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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같이 놀면 사귀는 거예요?

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by 고해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선생님, 예나가 제가 지나가는 데 때리려고 해요"


시우였다. 공부를 하다가 연필을 깎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는 중 예나와 시비가 붙은 것이다.


"아니에요. 저 안 때렸어요"


"아니 때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손을 휘저으며) 했잖아?"


둘의 대화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나도 한마디 했다.


"공부 중이니까 별일 아니면 공부하자. 요즘 둘이 계속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리는 것 같아? 그만하자"


"선생님, 제가 안 때렸는데 오빠가..."


"아니, 누가 때렸대? 때리려고 했다는 거지? 그리고 살짝 닿기도 했어!"


"아니야~나 안 그랬다고~~~"


점점 억양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


"시우야, 살짝 그런 거니까. 좀 봐주고 공부하자. 어? 그만해"


"사과해야지요. 거기다가 여기(자기 주요 부위를 손으로 가리키며)를 치려고 했다고요. 살짝 닿은 것 같기도 했어요"


엥? 어딜?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없이 어이없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시우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따지는 성향이다. 한번 시작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제 고추를 손으로 이렇게 했는데 살짝 닿았단 말이에요"


"아니에요. 저 안 그랬어요. 오빠가 발로 절 이렇게(자기 발을 가리키며) 했어요"


공부방이라 CCTV를 책상 위에 놓는 걸로 설치했다가 아이들이 많지 않고, 불편해서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운영하던 학원에서도 초등4학년 남자아이가 같은 학년여자아이가 자기를 때렸다고 이른 적이 있다.

수업 중이었고 영어선생님은 아이들이 서로 왜 싸우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시며 원장실로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남자아이는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상태였고, 그 짧은 시간에 뒤에 있던 여자아이가 등을 때렸다는 것이었다. 여자아이는 아니라고 하고 급기야 남자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당시에는 교실마다 CCTV가 네 방향으로 달려서 어느 각도에서도 다 촬영이 되고 있었다.

나는 CCTV를 돌려봤고 사건의 진상이 깔끔히 규명되었다.

남자아이 뒤에서 줄을 서고 있던 여자아이가 장난스럽게 등을 때리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남자아이는 그런 장난을 치는 여자아이가 너무 싫어서 등에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때렸다고 이른 것이다.

두 아이에게 CCTV를 보여주었지만, 남자아이는 진짜 때렸다고 생떼를 쓰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남자아이어머니를 오시게 해서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고서야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CCTV를 켜둔 상태여도 책상아래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는 촬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실랑이에 결국 수업을 중단하고 이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까는 안 닿았다고 하더니 또 닿았다고 하고... 시우야 너도 예나를 발로 건드렸다며?"


"아니에요. 저는 안 그랬어요"


"선생님 제가 봤어요. 시우형이 예나 발로 차는 거요"


같이 공부를 하고 있던 영민이가 재밌는 구경이 났다는 식으로 둘 사이의 대화를 고개를 돌려가며 보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아니야! 내가 언제?"


시우가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영민이는 예나 앞까지 가서는 시우가 예나에게 한 모습을 흉내 내고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서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저 똑똑히 바로 앞에서 봤어요. 제가 바로 증인이에요"


"그럼 예나가 시우 때리는 건 봤어?"


"아니요. 그건 못 봤어요"


"다른 아이들은 본 것 있으면 말해 봐"


"못 봤어요 공부하느라..."


"그럼 영민이만 시우가 예나를 발로 차는 것을 본 거네"


증인까지 나선 상태였다. 일이 점점 시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시우는 실실 웃으며 말을 하다가 점점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예나가 갑자기 아까와는 다른 눈빛으로 시우의 표정을 살피더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때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손이 닿았던 것 같아요"


때리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맞았다고 주장하다가 태세전환을 하고 나선 예나였다.

지금 예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말로 시우 편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왜? 초등학생들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우기면 우겼지 자기가 불리한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도 수업하려고 공부방에 들어오는 예나를 향해 시우가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히히~ 저기 바보 오네! 바보야~"


"시우! 왜 그래? 예나한테 왜 바보라고 놀리는 거야?"


"예나가 바보처럼 굴잖아요? 그니까 바보라고 한 거예요"


"너 한 번만 더 예나 놀리는 거 보면 선생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예나에게 어서 사과하고 공부하자."


우리 둘이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 사이, 예나는 기분나빠하기는 커녕 웃으며 자기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진짜 바보아니야? 시우가 놀려대는 대도 괜찮다고 하면서 웃고 있으니까, 자꾸 놀리는 거라구!


"예나야 시우가 밖에서도 놀리니? 그럼 꼭 선생님한테 말해~"


"전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놀리면 안 되는 거야. 꼭 선생님한테 말해 줘"


"네~"


대답하면서 예나는 시우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고, 시우도 예나를 보며 메롱 거리며 혀를 날름거리다가 내가 쳐다보자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사달이 나기 전 몇 주 전부터 둘 사이가 심상치 않았다.

예나가 약을 먹기 시작하고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예나가 먼저 와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뒤이어 등원한 시우가 예나를 보자,


"예나 옆에 안 앉을 거야~멀리 가서 앉아야지~예나가 너무 시끄러워 집중이 안 돼~"


놀리는 듯 무시하는 듯 예나옆을 지나면서 슬쩍슬쩍 예나반응을 살피며 자리에 가서 앉는다.

예나는 그냥 살짝 미소를 짓더니 아무말없이 공부만 했다.


"또 왜 들어오자마자 예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려고 하는 거야? 요즘 예나 예전처럼 공부시간에 노래도 안 부르고 공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예나야,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 그리고 시우도 공부하고"


예나의 눈치를 살피는 건 시우뿐만이 아니다. 나도 예나가 괜찮다고 하지만,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 예나한테서 멀리 시우를 떨어뜨려 앉게 했다.


"그래요? 요즘 예나가 공부 열심히 한단 말이죠? 히히 진짜야? 예나야? 너 진짜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예나는 대답대신 웃고만 있었다. 예나가 대응을 하지 않으니 싸움으로 번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계속 저렇게 행동하도록 놔두면 안될 것 같았다.






분명 시우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예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확신이 든 시점이었다.


"예나야 진짜 닿았어? 그럼 오빠에게 사과해야 돼. 너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실수여도 오빠가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네... 오빠 미안해"


예나는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곧바로 사과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시우야, 예나 사과받아 줄거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대답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예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화가난듯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다. 웃음기와 장난기는 싹 사라졌지만, 서서히 똘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나가 먼저 사과를 했으니 시우도 사과하고 끝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시우 너도 예나에게 사과해. 너도 예나 발을 찼으니까 사과하고 어서 공부하자"


"싫어요 저는 절대로 사과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뭐라고? 왜? 예나가 먼저 사과했고, 너는 그 사과를 받아 줬잖아? 그럼 너도 예나에게 사과해야지"


"그래 맞아! 예나에게 사과해~내가 봤어. 형아가 예나 발로 차는 거 내가 증인이잖아?"


영민이가 또 나섰다. 그 말을 들은 시우의 얼굴이 붉그락 해지며 더 굳어지고 있었다.


"증인이 있고 제가 때렸어도, 전 절대 사과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진짜 발로 찬 건 인정하지만, 사과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 전 절대 안 해요!"


수업은 해야 하고 네버엔딩 고집이 발동한 시우...

사소한 걸로 물고 늘어지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실랑이로 이어져 수업이 중단되는 일이 많았다.


"알았어. 우선 수업해야 하니까 먼저 공부하고 끝나면 어머님들하고 상담할게"




그날 수업이 끝나고 녹초가 된 상태로 전화 상담까지 해야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런 일이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긴 문장으로 각각의 어머니한테 문자를 작성했다.

어머님들 입장에서는 내 글이 혹여 오해가 될 수도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쳇 GPT를 이용해 문자내용을 다듬었다.


<이 문자를 두 분 어머님에게 각각 보낼 거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두 아이사이에 오늘 일어났던 일을 어머님들이 오해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잘 다듬어서 정리해 줘>


쳇 GPT는 오해되는 일이 생기거나 아이의 태도가 좋지 않았을 때, 곤란한 상담을 해야 할 때면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에 관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정보를 입력해 놓았더니 보조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준다.

문자를 받은 시우어머니는 별반응이 없었고 짧게 '알겠습니다'로 답문을 보내셨다.

반면에 예나어머니는 긴 문장으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셨다.


"우리 예나가 공부방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요. 예나가 약을 먹고 있지만 아직 약의 용량을 갑자기 늘릴 수 없어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공부방을 계속 다니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예나가 잘못했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니다. 예나와 시우사이에 있었던 일이 보냈고 예나는 시우에게 사과했고 시우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우가 예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 제가 좀 더 신경 쓰겠다는 문자내용이었다. 그리고 난 패해라는 단어에 유달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할 수없이 전화통화를 해야 했다. 문자로는 읽는 입장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예나가 ADHD진단을 받고 매주 센터에 다니며 훈련을 시키느라 워킹맘이었던 예나어머님은 지쳐 있었다.




예나와 시우일로 문자까지 보내고 나니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졌다.

아들과 오랜만에 같이 저녁밥을 먹는데 아들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녹초가 되셨어?"


"말도 마. 말할 기운도 없어...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요즘은 아이들에게 내가 기를 다 빨리는 것 같아. 예전에는 아이들 기를 내가 빨아먹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또 누가 울 엄마를 힘들게 했을까? 시우지? 시우 맞지? 오늘은 무슨 일로 엄마를 기빨리게 했어?"


매번 식탁에서 나오는 단골이름 시우였기에 아들도 알고 있었다.


"예나가... 예나 알지? 예나가 시우 고추를 건드렸다고 난리가 난 거야. 예나는 아니라고 펄쩍 뛰고... 그러다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먹고 있던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시우와 예나의 러브스토리네..."


"러브스토리? 시우가 예나를 괴롭힌다니까! 바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아니야 맨날 만나면 예나를 놀리고 안 좋은 소리 하고 그런단 말이야. 좋아하면 요즘 애들은 선물을 주거나 고백을 하지"


"에이~ 우리 엄마가 나이를 드시긴 하셨네 감이 떨어졌어. 요즘 애들도 좋아하면 괴롭히고 놀려~ 특히 시우 같은 아이들은 고백하기가 낯간지러워서 못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예나에게 절대 사과도 안 했다며? 체면 떨어지게 지가 좋아해서 장난쳤다가 일이 커지니까 예나 앞에서 쪽팔렸던 거지. 남자가 이런 상황에 절대 사과 못하지. 거기에다 선생님이 하란다고 '네' 할 시우도 아니고 ㅎㅎㅎㅎㅎ"


"뭐야? 그런 거였어? 설마... 그래도 좋아하는데 그렇게 괴롭힌다고?"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유안이를 봐도 서하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도 당당히 고백하지 않았던가? 유안이는 수줍음이 많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는 아이다. 반면에 시우는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고추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말하는 아이가 아닌가?




예나 어머님의 그런 반응도 고추라는 단어 때문에 생긴 오해였고 예나가 또래보다 어리다고 진단된 다음부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다고 약 먹으면 좋아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사소한 일을 겪게 되면서 지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예나 약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머님이 벌써 지치시면 어떡해요?"


"그니까요... 겁이 나요. 예나학교 담임선생님 딸도 어렸을 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해서 지금 중학생인데도 먹지만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친구도 없다고 걱정하시더라고요. 예나도 그렇게 될까 봐..."


"아... 그래서 학교담임선생님도 예나의 증상을 미리 짐작하셔서 말씀이 없었던 거였네요. 예나어머님 마음을 이해하시겠어요. 그래도 예나와 같은 딸을 키우시는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네요. 예나 상태를 편하게 말씀하실 수 있게 되어서요"


그렇게 하나둘씩 대화를 하면서 오해가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나어머님하고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시우와 예나가 공부방이 끝나고 둘이 자주 만나 놀기도 하고 예나 집에도 와서 놀고 갔다고 했다.


"요즘 집에 자주 와요 시우오빠... 저도 시우오빠라고 부르게 되네요. 한 번은 너무 늦게까지 놀길래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더니 예나 대신 시우가 받아서 좀 더 놀다 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7시까지 놀고 예나 집까지 제가 책임지고 데려다 줄게요 제발요~하길래 당황했었어요"


제발요~는 시우의 특유의 말투다. 처음 시우가 등록했을 때 정말 예의 바른 학생이라고 생각했던 마법의 단어를 예나어머님에게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 후 계속 집에 찾아와 놀게 해달라고 하거나 예나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예나어머님에게 직접 전화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난 확인 해 보기로 했다.

예나가 먼저 등원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뒤 이어 시우가 들어왔다.

마침 그날은 자리가 예나 옆자리만 빈 상태였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기도 했고 아이들이 예나옆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부산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늘 예나 근처의 자리는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시우야, 예나 옆자리 밖에 자리가 없는데 어쩌지?"


슬쩍 예나얼굴을 살핀 뒤 조용히 예나옆으로 가서 앉는다. 예나도 별 반응 없이 앉아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아이들도 한번 고개를 들어 시우의 행동을 보더니 관심 없는 듯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30분쯤 시간이 지난 후 몇 명의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나가고, 공부시간이 된 유안이가 들어오더니 시우와 예나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선생님, 시우와 예나 어제 싸웠는데 같이 앉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내 첫 번째 씨앗인 유안이는 공부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꼼꼼히 챙기며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늘면서 아이들 이름과 등원시간등 공부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다.

공부방에서 서로 싸우면 화해할 때까지 서로 얼굴도 보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놀지 말라는 규칙을 만들어놨다. 그 규칙 때문이라도 바로 화해를 하거나 먼저 사과를 한다. 그런데 시우는 달랐다.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럼 이 상황은 유안이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야 나 사과했어!"


"예나한테 사과했어? 언제?"


알면서도 모른 척 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예나가 대답한다.


"오늘 영어공부방에서 만나서 사과했어요"


"...그럼 같이 앉아도 되고, 말도 해도 되지!"


유안이는 이제 이해가 됐다는 식으로 교재를 꺼내며 중얼거린다.

요것들 봐라? 인정하기 싫었지만 감이 떨어진 게 확실했고 난 나이를 많이 먹은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 날이후로 이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눈치는 이미 안 본 지 오래됐다) 둘이 앉기 시작했다.

먼저 등원하는 예나는 두 자리씩 배치되어 있는 자리를 잡고 30분 후 시우가 등원하면 시우를 향해 손짓을 한다 .


"오빠! 내 옆에 앉아 여기~!"


그러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모른 척 예나옆에 앉는다. 이 광경을 공부하던 아이들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내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 수업에 집중했다. 그러면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린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둘이 수업하면서 꽁양거리기 시작했다.


"예나하고 시우 둘이 사귀니?"


난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른다. 무조건 직진이다. 이것이 초등학생들에게는 먹히는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불편해하는 학생들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말을 먼저 내뱉고 늘 후해를 한다.


"아니에요~"


동시에 합창하듯이 대답하는 시우와 예나다. 동시에 대답하고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서로 눈을 찡끗하며 얼굴을 부딪히는 시늉을 한다.


"사귀는 거 맞는 거 같아요~"


이번에도 영민이다. 다른 아이들도 영민이의 말에 맞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니까! 우린 그냥 노는 거야~"


"그게 사귀는 거지. 맨날 만나서 논다는 소문이 있는데? 초등학생들이 둘이 전화하고 문자하고 놀면 사귀는 거지. 그럼 뭘 더 해야 사귀는 걸까?"


"맞아요! 선생님 그게 사귀는 거예요. 저도 민서랑 사귀잖아요? 그래서 전화하고 문자 해요. 멀리 살아서 자주 못 만나지만 방학 때는 만날 수 있어요"


또 영민이가 나선다.


"선생님 예나는 3학년이고 시우는 4학년인데 어떻게 사귀어요? 같은 학년이 아니잖아요?"


"뭔 소리야? 왜 같은 학년끼리만 사귈 수 있어? 엄마 아빠가 동갑도 있지만 아빠가 대체로 나이가 많잖아? 안 그래?"


시우는 말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고 공부만 싫어할 뿐 모르는 게 없는 아이다.


"아니야. 우리 엄마가 그랬어! 같은 학년끼리만 사귈 수 있다고..."


서하에게 고백하고 돌려 차인 유안이는 고개를 숙이면서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니까 둘이 사귀는 게 맞네. 너희들도 (공부방아이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해?"


"네~~~"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시우가 아니라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눈알을 위로 올리고 흰자를 보이며 매롱 하는 시늉을 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 같이 놀면 사귀는 거예요?"


예나가 다시 한번 물었다. 예나는 사귀는 것을 공식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듯했고 시우가 아니라고 펄쩍 뛰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초등학생들의 연애 어디까지 간섭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사내 연애처럼 결국 하나가 관두거나 둘 다 관두거나 하는 것이 국룰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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