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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죽 찢은 김치, 하얀 밥 위에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Mar 21. 2025

엄마는 김치를 가위나 칼로 자르지 않으셨다. 손으로 죽죽 찢어주셨다. 좁고 길게 찢은 김치를 반찬 그릇 위에 나란히 걸쳐두시면 나는 하나씩 가져와 뜨끈한 하얀 밥 위에 척 얹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김치 찢어주시느라 생선 가시 발라주시느라, 고기 비계 떼어주시느라 같이 드시지 못했다. 그때는 맛난 김치, 맛있는 생선 살만 보였지 부지런한 엄마 손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생김을 손수 구워주셨다. 손잡이 있는 석쇠에 생김 한 장을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김이 워낙 얇아서 빠르게 뒤집어가며 구워야 타지 않는데 살짝 노랗게 탄 부분도 바삭하니 맛있다. 다 구운 김에는 방앗간에서 짠 고소한 참기름을 쓱싹쓱싹 붓으로 발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을 찰찰 뿌린다. 참기름 바른 김에 소금 알갱이들이 착, 착, 착 달라붙는다. 엄마가 뿌린 소금은 김 위에 균일하게 배치된다. 나는 엄마 옆에서 김을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이렇게 정성 들여 구운 김과 찌개, 김치만 있으면 저녁밥 한 그릇 뚝딱이었다. 


우리 엄마식 된장찌개에는 특이한 재료가 들어간다. 바로 오뎅(어묵)이다. 내가 갔던 어느 식당에도 어묵이 든 된장찌개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 음식이 생각나는 날에는 납작 어묵을 세모 모양으로 잘라서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다. 남편은 듣지도 보지 못한 어묵 된장찌개에 기겁한다. 나에게는 식어도 맛있는 된장찌개라 뜨끈한 밥을 찌개 국물에 적셔 먹으면 진짜 맛있다. 엄마 된장찌개에는 특이한 재료가 하나 더 들어가는데 ‘포구’라고 하는 갯가재(일명 쏙)이다. 갯가재를 검색하니 새우와 게의 중간 맛을 내며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꽃게 이상으로 감칠맛을 낸다. 갯가재는 뾰족한 가시가 많아서 까기가 쉽지 않았다. 김치도 찢어주시는 우리 엄마이기에 갯가재 껍질도 하나하나 까주셨다. 머리와 등껍질을 다 깐 후 속살과 꼬리만 남겨서 상에 걸쳐주시면 우리는 홀랑 살을 빼먹었다. 특히 알이 든 갯가재 된장찌개는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어묵과 갯가재가 들어있는 된장찌개는 우리 엄마 된장찌개가 유일무이할 것 같다.


우리 엄마의 양념 장어구이는 삼천포 토박이 우리 아빠도 인정한다. 삼천포 시장에서 떠온 장어를 숯에 굽는다. 그리고 초벌 한 장어에 엄마의 비법 양념장을 바른 후 프라이팬에 다시 한번 굽는다. 장어 전문 식당에 가면 장어를 구운 후 양념에 바로 찍어 먹는데, 양념을 발라 구우면 석쇠나 팬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번거로운 뒷정리에도 불구하고 장어 양념을 바른 후 꼭 팬에 구워주셨다. 

엄마는 도시락 반찬으로 ‘사라다’를 만들어 주셨는데 내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반찬이었다. ‘사라다’는 깍둑썰기한 채소와 과일을 마요네즈에 비빈 샐러드다. 엄마는 일본말로 ‘사라다’라고 부르셨다. 친구들이 젓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우리 엄마의 ‘사라다’ 반찬에 어깨가 으쓱해지던 그 기억으로 지금도 내 어깨는 봉긋하다.


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엄마의 음식은 ‘조개 야채 무침’이다. 대학 때 자취하던 시절, 가끔 엄마가 올라오셔서 ‘뭐 해줄까?’ 하시면 나는 이 음식을 주문했다. 나에게 밥 짓기, 설거지 한 번 시키신 적 없으셨지만, 어깨 넘어 엄마가 요리하시는 걸 보며 레시피를 전수 받았다. 바지락 조갯살을 살짝 데친다. 오래 데치면 질겨져서 맛이 도망간다. 그리고 오이, 부추, 양파 등 각종 야채를 채 썬 후 고추장, 식초 베이스의 엄마 비법 양념으로 조개와 야채를 무쳐 주셨다. 채소가 다치지 않게 손으로 가볍게 무치고 고소한 참깨를 아끼지 않고 뿌리셨다. 그리고 맛을 보라며 꼭 내 입에 넣어주셨다. 쫄깃한 조갯살과 아삭한 야채가 아주 상큼했다. 삼천포 바닷가 마을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란 나에게 해산물 음식은 입맛을 돋우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 


나는 엄마 몰래 달고나를 만들어 먹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가 국자에 설탕 넣고 소다 뿌려 달고나를 만들어 주셨으니까. 도넛 믹스 가루를 사서 도넛을 튀겨주셨고 카스텔라도 만들어 주셨다. 엄마는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딸들에게 잘 먹이셨다. 나는 어릴 때는 입이 짧았는데 엄마는 한 번만, 한 번만 하시며 꼭 다문 입을 벌려서라도 더 먹이셨다. 덕분에 우리 세 딸 모두 길쭉길쭉한 장신으로 컸다.


이제는 우리 엄마도 죽죽 찢은 김치를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신 사라다 반찬에 아직 내 어깨가 봉긋하듯, 엄마가 얹어 주셨던 김치에 아직 내 마음은 둥글둥글하다. 내 입맛 닮았는지 생선을 좋아하는 아들, 딸에게 갈치를 구워준다. 가시를 일일이 발라 먹기 좋은 살만 숟가락에 얹어 주면 아이들 표정이 싱글벙글한다. 

갈치도 맛나고 엄마 사랑도 맛나지? 나도 그 맛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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