 살았다. 엄마와 잘 지내다가도 대학 이야기만 나오면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이십 대 중반까지도 엄마 바보였던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 콩깍지를 벗겨냈다. 소중한 내 아이의 꿈을 꺾는 일이 이해되지 않아서 벗겨낸 콩깍지 자리에 엄마를 향한 원망이 자랐다.


부모님께는 무소식이 희소식, 전화 통화도 뜸했다. 내 새끼 키우는 핑계로 한 걸음 아니 열 걸음쯤 멀리 있었다. 엄마와 대화 할 때는 원망을 기본 바탕에 두고 시작했다. 원망은 미움으로 열매를 맺었고, 엄마와의 힘든 대화가 다시 나를 괴롭혔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내가 받은 모든 것은 선물이었다.’

-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이어령 -

내가 교대에 간 건 부모님 탓일까?

내가 교대에 간 건 부모님 덕분이었다.


“얼굴 하얗고 뽀얀 여자아이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예요?”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한테 이렇게 물었단다. 딸은 뽀얗고 하얗게 키우면서, 본인이 물려준 하얀 피부는 거뭇거뭇해졌다. 딸이 학원 가방을 들고 쫄래쫄래 다니는 게 좋아서 우리 엄마는 허름한 옷을 입으셨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는 본인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딸에게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보다 높은 인생 차선 위에 있었다.

내가 교대에 간 건 부모님 덕분이고, 부모님께서 원한 진로를 유지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내가 간절하게 원하고, 용기를 내었다면 나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부모님을 향했던 원망을, 나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으로 이름을 다시 지어주었다. 내가 가졌던 울분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특별한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첫째, 건강한 몸이다. 우리 아버지가 자랑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부터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건강했냐는 것이다. 우리 세 자매는 모두 키가 170cm 안팎의 장골이고 커서는 골골 아픈 일이 잘 없다. 행복에 있어서 건강은 ‘제 1조건’이라는 것을 안다.


둘째, 강인한 생활력이다. 우리 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신 지금도 몸을 쓰는 일을 하신다. 인제 그만 일하시라고 말려도 일을 못 놓으시겠단다. 일할 때 생기가 도는 그 매직을 이해하는 우리 세 자매도, 쉼 없이 일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명절이면 그동안 성취한 소소한 업적을 자랑한다. 우리는 친정에 모이면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그냥 받아먹지 않는다. 매끼 메뉴를 미리 정하고 재료를 주문해 둔다. 우리도 함께 음식을 하고 고기를 구워 부모님께 대접한다. 엄마도 ‘이번엔 어떤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나?’ 기대하신다. 부모님께 도와드릴 일이 생기면 세 딸은 머리 맞대어 방법을 찾아낸다. 내 손으로 해결하고, 내 발로 직접 뛰고, 내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이, 동생들이, 내가 자랑스럽다.


셋째, 부지런함이다. 우리 아빠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걸으셨다. 집에서 출발해 바닷가 마을까지 걸어갔다 오셨다. 이런 우리 아빠를 두고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라 한다고 내 친구가 전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해라’라는 말은 한 번도 하신 적 없지만 무엇을 하든 남보다 열심히 해라고 하셨다. 갈색 액자에 ‘남과 같이해서는 남보다 앞설 수 없다.’라고 적힌 우리 집 가훈도 기억난다. 부지런하게 몸을 놀리면 사는 게 재미있어진다. 속상한 일로 몸까지 축 처질 때는 운동을 한다. 무기력이 스멀스멀 다가올 때는 주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현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몸의 에너지를 관리하면 마음과 정신의 좋은 에너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보고 배웠다.


부모님께 받은 이 선물들이 운명이라면 나는 참 좋은 팔자를 타고났다.

“부모님 탓일까?”

부모님을 원망하며 고민하던 스무 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건 부모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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