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가람이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선 모습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또래보다 체격도 크고 말투도 차분하고 의젓해서 듬직한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가람아, 선생님이랑 공부해 볼래?"
예전에는 하지 않던 질문이다.
한때는 학부모님의 등록 의사만으로 상담이 마무리되었고, 아이의 생각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답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그 아이의 ‘선생님’이 되는 첫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여는 진짜 시작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네!"
가람이는 선뜻 그렇게 대답했다.
만약 아이가 주저하거나 대답하지 않는다면, 나는 상담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씀드리곤 한다.
"아이와 다시 한번 상의해 보시고, 결정이 서면 오세요."
그렇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시작된 수업. 첫날의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의미 있게 흘러갔다.
적응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기에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의 수업이 지난 어느 날, 문제를 풀다 말고 가람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아빠가요... 저 공부방 다녀도 소용없대요.”
그 말은 마치 무심하게 툭 던진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꽤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이 담긴 말 같았다.
나는 잠시 가람이를 말없이 쳐다보았고, 가람이의 표정을 살폈다. 공부방에 보내놓고는 공부방 다녀도 소용없다고 애한테 말하는 아빠라니? 동네에서 하는 공부방을 보낸다고 달라질 아이가 아니라는 건가? 아님 내가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건가? 그런 아빠의 말을 서슴없이 옮기는 가람이의 의도는 또 뭔지,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 그래?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너는 어떤데?"
"모르겠어요..."
고개를 살짝 떨구고는 이번에는 내 눈치를 살피는 가람이었다. 내 반응이 궁금한 건지. 아님 진짜 공부방 다녀도 소용없는지를 나에게 다시 확인받고 싶은 건지. 하지만 며칠간의 가람이의 수업태도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이는 자신이 공부방에 와서 공부하면 좋아질 거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듯 보였다. 아빠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건가? 우선 이 상황에 아이의 정확한 의도를 모른 채 내 감정을 비치면 아빠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이와 아빠사이에 객관적인고 냉철한 입장에서 두 사람이 상처받지 않으면서 아빠의 말이 기분이 나쁘지만 선생님으로서 제대로 일침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담 당시 가람이 어머니가 말했었다.
"지금껏 가람이는 남편이 공부를 시켰어요. 가람이에게 누나가 하나 있는데 여자아이라 그런지 아빠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오고 공부도 잘해요. 근데 가람이는 아빠가 가르치면서 많이 부딪치고... 사이가 너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공부방을 알아보게 된 거예요. 애 아빠는 '아무 데나 보내라. 가까운 데로... 어차피 다 똑같다. 부모처럼 책임지고 공부시켜 주는 학원은 없으니 그냥 보내라'라고 말했어요."
"아...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아이가 공부방에 오는 동안에는 어떤 선생님이든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도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분은 부모님이 맞지요. 지금 가람이가 저희 공부방에 다닌다면 아버님이 가람이의 공부에 계속 관여하게 되실까요? 그럼 아버님과 다시 상담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선생님. 가람이 공부방 보내면 남편은 딸아이만 가르치고 가람이의 공부에 절대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요. 아주 포기 상태예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음... 아빠 말씀이 맞을 수도 있어. 아빠만큼 널 잘 알고,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
근데 가람아, 아빠 말씀처럼 누구에게 배우든, 네가 변하지 않으면 진짜 소용없는 일이 되겠지.
그런데 만약... 가르치는 사람과 방법이 달라졌을 때, 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어떨까?
그렇게 될 수 있게 선생님하고 한 번 해 볼래?”
내 반응을 살피며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가람이의 표정이 살짝 바뀌는 걸 볼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눈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네"
짧은 대답이었고, 확신해 찬 자신 있는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제 한 팀이 되어 가람이 아빠와 맞서서 공부방에 다녀도 소용없다고 말한 아빠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했다. 가람이가 정말 나와 수업하면서 변화될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확실한 건 공부는 절대 부모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능력이 있고 잘 가르치는 사람일지라도 자식 앞에서는 선생님이 아닌 엄마가 되고, 아이도 선생님이 아닌 엄마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계가 나빠질 뿐 절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나는 경험했고 증명당했다.
가람이의 말은 내게 꽤 신경이 쓰이는 말이었다.
2주 만에 단원평가를 보고 와서는 시험지를 내밀며 풀이 죽은 가람이었다.
"그래도... 75점 이상은 맞았었는데... 이번시험은 70점이에요. 70점 맞은 건 처음이에요..."
시험지를 훑어보면서 난감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립초라고 해도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의 단원평가였다.
수업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가르쳤고 가람이도 열심히 따라와 주고 있었다. 골프선수였던 가람이는 골프와 공부 두 가지를 다 감당하기에 버거웠다고 했다. 그래서 골프를 관두고 공부를 선택했다.
"가람이가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했어요. 곧잘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공부와 골프를 둘 다 하려니 많이 힘들었나 보더라고요. 결국 골프를 관두게 되었고 우리 부부는 진짜 많이 실망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이가 결정하고 선택한 거니 어쩔 수 없었어요.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골프를 관두고 남편은 공부를 시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가람이가 자꾸 남편하고 부딪치는 거예요.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중간에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둘 사이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가람이는 아빠 보란 듯이 공부를 더 안 하는 거예요. 남편은 결국 포기했어요"
거기에다 공부방 다녀도 소용없다는 말까지 들은 마당이었다. 틀린 문제를 설명해 주고 다음 시험에는 잘 보자 하고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예민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부를 가르칠 때 시험점수보다는 공부습관을 바로잡는데 중점을 둔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겠지만. 난 아이가 책상에 앉는 자세,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 글씨 예쁘게 쓰는 것,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편이다. 기본마음가짐과 태도가 바뀌면 성적은 당연히 뒤따라서 오르게 되어있다.
가람이에게서는 그중 유독 글씨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알아보지 못하게 글씨를 쓰는 것과 글씨철자를 매번 틀리게 썼다. 이 습관은 아빠와도 매번 부딪치는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고치지 못했다고 했다.
"1학년 지율이가 나와서 가람이 오빠가 쓴 글씨 좀 읽어볼래?"
지율이는 1학년이지만, 공부시간에는 집중해서 공부하는 우리 공부방에 몇 안 되는 모범생이다.
"... 음... 음? 읍?... 사가협...."
이렇게 우물쭈물 읽고 있었다.
"지율아, 그걸 왜 못 읽어? 1학년이라 그런가? 그럼... 2학년이 읽어보자!"
하민이가 글씨를 읽기 위해 요리조리 살피지만, 역시 모르겠단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가람이는 얼굴이 붉어졌고 창피함으로 점점 얼굴이 이그러졌다. 이쯤 되니 다른 아이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나와 가람이의 글씨를 읽어보겠다고 난리였다.
"야! 아니야 이거 미음이야 비음 아니야"
"나는 이응처럼 보이는데? 하... 진짜 못 읽겠어요!"
나는 아이들과 가람이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어머? 너희들 한글도 못 읽는 거야? 선생님이 한글부터 다시 가르쳐야겠네?"
"아니에요! 저 한글 읽을 수 있어요. 형 글씨가 이상해요"
"그렇지? 우린 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데 왜 지금 못 읽는지 이유를 찾았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이 어려우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하는 거야. 자기만 알아보게 쓰는 것은 글씨가 아니라 암호야. 가람이는 글씨를 쓴 게 아니라 암호를 써 놨네"
가람이는 문제집을 가져가서 다시 글씨를 정성스럽게 고쳐서 가져왔다. 이런 상황이 두어 번 반복되자, 이제는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한다.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험을 봤다며 가람이가 시험지를 내밀었다.
"뭐야? 방학 끝난 지 이틀도 안 지났는데 벌써 단원평가를 봤다고?"
"1학기 전체범위를 시험 봤어요. 여기요... 85점이에요..."
나는 시험지를 보느라, 가람이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했다. 시험지를 보며 왜 틀렸는지, 얼마나 어려웠는지, 추궁하기에 바빴다.
"뭐야? 왜 다 쉬운 문제만 틀린 거야? 뒤에 서술형 문제는 다 맞았는데?"
"...... 3개 틀려서 85점이에요"
"그러게... 3개나 틀렸어. 다 쉬운 문제인데.... 아까워라~ 잘했는데 더 열심히 해 보자!"
시험지를 내게서 받아 들고 내 얼굴을 다시 살피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람이는 시험지를 내밀며 내 칭찬을 기다린 거였는데 내가 엉뚱한 소리만 하고 칭찬에는 인색하게 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음날 가람이가 공부방 다닌 지 3개월이 되어 어머니와 마지막 대면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3개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네요. 그동안 상담받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 달부터는 전화상담으로 진행할게요"
"아니에요. 이렇게 매달 꼼꼼히 상담해 주는 학원이 어디 있냐며, 어디 대형학원 다니냐고 주위의 엄마들이 물어봐요ㅎㅎ 제가 집 근처 공부방 보내는데 매달 이렇게 상담해 준다고 하니 다들 놀랩니다. 진짜 대단하세요. 요즘 누가 이렇게 상담을 해주나요? 저도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지만, 쉽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ㅎㅎ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아참 어제 가람이가 1학기 전범위를 시험 봤다고 시험지를 보여줬는데 제가 그만 실수를 했어요. 85점 맞았다고 좋아서 저한테 시험지를 보여준건데... 왜 쉬운 걸 틀렸냐고 면박만 주고 칭찬에 인색했어요. 집에 가서 섭섭해하지는 않았나요?"
"ㅎㅎㅎ안 그래도 시험지 보여드렸는데 왜 쉬운 걸 다 틀렸냐고 선생님이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요? 어쩌지요? 성적이 올라서 기분 좋아 보여준 건데 말이죠.."
"걱정 마세요. 더 잘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요즘 수학공부가 제일 재미있다고 해요. 보내주신 교재 보니까 글씨도 너무 잘 쓰고, 열심히 한 흔적이 보여서 남편이 선생님 잘 만났다고 놀라워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아이가 너무 달라져서 우리 둘 다 진짜 많이 놀랐어요. 남편이 이젠 가람이 공부에 대해선 1도 참견을 안 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가람이는 아버지에게 ‘학생’이기 전에 ‘아들’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에게 ‘선생님’이기 전에 ‘아빠’여야 한다.
그 두 역할이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끝없이 비교당하고, 꾸중을 듣고, 지적받는 관계 속에서 공부를 ‘배움’이 아닌 ‘고통’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흘러가던 공부 시간, 주말마다 숙제를 검사받는 그 시간이 아이에게 공부가 아니라 “혼나는 자리”로 남아버렸다고 했다.
가람이에게는 성적보다 동기보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더 시급해 보였다.
그래서 아버님에게 조심스럽게 협조를 구했었다.
“공부방에 머무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선생님이 아닌, 아이의 아빠로 함께해 주세요. 공부는 제가 맡겠습니다!”
가람이에게는 공부를 다시 가르치는 것보다 공부를 통해 '나는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공부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어른 한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오늘도 아이와 마주 앉아 나는 나에게 조용히 말한다.
“공부여행,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