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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형 뽑기 좋아하죠...

공부방 신입원장 고해라

by 고해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누나는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등록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두 남매였다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하윤이는 예쁜 얼굴의 여자아이였다

첫 상담 때 다니고 있는 학원교재를 보여주었다


" 어? 중간부터 풀었네?"


"네 책을 잃어버려서요. 다시 사서 풀었어요"


동생만 등록시키려고 상담하시다가 마음에 들었던 어머니는 누나인 하윤이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 나는 그냥 다니던 학원 다니면 안 돼?"


"아니야, 여기 다니는 게 너한테 더 좋을 것 같아"


"왜...? 엄마 맘대로야..."


새침스러운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조심스럽게 속닥거리듯 엄마에게 말했지만 내 앞에서 당당히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하... 사춘기 시작했네... 사춘기의 여자아이들은 나하고 맞지 않았다. 학원을 할 때도 8:2의 비율로 월등히 남학생이 많았다. 그리고 난 아들만 하나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예전에 가르쳤던 한 여학생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살이 많이 쪘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마구 짜증을 부리던 아이였다. 그 아이도 3학년 때부터 내가 가르치던 아이였다.


"수아야, 갑자기 체중이 많이 늘었네?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아픈 데는 없니?"


얼마 후 상담 때 수아어머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애들 예쁘다, 귀엽다도 듣기 싫어해요. 얼마 전에 원장님이 자기 살찐 것 같다고 했다고 학원 관둔다고 해서 달래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우리 애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아이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오히려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서운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모른 척해주는 게 좋은 선생님인 것이다.





어머님은 고민 끝에 이런 제안을 하셨다.


“학원이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지금 다니는 학원이랑 여기 공부방을 두 군데 다녀보고 네가 선택해. 너는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고, 엄마는 여기가 더 좋을 것 같으니까, 한 달 동안 둘 다 다녀보고 결정하자.”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어머님, 하윤이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은데요. 수학 학원을 두 군데 다녀야 할까요?”


“아뇨, 선생님. 여기는 복습을 특강으로 해주신다고 하셨죠? 학원에선 4학년 선행을 하니까 두 군데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테스트 결과를 봐도 예습보다 복습이 하윤이에게 더 맞는 것 같고요. 친구들 때문에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어 하니,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하윤이는 한 달 동안 우리 공부방 수업이 끝나면 바로 학원에 또 가서 공부를 했다.

한 달이 다 돼 가던 어느 날,


"선생님, 저... 결정했어요 학원 관두려고요"


"그래... 결정했구나 두 군데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그렇게 하윤이는 우리 공부방만 다니게 되었다.





"선생님, 저 숙제 안 가져왔어요"


"그래? 잘 좀 챙기지. 내일 꼭 가져와"


"네~"


또 이틀 후,


"선생님, 저 또 숙제 안 가져왔어요"


"또? 숙제 안 하면 안 가져오는 거 아냐? 상습적인데..."


"아니에요 진짜 진짜 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 숙제까지 해서 내일 꼭 가져올게요"


일주일 후, 저녁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하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숙제하려는데 숙제교재를 공부방에 두고 안 가져온 것 같아요 어쩌죠?"


"할 수 없지... 그 대신 내일 숙제 2배로 내줄 거야!"


""네~~"


일부로 저러는 걸까? 공부방 수업을 준비하고 있으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하윤이는 공부방으로 오는 대신 전화를 한다.


"선생님, 숙제를 안 가져와서 집에 가서 가져올게요. 그래서 공부방 좀 늦을 수 있어요




즉흥적이고 빠르지만 실수가 많은 활발한 캐릭터인 웬디(신기한 스쿨버스 속 캐릭터와 우리 공부방아이들을 자꾸 비교하기 시작했다)를 생각나게 하는 하윤이다.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다 보니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하고 누가 망설이고 있으면 제일 먼저 '가자!'하고 뛰어드는 스타일이 너무 흡사하다.

긴 머리는 감아서 빗지 않은 듯 늘 이리저리로 헝클어져 있고 먹는 양에 비해 활동이 많다 보니 삐쩍 말랐다.


"선생님 오늘 숙제를 안 가져와서 집에 갔다가 오느라 좀 늦을 거예요"


"또? 시작 됐구나. 알았어"


전화를 끝자마자, 하윤이 동생 하민이가 공부방에 왔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여러 권의 책을 꺼내며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힘든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이거 누나 숙제예요. 오늘 아침에 안 가지고 학교에 그냥 갔길래 제가 챙겨 왔어요"


"어머? 그랬어? 힘들었겠네 가방이 무거웠겠어 누나는 그것도 모르고 숙제 가지러 집으로 갔는데?(하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하윤이니? 지금 어디야? 하민이가 니 숙제 다 가져왔어. 다시 공부방으로 와"


"그래요? 걔는 왜 남의 책을 허락도 없이 가져갔대요? 저 집에 벌써 도착했어요. 집 앞이라고요!"


"하민이가 네가 깜빡한 걸 대신 가져왔는데 왜 화가 났어?"


"남의 걸 함부로 가져갔잖아요? 난 그것도 모르고 집에 왔고요"


"더우니까 전화 끊고 어서 와"


공부방에 땀을 흘리며 도착한 하윤이는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이유는 숙제교재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엉망으로 해 오면 "선생님 저 이거 잘 몰라서 못해왔어요" 질문하는 척 연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로 내손에 이미 숙제가 들려있었고, 한 장 한 장 넘겨지고 있었다.

대충 아무 숫자나 적어놓고 숙제를 한 것처럼 위장되어 있던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애꿎은 동생을 잡들이 하기 시작했다.

씩씩대며 동생에게 눈을 부릅뜨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숙제를 안 했으니 일부로 안 가져온 거야? 그래놓고 숙제 가져오겠다고 한 거고?"


"....."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숙제 때문에 하윤이와의 실랑이가 오고 갔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된 하윤이는 단원평가에서 90점과 100점을 오가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숙제에 대해서는' 조금씩 습관을 잡아가자' 조급한 마음으로 아이를 힘들게 해서 오히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학년 2학기를 시작하는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면서부터였을까?

하윤이의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길게 헝클어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다니던 하윤이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채로 공부방에 왔다.

처음 보는 머리스타일이라 뭔가 변화를 인지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심경의 변화를 느끼면 제일 먼저 머리스타일부터 바꾼다. 그러나 대부분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도 머리스타일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하윤이는 초등학교4학년이다.


"엄마가 머리 묶고 가래요"


나도 여러 번 말했었다 단정히 묶으라고. 공부할 때나 날씨가 더울 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째 머리를 묶거나 다르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윤이 어머니도 여러 번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하셨다. 초등학생이 머리 한번 묶고 왔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관찰하고 유추해 보고 짐작해 보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한 달 수업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주에는 학부모 상담주간으로 정해서 매달 정해진 날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은 하윤이 하민이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한 달 동안 잘 지내셨어요? 요즘 하윤이 집에서는 어떤가요?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요?"


"맞아요.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이번 달 한 달 내내 짜증도 많이 부리고, 숙제도 엉망으로 해오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해서 많이 혼냈어요"


"그랬어요? 저도 집에서 많이 혼내고 있는 중인데... 공부방에서도 혼났군요? 하윤이가 양쪽에서 혼나고 있었군요. 하윤이 마음이 안 좋았겠어요"


문제가 있음 당연히 혼나야죠. 하는 어머님이었는데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러게요. 근데 하윤이에게서 뭔지 모를 이상함이 감지되었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사춘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요. 애가 혼이 나간 것처럼 눈이 멍하고, 뭐라고 설명하면 알아들은 듯 '네' 대답을 하고는 엉뚱하게 풀어와요. 게다가 방금 알고 잘 풀던 것도 바로 다시 모른다고 한다던가 그런 행동을 어머님과 상담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네~~" 맘대로 해보라는 듯이 대답해요. 글씨도 지우개로 지우지 않고 엑스를 하고 쓰거나, 듬성듬성 문제를 풀어온다던가 하며 성의 없는 태도로 수업을 해요. 조금이라도 수업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을 내며 다음 영어학원을 못 가겠다고 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지각을 할 바에는 결석을 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요."


"공부방에서 늦게 끝나면 바로 전화가 와요. 울면서 저한테도 짜증을 부립니다. 일하고 있으니 대충 끊고 저녁에 와보면 멀쩡해져서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져 있어요"


"그래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무슨 일 없는 거죠? 제가 보기엔 사춘기라기보다는 다른 뭔가가 있는데... 그걸 잘 모르겠어요. 하윤이가 갑자기 머리를 묶고 왔어요. 절대로 머리를 묶지 않는 아이인데 말이죠"


"아? 그거요? 제가 묶으라고 했어요... 사실.... 하윤이가 인형 뽑기에 빠져 있어요. 제가 지난달에 잠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집 근처에 인형 뽑기 집이 많이 생겼다고..."


머리 묶은 것과 인형 뽑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얘기가 이상한 데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이상하게 겉도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는데 여러 번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하니 솔직한 성격의 어머님은 고민하시다가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네 들은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인형 뽑기 좋아하죠"


"매주 화요일이면 우리 애들이 할아버지댁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거 아시죠?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하윤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지갑에 손을 댔더라고요. 아직 부모님들은 카드보다 현금을 많이 사용하시다 보니 지갑에 돈이 있었고 그 돈이 자꾸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되신 거예요. 한두 번 그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조금 망설이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큰돈이 없어지신 걸 확인하시고 결국 저한테 말씀하셨고 저는 하윤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핸드폰을 뒤져보니 친구와 < 거기서 만나>라는 메시지가 여러 번 있는 걸 보고 물으니, 거기가 인형 뽑기 집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였더라고요. 워낙 큰돈을 가져갔고 뽑기를 했는데도 잔돈이 남아있었어요. 그 일후 카톡을 싹 다 지우고 인형 뽑기 집도 못 가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랬군요... 어쩐지 눈빛이 이상했어요. 멍하니 그냥 쳐다보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는 척 대답만 할 뿐 아이가 생기가 없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풀이 죽어있었거든요. 그래서 하윤이를 많이 혼내셨군요?"


"그 나이 또래에는 한 번쯤 돈을 훔치거나 하는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많이 혼내지는 않고 어영부영 넘어갔어요. 다른 일로 혼내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짜증을 부리거나,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머리도 단정히 묶으라고 했죠"


"아... 이제 하윤이의 행동이 다 이해가 가네요. 하지만, 어머님 이건 좀 단호하게 혼내셔야 할 것 같아요. 인형 뽑기는 도박성과 중독성이 있어요. 이렇게 잠깐의 즐거움을 자제하는 것을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이런 도파민이 폭발하는 것을 한번 경험한 아이들은 공부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될 거예요. 공부는 아무리 힘들게 노력해도 만족된 결과를 얻기 힘들어요. 반면 인형 뽑기는 바로바로 즉각적 보상을 맛보게 되어있고 아직 돈의 가치와 개념을 잘 모르는 상태다 보니 돈을 훔치기까지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한번 경험한 아이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할까요? 많이 혼냈어야 할까요?"


"인형 뽑기 하는 아이들 많이 봤지만, 대부분 부모님들과 함께 가서 몇 번 하는 것이 다예요. 근데 하윤이는 그 선을 넘었잖아요? 스스로 자제가 힘든 상황까지 온 거예요. 제가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들리실 수 있지만, 요즘 중고등학생들 스포츠도박에 빠져 있는 아아들도 많고 어른이 돼서도 자제하게 힘든 것이 중독이 있는 것들입니다. 전 단호하고 강하게 혼내야 한다고 봅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시며 결심하시듯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해 볼게요."




주말에 우연히 인형 뽑기 집을 지나다가 초등학생 여러 명이 인형 뽑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가만히 서서 아이들이 인형 뽑기 하는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아이들마다 손에는 카드가 들려있었고, 한번 할 때마다 500원~1000원 사이의 돈을 카드로 지불하고 있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요즘 아이들도 재미있어하는 방송이다. 거기에서 연예인들이 취미인 듯 자주 들르는 곳이 인형 뽑기 집이다. 한 연예인은 인형하나를 뽑기 위해 10만 원가량 쓰는 모습이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고작 인형하나 뽑겠다고 10만 원을 쓴다고? 인형을 가방에 매달고 뿌듯하게 인형 뽑기 집을 나오는 모습을 보고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호기심을 느끼고 한번 해볼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와~ 오늘 운이 좋은 날이야. 나 3개나 뽑았어! 한 번에 2개가 나온 건 처음이야"


"진짜? 부럽다. 나도 다시 해봐야지"


우르르 몰려와 인형 한번 구경하고는 다시 우르르 여러 개의 인형 뽑기 기계 앞으로 한두 명씩 짝을 지어 붙어 서서는 인형 뽑기에 열중한다.


"나 한 번만 하게 해 주라~. 나 돈이 없어 다 썼어. 한 번만~"


대답도 않고 인형 뽑기에 열중인 친구옆에 서서 애걸하고 있는 초등학생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조르더니 쳐다보는 나를 의식한 듯 입을 다물고 친구가 인형 뽑기 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서있었다. 잠시 후 인형 뽑기에 실패한 친구가 다른 기계 앞으로 이동하자 뒤따라가며 다시 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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