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영지와의 첫 수업이 끝나고 어머님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 영지가 수업 중 이상한 말을 해요? 들어보셨어요?"
"어머? 무슨 말이요?"
"말끝마다 뻐꾹뻐꾹... 이렇게 말해요. 언제부터 왜 그러는지 아세요? 제가 물어보니 그냥요 하고 웃어요"
"글쎄요..."
영민이와 영지는 남매가 확실했다. 영민이는 공부가 싫어질 때마다 '냉면'이라고 하더니 영지는 문제를 잘못 풀어서 틀리거나 멋쩍을 때면 '뻐꾹'이라고 말했다.
며칠 동안은 '뻐꾹'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기 시작하자 영지에게서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하러 들어와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유난히 말이 없었고, 그저 '뻐꾹'으로 모든 말을 대신했었다. 내가 걱정하자, 영지어머님은 선생님과 친해지면 말을 할 거라고 했었다. 그럼 이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영지가 마음을 열어다는....? 그러나, 수다를 떠는 내용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만 늘어놓으며 혼자 웃다가 다시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그랬구나 그랬어?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6학년 학생이 하는 언어 수준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수다는 길어졌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계속하며 웃기를 반복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다시 생각나면 처음부터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재를 해도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떠들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수학은 곧잘 했다. 암산이 빠르니 계산도 정확했다. 단원평가점수도 80점 90점을 왔다 갔다 했고, 그전 학원에서 6학년 1학기까지 선행이 끝난 상태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지가 나에게 또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무슨 말 못 들었어요?"
"무슨 말?"
"그게.. 그게... 무슨 말 진짜 못 들었어요?"
말을 더듬기 시작하면 말을 계속하겠다는 신호였다. 마음은 급한데 하고 싶은 말이 입속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정열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도 답답하면 웃고 만다. 그러다 다시 단어가 생각나면 그 단어를 추가해서 다시 말을 이어갔고, 또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때면 다시 웃으며 멈추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엄마한테 직접 물어볼 테니 너는 공부해"
수업을 마치고 영지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혹시, 어머님 영지 먹는 약 있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영지가 엄마가 무슨 말 안 했냐며 수업 중 계속 묻더라고요. 말이 길어지길래 엄마한테 직접 물어보겠다고 했어요"
"사실... 영지가 집중을 잘 못해서 약을 먹고 있지만, ADHD는 아니라고 해요. 경계선 지능도 있다 그랬다 없다 그랬다 그러고요. 그래서 약을 받으러 가려면 공부방을 늦게 가거나 결석을 해야 해서 말했나 보네요"
상담 시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이상한 말을 한다고 첫 수업 후 상담드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먼저 말씀을 안 하시니 괜히 물어봤다가 기분만 상할 수도 있어서 참고 있었는데 영지의 말 뉘앙스에서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영민이도 경계선과 ADHD가 의심이 들었었다. 왜 그런 의심이 들었는지 영지를 보고 알 것 같았다.
영민이가 영지를 흉내 내고 있었던 거였다.
"영지가 이상한 말을 반복하거나 계속 말을 하고 멈추지 않는 증상은 알고 계신가요?"
"공부방에서도 그러나요?"
"알고 계셨다니 말씀드릴게요. 어느 날은 말을 시작하면 수업시간 내내 공부를 하다가도 불쑥하고 아무리 멈추라고 해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해요. 결국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해야만 공부를 시작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받아주고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영지랑 공부한 지 한 달이 넘어가니 좀 강하게 대할 거예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렇게 해주세요 집에서도 다시 주의를 주겠습니다!"
'뻐꾹'이란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영지가 쓰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재밌게 보였는지 여기저기서 '뻐꾹뻐꾹' 따라 해서 한동안은 못하게 주의를 주느라 애 좀 먹었다.
학원을 그만두던 그때, 마음 한쪽에는 번아웃이 크게 자리 잡았다. 20년 이상을 아이들의 미래를 돕는 일이라 믿으며 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부가 힘들어 울고, 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가르치며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를 거야’라며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아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마음이 무거워졌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우연히 보게 된 한 유튜브 속 말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아이들은 많이 자고, 많이 놀아야 해요. 학원에 보내는 건 부모가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같아요.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사주세요.”
존리 대표의 이 말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지금껏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온 일이, 사실은 아이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 건 아닐까?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억지로라도 잡아 이끌어야 아이들의 미래가 열릴 거라 믿었던 내 진심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부가 너무 힘들어 약을 먹어야 할 정도라면, 그만 멈춰야 하지 않을까? 예전보다 힘들어하는 아이들, 약에 기대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현실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나는 아이들을 잘 돕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억지로 공부를 시키며 돈을 받고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일까?
티처스 2가 방영 중이다. 성적과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국, 영, 수 최고의 강사들이 밀착코칭을 하며, 단순히 공부비법을 넘어서 입시 전략, 정신력까지 변화시키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사교육계의 1타 강사 정승제 T, 조정식 T, 윤혜정 T가 출연하고 있다. 그들의 솔루션을 받은 아이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고 자신감을 얻게 된 사례들이 소개되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다 도전 학생들이 인생까지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1타 강사가 아니라서? 내 능력이 내 학생들을 변화시키기에 부족하기 때문일까?
공부방을 연 지 1년 5개월 만에 첫 퇴회가 생겼다. 시우였다.
공부를 너무 싫어하는 아이였지만 몇 달째 달래고 맞추며 버텨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도 한계에 다다랐다.
나는 알고 있다.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먼저 마음을 다독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 일이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나는 아이를 붙잡아 억지로라도 시키려 했다. 시우는 그런 상황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 몇 달은 적응의 문제라 여겼다. 그러나 하루도 이슈 없는 날이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가정환경에서 이유를 찾게 된다. 하지만 시우 부모님은 전혀 달랐다. 시우말로는 부모님은 독실한 신앙인에다 술·담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말이면 여행을 다녔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시우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언제나 환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단정한 부모와 고운 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은 늘 반짝였다.
겉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 그런데 시우는 7살 무렵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고, 4학년이 된 지금은 약의 개수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약을 먹어도 폭발하는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진 것 같았다.
또다시 나는 4년 전 번아웃이 왔던 때가 생각나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공부가 힘들어 약을 먹는데, 내가 억지로 공부를 붙잡는 것이 옳을까?'
나는 시우의 프리즐 선생님이 돼주고 싶었는데... 시우의 프리즌, 감옥 같은 선생님이 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잡아 가둬 두듯 공부를 시키는 일은 내가 꿈꾸던 교육과는 너무 멀리 있었다.
나는 과연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 걸까?
분명한 건, 나는 아이의 감옥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8월 수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오전 9시 13분 시우아버님한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시우 8월까지만 다니려고요. 8월 25일에 카드결제 안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7시에 눈을 떴지만 침대에 누어 핸드폰을 보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9시쯤 침대에서 일어나 혈압약을 먹고 커피를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커피 향을 맡고 한 모금 입에 물고 커피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온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님.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지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고, 바로 답장이 이어왔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학원을 해오면서 월요일 아침 퇴원문자 통보는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그리고 그 해당 학생의 수업이 마무리되는 동안 기분을 망치게 하고, 내 쪼잔한 마음을 보란 듯이 내비치게 하는 아킬레스건이 된다.
네 번째 씨앗이었던 시우, 첫인상은 교복을 입은 모습이 똑똑해 보였다. 지역에서 꽤나 수업료가 비싸다고 소문난 사립학교였다. 왼쪽 가슴에는 이시우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시우는 쓰는 단어도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랐다. 특히, 제발요~는 내가 시우를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단어였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인 듯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는 이시우어린이 아버지되는 사람입니다..."
시우아버님의 첫 통화 시 예의 바른 언어였지만, 왠지 철저하게 포장된 중세유럽 귀족들의 말투라고 해야 할까? 어색했다. 따뜻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말속에 진심보다 격식이 우선이라고 해야 할까? 나만의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학원을 오래 해오면서 직감으로 느끼는 것일 것이다. 이걸 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뭐 어떤 것으로 증명하거나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다.
3주나 남은 시간 동안 시우가 제대로 공부할지 걱정이었지만, 당장 환불을 해주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우어머니와 상담을 하고 등록을 시켰는데 관둘 때는 시우아버님이 문자로 통보를 한다는 것은 당하는 입장에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아이가 한 명 빠져서 내 수입이 줄어드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나는 시원섭섭하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시우는 단순히 공부를 하기 싫은 수준이 아니다. 약을 먹으며 견디지만 스스로 자제가 안된다. 나는 지금껏 학생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학생이 먼저 포기를 하고 내 곁을 떠났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시우를 포기했다. 한때는 내가 가르치지 못하는 학생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50살이 넘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부모의 결정을 응원한다. 아이를 나보다 부모가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해야 할 사람들이니까.
시우가 공부방을 관두는 날이 이틀이 남아있을 때였다.
"엄마가 선생님 갖다 드리래요"
작은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받아서 한번 슬쩍 보고는 어머님에게 감사 문자를 보냈다. 으례적으로 하는 문자였다.
그날 한 시간 내내 시우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장난을 치며 이틀만 있으면 공부방을 끊는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선물까지 받은 마당에 뭐라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눈만 흘기고 말았다.
오늘은 더군다나 신규학생이 등록해서 처음 수업하는 날이었고, 그 학생은 지금 내 앞에 앉아 내 설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초등학교2학년 여학생이었다.
"에휴~~ 시우야, 이제 공부방 그만 다니니까 좋은 건 알겠는데 오늘내일은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근데... 시우가 공부방 관두자마자,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 예쁜 학생이 들어왔네~ 그럼, 시우가 좋은 걸까? 내가 더 좋은 걸까?"
나도 모르게 쪼잔함이 올라왔다. 그러자, 매번 시우와 실랑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혀를 내두르던 가람이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 더 좋으실 것 같아요!"
오늘도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내일 하루만 더 버텨보자 라는 심정으로 수업을 마쳤다.
시우가 건네준 봉투를 무심코 뜯었다. 손 편지가 작은 선물과 함께 들어있었다.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시우 엄마입니다.
그동안 저희 시우 잘 가르쳐 주시고 좋은 습관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희 시우 선생님 가르침으로 학습 습관도 좋아지고
사회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너무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멀리서나마 선생님 사업 번창하시고 건승하기를 빌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시우 엄마 드림 -
먹먹해지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짧은 편지였는데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머릿속과 가슴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아까 했던 내 행동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이를 헛 먹었어! 자책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성공운을 보다 보면 가르치는 학생의 퇴원을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의 푸념 섞인 글을 많이 본다.
최선을 다해 가르쳤는데 배신감을 느끼는 감정, 당장 줄어드는 수입 때문에 참고 가르치다가 막상 퇴원하는 것이 시원섭섭하다는 내용...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관계에도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일 뿐, 학생의 퇴원이 내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다.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인연의 학생과 다시 유효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하는 가르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