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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치킨 서비스 안 받고 싶어요

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by 고해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수업 중 내 핸드폰 벨이 울린다.


"선생님,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났어요! 소방차하고 경찰차 하고 많이 왔어요"


"그래? 너네 집은 어떤데? 괜찮아? 엄마는 아시고?"


너무 놀라서 창문을 통해 하민이가 사는 아파트 쪽을 요리조리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엄마는 일하셔서 선생님한테 전화한 거예요."


"뭐? 나도 수업 중이야~ 괜찮으면 됐어."




"선생님 영민이 형 끝났어요?"


"왜?"


"놀려고요"


"선생님 수업 중이야. 이런 걸로 전화하지 말아 줘"




"선생님, 지금 숙제 중인데 모르겠어요"


"아는데 까지 해가지고 와. 내일 가르쳐 줄게. 전화로 물어보면 안 돼. 그리고 선생님 수업 중이잖아?"


"숙제 다해야 나가 놀 수 있어요. 모르겠는데..."




"선생님 저 늦게까지 공부시켜 주는 거 돈 많이 벌려고 그러는 거죠?"


갑자기 하민이가 수업하다 말고 묻는다.


"..."


대답조차도 의미가 없기에 힐끗 한번 하민이를 보고는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저 수업시간 한 시간인데 왜 두 시간씩 시켜요? 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거 맞죠? 그런 거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하윤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학원은 많이 공부할수록 돈 더 내야 돼. 나도 예전 학원에서 그랬어!"


말없이 두 남매의 대화를 들으며,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다른 아이들도 새롭게 안 사실인 것처럼 궁금한 듯 둘 대화를 들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돈도 더 내면서 오래 공부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실 추가비용 없이 부족한 아이들을 더 봐주고 신경 써 주고 있는 중이었고, 특히 하민이는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어 더 해주고 있는데 서하와는 다르게 꼴통까지 있어 잘 따라와 주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두 시간씩 공부시키며 체력도 감정소모도 많은 데다가 오해까지 받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고마운 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 갱년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보겠다.


"하민아, 궁금하니? 그러면 선생님이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봐. 예를 들어 설명해 줄 거야. 하민이 치킨 좋아하니?"


"네! 전 굽네치킨 좋아해요"


"좋아한다니 다행이네. 그럼 하민이가 굽네치킨을 먹으러 갔어. 그리고 한 마리를 시켰어. 치킨이 요즘 얼마지?"


"몰라요~ 이만 원? 삼만 원? 잘 모르겠어요"


"엄마아빠가 사주시니 가격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겠구나. 그래 그럼 2만 원이라고 하자. 만 원짜리 두장 그건 알지?"


"이만 원 넘어요. 내가 좋아하는 프라닥치킨은 3만 원 넘었던 것 같은데? 콜라도 오고..."


다른 아이들까지 치킨값을 맞추려는 듯 여기저기서 난리들이었다.


"그래 알았어. 우린 그냥 2만 원이라고 하자. 하민이가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었는데 약간 모자라는 거야. 근데 마침 치킨집 사장님이 '손님, 치킨이 부족하신 것 같은데 특별히 치킨 한 마리를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하시는 거야. 하민아, 먹고 갈 거야? 그냥 갈 거야?"


"헤헤~진짜요? 그럼 당연히 먹고 가야지요. 공짠데!"


"그렇지! 공짠데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때?"


"저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요. 대박이다! 한 마리 시켰는데 한 마리 더 준다면 완전 행운이에요!"


아이들은 치킨얘기에 여기저기에서 열을 올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치킨을 말하기도 하고, 먹고 싶다고도 하면서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자, 그럼 공부방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민이는 공부방에 한 시간만 공부하기로 하고 어머님이 돈을 지불했어. 맞지? 너도 아까 그렇게 말했고? 거기까지는 이해했지?"


"네. 그런데 왜 저만 두 시간씩 수업하는 거예요? 전 한 시간만 하고 싶어요!"


"한 시간만 하고 싶다는 거지? 그럼 어디 볼까? 지금까지 한 시간 공부를 했는데... 하민이는 오늘 할 공부를 다 끝마쳤어? 아님 못했어?"


어리둥절해하며 내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공부시간과 치킨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못.. 했죠... 그건... 너무 어려워서 못한 거예요"


"그래 맞아. 어려워서 다 못했지.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지? 다하고 가려면 말이야. 하윤이 말대로 공부방에서는 더 공부를 하려면 추가금액을 지불해야 해. 그런데 선생님이 아까 말한 치킨집사장님처럼 하민이가 치킨 한 마리로는 배가 부르지 않고 부족하니까 치킨 한 마리를 더 서비스로 준 것처럼, 하민이의 부족한 공부시간을 한 시간을 더 시켜주는 서비스를 주고 있는 거야.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행운인 거야. 매일 치킨 한 마리 서비스처럼 공짜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내 말을 이해한 고학년 아이들은 조용히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하민이는 묘한 얼굴표정을 지으며 내 말에 반박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학원을 해 오면서 나와 공부를 어느 정도 한 아이들은 애초에 나와 말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생을 이겨먹는 억지와 유치함을 가진 몇 안 되는 어른선생님이다. 우기는 걸로 일등인 초등학생들조차도 입을 다물어 버리기 일쑤였다.


"선생님한테 말로는 못 이겨. 그냥 공부하자"


"맞아 이겨본 적이 없어"


초등학생 때 들어와 고학년이 되거나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은 내가 예를 들어 설명할게. 치킨 한 마리가~라고 시작하면 "또 치킨 나왔다. 공부하라는 말이지요? 알았어요!" 해버린다.


"선생님 그건 말이 안 되죠. 치킨하고 공부하고 같아요?"


"뭐가 다를까? 다시 물을게. 치킨집은 서비스로 치킨을 주는 건 이해하지? 그럼 공부방에서는 뭘로 서비스를 줄까?"


"공부요. 공부방에서는 공부를 더 시켜주는 것이 치킨서비스인 것 같아요!"


옆에서 자기 공부만 열중하며 치킨대화에 끼지 않고 있던 유안이가 한마디 하고 나섰다. 유안이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치킨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우리들 대화에 한마디도 끼지 않은 상태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공부방에서의 치킨서비스는 공부를 더 시켜주는 거지. 그러니까 하민이는 매일 치킨 한 마리씩 더 먹는 셈인 거야!"


"와~부럽다 하민아, 치킨 많이 먹어 ㅋㅋㅋㅋ"


"난 한 마리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빨리 공부하고 치킨 서비스 안 받고 갈 거야!"


아이들은 치킨서비스를 받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선생님 서비스는 좋은 거잖아요? 근데 공부방 서비스는 왠지 받기 싫은 이유가 뭘까요?"


하윤이는 하민이에게 주어진 치킨서비스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 말투였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만, 하민이는 치킨서비스를 받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하민이에게 치킨 한 마리를 매일 서비스로 주고 있어. 그런데 하민이가 먹지 않겠다고 한다고 어머님한테 말씀드려도 될까? 어머님은 치킨서비스를 엄청 좋아하셨는데 말이야!"


아직 2학년인 하민이는 엄마를 무서워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듣는 척은 한다. (남자이 이들은 절대 엄마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단지 저학년 때까지만 듣는 척해주는 것이다)

처음 한 달 하민이를 가르치면서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었다.


"하민이 경계선 지능이 의심스러운데 혹시 검사 한번 받아보시겠어요?"


하윤이는 ADHD가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매번 숙제를 가져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깜빡이랑은 조금 다른 결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약간 의심을 하고 있는 상태예요. 하지만, 진짜 검사결과가 예상대로 나올까 봐 두려워서 하지 못하고 있어요. 제 주위에 친구 아이들 중 약을 먹는 아이들이 많아요. 약을 먹는대도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해서 부모들이 애를 먹는 것을 여러 번 봤거든요. 그래서인지 더 무섭고 겁나요"


그렇게 망설이다가 하민이만 데리고 가서 병원이 아닌, 교육센터에서 상담을 받으셨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은 아니지만, 경계선이 의심되는 것 같고 꼴통이 심한 아이라는 상담내용을 들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을 가는 것은 좀 더 지켜보시겠다고 한 상황이었다.




하민이가 2학년 2학기 여름방학을 끝나는 무렵부터 누나인 하윤이는 사춘기가 본격 시작되었고, 하민이는 오히려 꼴통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언제쯤 둘 다 좋은 상태가 될까요?"


두 아이의 상반된 상담내용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버거운 듯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자식 키우는 일인 것 같아요. 자식을 키운다는 건 언제나 어깨 위에 짐을 하나 더 얹고 사는 것 같아요. 어릴 땐 그저 혼자 밥 먹고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마음이 놓일 줄 알았는데, 초등학생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중고등학교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을 가고, 군대까지 다녀오면 좀 철이 들까 싶었는데 오히려 걱정은 더 커졌어요.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걱정, 차 몰고 나가도 걱정, 직장 다닌다 해도 걱정, 사업한다고 해도 또 걱정... 부모 마음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자식 걱정은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짐 같아요.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커서 부모 걱정을 덜어줄 만도 한데, 오히려 또 다른 걱정이 생기더라고요. 점점 늙어가시는 부모님 걱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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