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유안이 영민이 서하를 나는 씨앗 삼총사라고 부른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옹기종기 모여 오목을 두고 셋이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셋만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신입생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영민아, 무슨 일 있어? 왜 핸드폰을 자꾸 만지고 그래~ 공부시간에는 핸드폰 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리 줘 선생님이 보관할게"
목걸이처럼 핸드폰을 목에 걸고 있다가 힘없이 건네주고는 풀이 죽은 채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는 그때, 영민이 핸드폰에서 벨이 울렸다.
"무음으로 안 해놨니?"
재빨리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는 꼭 받아야 하는 전화라고 받게 해 달라는 제스처로 두 손을 모으고 한 손가락을 들어 '제발 한 번만요' 하는 것이다.
부모님 전화 외에는 수업 중 금지다. 더군다나 공부방 등하원 알림을 하고 있어 이 전화는 친구가 분명했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거절버튼을 밀어버리고 무음으로 바꾸는 영민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기다리던 전화였나 보다 영민이의 간절한 눈빛에 우선 받으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안이와 서하도 영민이의 통화상 대가 누구인지 궁금했는지 연필을 잡은 채로 숨죽이고 있었다.
나 역시 통화내용을 들으려고 설명하는 것을 멈추고 전화를 받기 위해 구석에 있는 영민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공부방~끝나고 전화할게"
뭐야? 그게 끝이야? 뭔가 대단한 용건이 있는 것 같았는데 통화는 10초 만에 끝났고 영민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있었다. 얼굴이 발그레 해졌고 평소 영민이 말투와는 다른... 흡사 성시경의 잘 자요~~ 버전이었다.
"누군데 목소리에서 꿀이 떨어질까? 영민아 누구양~~???"
통화를 끝내고 다시 책상으로 복귀하는 영민이의 귀에 대고 살짝 물었다.
궁금한 건 해결하고 공부를 해야 했다.
"저도 궁금해요~~"
불쑥 서하가 말했다. 너는 왜? 그 말과 동시에 유안이는 서하 얼굴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여자친구요~"
"여자친구? 사귀는 사이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 버렸다.
"네 우리 결혼할 거예요"
"뭐라고? 결혼을 한다고?"
태연스럽게 결혼할 거라고 대답하는 영민이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애기처럼 굴던 애가 갑자기 사나이처럼 구는 것이 낯설었다. 나의 당혹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연애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노느라 전화를 못 받았거든요? 그래서 민서가 화났어요. 한 번만 더 안 받으면 진짜 끝장이라고 했어요"
"아~ㅎㅎ 그 여자친구 이름이 민서야? ㅎㅎㅎㅎ"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큰소리로 웃었다. 오랜만에 배가 아팠을 정도였다.
씨앗 삼총사는 내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고는 각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 표정을 보고는 간신히 멈추었던 웃음이 다시 터져버렸다.
"영민아, ㅎㅎ 너 결혼할 때 ㅎㅎ 선생님 초대 해 줄 거야?ㅎㅎ"
웃음이 계속 실실 새어 나온다.
학원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던 적 있다.
초등학생들끼리 여자친구, 남자친구 하면서 몰려다니면 내가 꼭 결혼할 거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보곤 했었다.
"에이~아니요 그냥 사귀는 거예요. 초등학생이 어떻게 결혼을 해요? 결혼은 아직 생각 안 해 봤지만, 제가 결혼할 때쯤이면.... 선생님은... 초대 못할 것 같은데요?"
"왜? 초대 못하는데?"
"선생님 아마 그때 되면... 돌아가시지 않았을까요?"
초대를 안 하겠다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맞아, 살아계시는 것이 기적일걸?"
뭐라는 건지 초등학생들끼리 진지하게 주고받는 대화에 "됐어! 공부나 해 숙제 많이 내줘야겠다" 복수를 하며 마무리 됐던 스토리...
다시 그 질문을 영민이에게 하고 상처받을까 봐 겁은 났지만 궁금했다.
"그럼요! 초대할 거예요. 꼭 오셔야 해요"
"진짜? 선생님 초대 해 줄 거야? 근데... 그때쯤에는 선생님이 너무 나이가 많아 죽어서 못 가면 어쩌지?"
"어? 정말요? 거짓말 마세요! 선생님 젊잖아요? 꼭 오셔야 해요. 제가 초대할게요. 나이 안 많아 보여요"
"고마워. 그럼 유안이랑 서하도 초대해 줘. 해 줄 거지?"
우리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서하는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그런 서하의 표정을 살피는 유안이도 같이 표정이 굳고 있었다.
"선생님 공부 언제 해요?"
유안이의 현실적인 질문에 수다가 마무리되고 나는 다시 공부방 선생님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어? 미안 이제 공부하자"
"선생님... 저 민서랑 헤어졌어요."
며칠 후 공부방에 들어오면서 인사대신 저 말 한마디를 하고는 자리에 주저앉듯 앉는다.
앉은 다음에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영민이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심각한 척 물었다.
"왜? 며칠전만 해도 잘 지냈잖아? 싸웠어?"
"아니요. 멀리 이사 와서 자주 못 만나니까, 민서가 제 전화를 잘 안 받고 저도 잘 못 받고... 에휴..."
"잘됐네! 그럼 민서랑 헤어지고 가까운 데서 다시 사귀면 되잖아? 민서는 너무 멀리 사니까 자주 못 만나고 전화도 자주 못하고, 가~끔 만나니까 오해도 생기고 그래서 싸우게 되니까 헤어지게 된 거잖아?"
"그렇죠... 근데 가까운 데 사는 여자친구가 없어요"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며 대답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창밖으로 고정된 상태였다.
기분이 상하거나 안 좋으면 창밖을 보는 버릇이 있는 영민이다.
나는 커튼을 내려 창문을 가리면서 똑바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왜 없어? 서하도 있고... 또.... 서하가 있잖아?"
서하는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리며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아는 유일한 영민이 또래 여자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세명밖에 없는 공부방아이들을 보며 현타가 왔다.
"근데요... 선생님... 저는 영민이 사는 아파트에 안 살고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잖아요?... 그럼 저는 가까운 거예요? 가까운 것 같긴 하거든요..."
"그.. 그렇지.. 가깝지. 서하 사는 아파트면 영민이랑 가까운 곳에 사는 거야. 영민아, 서하 어때? 민서 말고 서하랑 사귀는 건?"
서하가 영민이를 좋아하네~~ 요것들 봐라?
점점 러브스토리가 흥미진진 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민이는 서하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싫어요! 전 민서랑 안 헤어질 거예요"
그렇게 대놓고! 그럼 안돼! 서하가 상처받잖아? 서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왜? 서하가 어때서? 왜 싫어?"
"아마도... 제가 사는 아파트가 먼가 봐요..."
서하는 고개를 숙인상태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럼 서하야 나랑 사귀자! 나랑 결혼해?"
지금껏 잠자코 있던 유안이가 서하를 향해 고백을 해버렸다.
"유안이가 집에만 오면 서하얘기뿐이에요. 서하가 오목을 그렇게 잘 둔다면서요?"
"아닌데요... 이제 막 배워서 잘 못 둬요"
"공부도 잘한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공부방에서 유안이가 서하에게 고백해 버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민망해하시며 어쩔 줄 몰라하신다. 유안이는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다고 걱정을 하셨다. 집에 와서도 집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라고도 해봤고 친구를 사귀어 보라고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기 위해 처음 행동게시를 한 아이가 서하였다.
그런 유안이가 유일하게 서하에게 저돌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러브스토리가 점점 심각해지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서하가 가장 일찍 공부방에 온 날이었다.
"서하야, 선생님이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히 말해 줄래?"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생각난 듯 "네"라고 대답한다. 서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많아 대답하는 것을 가르쳐준 상태였다.
"며칠 전에 유안이 오빠가 서하한테 사귀자고 한 거 기억나지?"
"네..."
"서하는 유안이 오빠를 어떻게 생각해? 그니까 사귀는 것이 그냥 서로 문자하고 전화도 하고 가끔 만나 노는 걸 사귄다고 하는 거야. 좀 더 친하게 진해자는 표현이지"
"유안이 오빠는... 오빠잖아요?"
"응? 그래 오빠지. 그게 뭐?"
"오빠잖아요? 친구가 될 수 없어요"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다시 물었다.
"유안이는 오빠라서 친구가 될 수 없고, 영민이는 같은 학년이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네! 그거예요"
서하의 확고한 마음을 확인한 나는 유안이가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좋은데 유안이가 서하에게 일방적으로 고백을 하고 있어요.
서하는 계속 묵묵부답이고요. 처음에는 초등학생이니 귀엽다 생각했는데 유안이가 좀 심각한 것 같아요"
"그러게요 선생님. 유안이가 서하때문에 고민이 되는지 저한테도 말했어요"
"서하는 유안이가 오빠이기 때문에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해요. 친구는 같은 학년이어야 된다고요"
"유안이한테 제가 잘 설명할게요. 아이들 키우는 게 이렇게 어렵네요"
신기한 스쿨버스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커플이 없지만, 팬들끼리 상상해서 만든 커플조합이 몇 개 있다고 한다. 주로 성격이 반대 거나 자주 붙어 다니는 캐릭터들이 엮이곤 한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아놀드 같은 성격은 도로시 앤의 똑똑하고 차분한 성격이 대비돼서 자주 엮이고,
실제 애니에서도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웬다와 랄피는 둘 다 활발하고 모험심 강한 성격이라 에너자이저 커플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많아 커플이 되면 어떨까 상상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카롤로스와 키샤는 카롤로스의 유머러스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과 키샤의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격의 대비가 재미있어 엮이는 경우가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팬들의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나만의 신기한 스쿨버스에서는 상상 속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아놀드와 피비 테루스의 조합이라니?
둘 다 소심하면서도 착한 성격이라 잘 맞을 것 같다.
"서하야, 유안오빠랑 사귀지는 말고 가끔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고 우연히 만나면 같이 노는 건 어때?"
"오빠가 자꾸 문자를 너무 많이 해요. 문자 테러예요"
"그래? 유안이가 문자를 하는구나? 그럼 너는 뭐라고 답하는데?"
"너무 많이 보내니까... 전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렇구나... 그럼 영민이는 문자 하니?"
"아니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했어요"
"영민이가 문자 하면 답장을 할 거야?"
"문자를 안 하는데 어떻게 답장을 해요? 그리고 민서하고 문자 하느라 저한테는 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그.. 그렇겠구나"
하~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