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월요일 아침 카톡이 울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승우가 오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학원 하루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보강은 가능하시면 수업 때 나눠서 진행부탁드리고
스케줄 상 어려우시면 개인사정 당일결석이니 진행 안 해주셔도 됩니다~! :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승우어머님이었다. 승우는 2학년 남자아이고 우리 공부방 등록한 지 두 달째다. 그런데 유독 월요일만 결석한다. 승우의 잦은 결석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일조차도 털어놓게 만드는 대나무 숲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승우아빠랑 이혼조정 중입니다. 그래서 이사도 하고 전학도 시켰어요. 제가 일을 해야 해서 평일에는 이모와 할머니가 봐주시지만, 주말에는 제가 아이와 많이 있어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피곤해해서 월요일에 자주 빠지게 되네요."
"네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그래도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먼저 일 것 같아요. 무조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지는 못할 것 같아요. 더군다나 놀고 난 후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정도라면요. 아이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무조건 아이가 안타까워 다 맞춰주다 보면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평소대로 아이에게 해 주시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좋을 듯한데 어머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지금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느긋하게 아이를 지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은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쳐 오면서 아이들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된 것이 내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개그맨이 꿈인 남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꼭 개그맨 김준호를 연상시키는 아이였다. 잘생긴 외모지만 키가 작았고 늘 수업 중 유쾌한 말로 수업분위기를 업해 주었다.
초등 2학년때부터 우리 학원을 다녔다. 초등6학년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아이가 웃지도 않고 실없는 말로 웃기는 일도 없어졌다. 사춘기라서 그런가? 단순히 생각했었다.
"상준아, 너 개그맨 꿈 접었어? 요즘은 열심히 노력 안 하는 것 같아?"
"아니요. 개그맨 될 거예요..."
"근데 왜 요즘 선생님을 웃겨주질 않는 거니? 네가 웃겨주지 않으니 웃을 일이 없다..."
대답은 하는데 예전처럼 신나서 눈이 반짝이며 말했던 생기 있고 팔팔했던 상준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상준이는 학원에 오지 않았다. 부모님과 상준이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한 달 보름정도의 학원비도 내지 않은 채 잠적 탈회를 한 것이다. 오래 다닌 아이였고 늦게라도 늘 입금을 해 주셨기에 잠자코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학교는 잘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같이 놀지는 않는다고 했다. 더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작은 동네라 혹여 말실수라도 하면 소문이 금방 돌아 상준이와 부모님에게도 전달될 것이 분명했다. 오래 다닌 아이라 그 정도 수강료는 받은 셈 치기로 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연락도 없이 학원을 안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서운하기도 하고 뭐가 문제였는지... 그렇게 몇 개월 후 마음속과 머릿속에서 상준이가 잊혀갈 쯤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상준이 엄마입니다. 지난번 상준이 학원비 미납된 거 보내드릴게요. 상준이도 다시 학원 보내려고 해요. 지난번거랑 이번 달 등록하면 학원비가 얼마죠? 그리고 지난번에는... 집에 일이 좀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 달 학원비부터는 상준아빠가 보낼 거예요"
"상준이 다시 보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짧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 더 이상의 웃음도 친절함도 묻어나지 않았다. 듣고 대답만 할 뿐 자세히 묻지 않았다. 짐작이 가는 내용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상준이가 할머니랑 산다고 했다. 할머니는 같은 아파트에 상준이네랑 따로 살고 있었는데 아빠와 상준이가 할머니네 집으로 이사를 갔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말을 옮기는 것도 앞뒤가 없이 한마디 툭 던지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궁금해하지도 묻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다시 돌아온 상준이는 예전의 상준이가 아니었다. 무겁게 입을 다문 아이는 더 이상 개그맨이 꿈이 아니라고 짧게 말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시기였다. 한동안 전 세계가 코로나로 혼란을 겪으며 학원들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유행이 심할 때는 대면 수업을 할 수 없어 대부분의 학원이 휴원했고, 아이들도 학교와 학원을 가지 않으니 처음에는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언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궁금해했고,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등교하고 학원에 가는 일상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긴 어려움이 지나면서 일상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학원도 점차 아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해 답답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수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원장님, 오늘 시은이가 결석한다고 합니다. 몸이 많이 아프대요"
"진짜? 몸이 아파서 한 번도 결석한 적 없는데... 코로나가 무섭긴 하네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코로나가 아니라 식중독이래요"
시은이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코로나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뭘 맛있는 걸 먹고 식중독에 걸렸대요? 요즘 외식도 못하는데? 다른 별일은 없는 거죠?"
"네~! 굴을 좀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음 날 시은이는 여느 때처럼 쓱~하고 학원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스크를 쓰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채 헝클어진 머리... 늘 봐오던 시은이 모습 그대로였다.
"시은아, 괜찮아?"
"네.."
시은이는 처음 등록할 때부터 나하고 수업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들과 수업을 했고 나하고는 오고 갈 때마다 인사정도 하는 아이였지만, 보이시한 매력으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말이 많지 않고 진중한 데다가 예의가 바른 아이였다. 그 당시 시은이가 어떻게 등록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친구 따라 우리 학원에 등록하고 늘 시은이 아버님이 학원비를 입금해 주셨고, 날짜를 어긴 적도 없었다.
그뿐이었다. 한 번도 결석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고 선생님과도 잘 지냈기에 특별히 상담을 할 이유도 없었다.
"원장님, 시은이가 연락이 안 됩니다"
"어제 괜찮다고 했는데... 또 아픈 거 아닐까요?"
선생님들은 아이번호만 알뿐 부모님 연락처는 나에게만 있었다.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중학생들은 자기들이 와서 등록하고 공부하고 결제하는 일이 많다. 부모님과 소통이 별로 없고 가정사를 일일이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학원비는 아버님이 보내 주셔서 그런지 어머님 핸드폰 번호가 없네? 아버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요."
"저... 원장님, 시은이 어머님 돌아가셨대요. 아버님과 오빠랑 산다고 했어요."
"진짜요? 아버님 카톡프로필 사진에 어머님사진이 있던데... 그랬구나"
"그냥 문자 남겨 놓을게요."
"그러세요. 저도 아버님한테 문자 남길게요"
그렇게 그날 시은이는 연락도 없이 결석을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난 늘 하던 대로 식사 후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을 하고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업무폰을 집까지 가져온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이 끝나면 사소한 일로 내 개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업무폰은 학원에 그대로 두고 다닌다.
연락이든 문자든 퇴근 후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학부모님들도 학원이 끝나면 연락이 되지 않으니 점점 학원운영시간 외에 연락이 줄었고, 할 말이 있을 때는 문자를 보내놓으면 그다음 날 출근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가방으로 다시 넣은 순간 문자 알림이 울렸고 시은이 아버님 문자였다.
<시은이가 사망했어요...>
한 줄의 문자를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읽었다. 혹시 잘못 보내신 게 아닌가? 어제 분명히 건강하게 학원 와서 공부하고 간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니! 핸드폰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보세요? 시은이 아버님 되세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처음 목소리를 듣는다. 늘 문자로 소통했고 시은이가 학원을 다니는 2년 동안 전화통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충격적인 문자를 보낸 것 치고는 아버님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갑자기 딸을 잃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닌 듯 너무 차분했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문자 확인했어요... 지금... 시은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네... 지금 장례식 준비하고 있어요."
"아...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어제 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단순히 식중독으로 인한 장염인 줄만 알았어요. 시은이가 너무 아파하길래 저도 직장에 나가지 않고 같이 있었어요. 약을 먹고 한참을 자는데 자도 너무 자는 거예요. 죽이라도 먹이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사망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수도 있는 건가?..... 15년 전 지인원장님이 갑자기 모임에 못 오신다고 하시며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와 사는 학생이 사망했다는 이유였다. 학생이 결석을 해서 찾아갔더니 할머니와 학생이 불에 타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 손녀를 학원에 보냈고 원장님은 딱한 사정에 무료로 수업을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사이 결석이 잦았다고 했다. 일부로 할머니가 불을 낸 것 같다는 경찰의 소견을 듣고 참혹함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원장님의 모습이 문뜩 생각이 났다.
"... 그럼 사망사유가 뭔가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꾸 묻게 되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경찰조사받았고 아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장례 치를 준비하다가 문자 드린 겁니다"
"어떡해요...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네요"
다 듣고 나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갑자기 울음이 터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고 담담하던 아버님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전화기를 들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날 후로 좋아하던 굴을 먹지 않는다.
"선생님! 승우 어제 엄마한테 아픈 척! 했더니 학원 안 가도 된다고 했대요!"
"아참! 인사를 안 했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승우가 결석한 다음 날, 하민이가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인사보다 먼저 한 말이었다.
"아픈 척! 을 했다고?"
"네~아까 학교 끝나고 만났는데 어제 아픈 척했더니 영어랑 수학학원 둘 다 안 가도 된다고 했다고 저한테 자랑했어요."
"아픈 척! 을 해서 학원을 안 가게 된 것을 자랑했어?"
"네!"
"그래서 하민이 부러웠구나? 그래서 너도 엄마한테 아픈 척해서 학원 빼먹으려고 생각 중이야?"
"....(잠시 망설이더니) 부럽긴 해요. 하지만 전 아픈 척은 안 하려고요."
"왜? 아픈 척하면 승우처럼 학원 빼먹고 놀 수 있는데?"
"그냥요."
눈치 빠른 하민이는 내가 질문하는 의도를 꿰뚫고는 함정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곧바로 친구의 비밀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친 배신자가 되어야 했다.
영어학원에서 끝나 공부방에 온 승우는 피곤한 척(?) 연기를 하며 들어왔다.
"승우야, 어제는 아픈 척! 해서 영어랑 공부방 빼먹고 잘 놀았어?"
승우는 당황해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질문에 대답대신 하민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그걸 선생님한테 말하면 어떡해?'
부러웠던 하민이가 승우의 거짓말을 일러바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승우를 보니 미안했던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승우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승우야, 다 들린다. 하민이에게 자랑했다며? 아픈 척! 했다고"
"아... 그게... 제가 그랬어요.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제가 하고 말았어요"
승우는 흡사 드라마대사처럼 어색한 말투를 가끔 사용한다.
"그래 아무리 공부가 하기 싫었어도 엄마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어. 엄마는 승우가 진짜 아픈 줄 알고 몹시 걱정하시며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내셨고, 선생님도 승우를 걱정했어. 어제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승우 걱정을 하셨을 거야"
"그랬겠네요. 아! 내가 왜 그랬지? 다시 그러지 않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래 승우야 다음부터는 아픈 척! 해서 엄마나 선생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일은 엄마에게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다음부터 그러지 마 알았지?"
"네 선생님 감사해요. 엄마에게 말 안 하는 것도요."
"알았어. 그리고 하민이. 부러워도 승우처럼 아픈 척하는 거 따라 하면 안 돼"
"네~ 어차피 할 생각이 없었어요"
승우가 또 하민이에게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번에도 들렸다.
'너도 아픈 척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