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 부모님께 말하지 말아 주세요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왜 부모님께 말씀 안 드리겠다는 거야?”

6학년 우리 반 여자아이가 하굣길에 무서운 일을 겪었다. 낯선 남자가 아파트 현관문 앞까지 따라왔다는 거다. 아이는 반 친구에게 무섭다며 전화를 했고, 그 친구가 담임 선생님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 날 아침 여자아이와 상담하며 나는 당장 아이 부모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이유를 말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이는 눈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엄마, 아빠가 알면 또 싸우실 거예요.”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심하게 다투셨다. 아이는 최근의 일부터 기억하고 있는 1학년 때 일까지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니 이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부모님이 다투시는 게 맞았다. 특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부모님의 다툼으로 이어지는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펑펑 울며 부모님께 말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던 거였다.


“선생님도 어릴 때 부모님이 진짜 많이 다투셨어. 네 마음 알아.”

부모님이 많이 다투신 것이 무슨 자랑할만한 일이겠냐마는, 나는 가정에 힘든 일이 있는 아이들을 상담할 때 우리 부모님 이야기를 한다. 마음을 꽉 닫고 있던 아이도 선생님의 고백에 속절없이 마음의 문을 연다.


“정말 선생님도 그랬어요?”

선생님들은 무조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화목한 집에서 하하 호호 살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릴 적 ‘나’나, 지금의 아이들이나 똑같다.

“응, 선생님이 너처럼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셨어. 선생님은 집에 가는 길에 ‘오늘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집에 갔어.”

일부러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게 그제야 믿어지는 듯, 아이는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듣기 시작한다.


“네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그려봐. 그리고 꿈꿔봐. 그 어른이 되기 위해서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자. 부모님의 일은 지금의 네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멋진 부모가 되는 거야”

어린 내가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던 말을 아이에게 들려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끝없이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아 최고의 노력을 하되, 어쩔 수 없는 일은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어린 내가 찾은 이 방법은 나를 잘 성장시켜 주었다. 나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이 순간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6학년 졸업식 날, 여자아이 아버지께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우리 아이 여러모로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선생님께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시간 내어주세요.’

좋은 부모님이 되어주신 아이의 아버지께 감사했다.

keyword
이전 13화13. 죽죽 찢은 김치, 하얀 밥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