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2년 전, 나는 일을 내려놓았다 몸이 먼저 멈췄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나는 정신력으로 버텼고, 아프면 잠깐 쉬면 된다고 생각하며 일만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진짜 위험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처음으로 ‘아, 이제는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퇴직자가 되었고, 그 퇴직은 곧 ‘은퇴’처럼 느껴졌다
50살, 다시 시작하기엔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남은 생이 길게 느껴졌다
몸을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렸고, 마음을 회복하는 데 또 1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프로젝트에 책을 출품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동안 미처 다독이지 못한 내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글이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글을 쓰는 나날이 쌓이면서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건강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자, 오히려 불안이 밀려왔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은 당연하게도, 내가 20년 넘게 해 왔던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망설여졌다.
지금의 나로도 가능할까?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은 예전만큼 열정이 남아 있긴 할까?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보기도 했다
부동산 중개와 주택관리사 자격증도 고민해 보고, 창업박람회도 다니며 창업을 해 볼까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내키지 않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해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보게 된 건 20년 넘게 해 왔던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해 왔던 일인데, 처음 해보는 것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때, 유튜브에서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다시 학원을 개원하고 유튜브 강의까지 하고 있는 열정적인 모습, 지금도 현역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어느새 초라해진 내가 보였다
또 다른 지인은 나보다 아홉 살이 많다
한동안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 학원을 개원했다고 해서 갔었다
강사를 두고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녹아든 현실적 타협의 무게를 느끼며, 허탈감과 함께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학원을 개원할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안정되기까지 버틸 자신도 없었다
2년 쉬는 동안 매달 300만 원씩 지출한 결과, 이제는 여유 자금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공부방을 다시 하는 일만이 유일한 길이었지만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텐데... 가능할까? 체력도 나이도 다 내겐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고자 공부방 선생님들의 카페, ‘성공운’을 자주 들락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떤 날은 열두 번도 넘게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너무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더 시작하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모르면 용감하다란 말이 실감이 났다
몰라서 시작한 일이 평생 하게 된 일이 되었으니까.
오늘도 성공운카페에는 공부방 선생님들의 희로애락의 글이 넘쳐나고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개원 한 달 만에 30명을 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선생님은 월 1,000만 원을 달성했다고 자랑 글에 축하 댓글과 함께 월 2, 000만 원을 향해 가는 선생님까지.
나도 일을 관두기 전까지는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고 월 1,000만 원 이상 벌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내가 마치 '왕년에 말이야'라며 나이 많은 사람이 허세 부리는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한동안 성공운카페에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다.
또 어느 날에는
'개원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씨앗 한 명도 등록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아이들이 들어올까요?' 실망하는 글을 보면서 미래의 내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젊은 사람도 자리 잡기 힘들구나... 그럼 난 어쩌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결국, 시작하겠다는 결심조차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포기하고 결심하기를 수백 번 수천번을 반복하던 어느 날,
성공운 카페에 글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궁금했다
과연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나이가 궁금했는데 엉뚱한 글에 꽂혀버렸다
외모가 허락하는 한....
바로 거울 앞으로 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일까?
마음이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2년 동안 건강관리하면서 몸무게를 10킬로나 감량했고, 이제는 55 사이즈도 거뜬히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 유전자로 흰머리가 거의 없는 것도 굉장한 행운이다
눈 꺼짐으로 하안검 수술도 했다 난생처음 한 성형수술이었고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소릴 듣는다
외모가 허락하는 한...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조금은 마음에 희망이 생겼다
'그래 고민만 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그리고 나는 곧바로 눈여겨봐 왔던 동네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이십 대의 나는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엔 용돈을 벌려고 증권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을 앞두고 취업한 건설회사에서 4개월간 잠깐 일한 것이 경력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 그때까진 ‘평생직장’ 같은 건 내 계획에 없었다.
대학 졸업 1년 만에 결혼을 했고(지금 생각해 보면 취집을 했던 것 같다) 99년 1월,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했고, 그렇다고 나가서 일하자니 마땅한 기술도, 경력도 없었다.
이렇게 나이만 들어가고 진짜 아무 일도 못하는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도 뭔가 일을 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졌다.
그 무렵, 같은 시기에 딸을 낳은 언니가 있었다.
결혼 전 학원강사를 했었고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원자격증까지 있는 언니는, 집 거실을 공부방으로 꾸며 초등학생 스무 명쯤을 가르치고 있었다.
커다란 식탁 위에는 교재와 필기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조잘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걸 집에서 할 수도 있네?’
우리는 같은 교회를 다녔다.
심방으로 언니 집에 간 날, 현관 옆 벽에 액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는 대학 졸업증서, 다른 하나는 교원자격증이었다.
“이걸 왜 여기다 걸어놨지?” 하고 의아해하던 내 표정을 본 권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자매님, 여기 공부방이에요. 집에서 아이들 가르쳐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권사님, 요즘 아이들이 많이 늘었어요.”
“그래요? 잘 됐네요!”
“네, 권사님 소개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내 소개만이겠어요? 자매님이 잘 가르치니까 그렇죠.
이게 다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안 그래요? 할렐루야!”
나는 그 언니가 부러우면서도 ‘저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언니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집에서 할 수 있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찾던 일인데?’
며칠 후, 신문을 넘기다 한 광고에 눈이 멈췄다.
‘공부방 프랜차이즈 모집’
‘내 집에서 경력 없이 창업 가능’
‘소자본, 무경력도 가능, 주부 가능, 1일 교육’
짧은 문구들이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날 오후, 나는 전화를 걸었다.
“네, 가맹비는 330만 원입니다. 하루 교육을 받으시면 바로 시작하실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50만 원만 벌어도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계약을 했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일이, 결국 내 평생의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당시 남들보다 늦게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정말 나이가 깡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