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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빠의 단 한 사람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아빠와 큰아버지네 사이가 나빠졌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다가, 아슬아슬했던 두 분의 관계는 서로를 보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한동안 아빠의 세상은 온통 그 일이 차지한 듯 아빠는 큰아버지 이야기만 하셨다. 시간이 약이 되어, 아팠던 아빠의 상처도 나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였다.


“소영아, 지영아, 아빠가 나쁜 마음을 먹었었다.”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아빠가 말씀하신 그 한 문장을 빠르게 뜯어보았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과거형을 사용한 데에 대한 안도감, 아직 나쁜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뒤엉켰다.

“무슨 나쁜 마음요, 아빠?”

“아빠가 큰 아빠랑 잘 지냈다이가. 근데 이렇게 사이가 나빠져서, 아빠는 진짜 괴롭다.”


나의 기대와 달리 아빠의 상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맞아요. 괴로운 게 당연해요.”

“아빠가 나쁜 마음을 먹었는데, 너그들 생각이 나는 기라. 딸들이 번듯한 선생님인데 아빠가 나쁜 짓을 하믄, 너가 무슨 말을 듣겠노?”


아빠의 괴로움은 뜨거운 술 냄새를 타고, 벌게진 두 눈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빠가 그러면 안된다이가. 그래서 아빠는……, 아빠는 나쁜 짓 안 할끼다.”

아빠는 한 번 더 다짐하듯, 소주 한잔을 더 마셨다.


“아빠, 우리는 아빠 편이에요. 아빠가 보란 듯이 잘 사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아빠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 해 드리는 것. 나는 그 일을 한 번 더 했다.


몹쓸 짓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다.

그를 너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그 사람을 잡아줄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아빠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 사람이 되었다.

우리 세 딸은 방황하는 아빠를 잡아주었다.


아빠 뒤로 십자가가 보였다.

‘너희가 아빠에게 그런 존재다.

아빠는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버티고 있다.

지금처럼 아빠를 단단히 잡아주어라. 아빠를 믿어주어라.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어라.

그러면 몇 배의 단단한 사랑의 밧줄을 만들어 아빠는 너희와 이어지고, 좋은 세상으로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예수님이 말이 들리는 듯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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