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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냥 해!

공부방 신입원장 고혜라

by 고해라



"저... 혹시, ㅇㅇ사장님 계신가요?


부동산 문을 열면서 조심스레 안을 두리번거리자,

순간 '뭐지?' 싶었는지 보고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 가려진 채 눈만 빼꼼 내밀고 앉은 그대로 물었다

2월이지만, 오늘은 눈과 비가 뒤섞여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

손님이 와도 반갑지 않을 날씨였다.


"왜 그러시는데요?"


퉁명스럽지만 약간은 친절을 가장한 말투였다.


"네... 지난번에 그 사장님이 저희 집을 구해 주셨거든요. 이번에도 부탁 좀 드리려고요."


그제야 호기심이 풀렸는지, 그녀는 살짝 미소를 띠며 내 앞으로 다가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우리 언니인데요, 지금은 부동산 일 안 해요. 건강이 안 좋아져서요... 제가 대신 도와 드릴게요!"


60대였던 사장님은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일을 접으셨고, 동생 혼자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었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일을 멈추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어떤 집을 찾으세요? 매매? 전세?"


아까보다는 친절함이 더 묻어 있었다.


"공부방을 할 수 있는 집을 구해요. 이 동네가 좋아 보여서요."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참, 손님께 커피도 안 드렸네. 잠깐만요"


믹스커피 향이 추운 날씨에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졌다.


"공부방 여기 많아요! 얘들이 엄청 많기도 해요. 저도 많이 중개했어요!"


"그래요? 벌써 많이 있군요. 나이가 많아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에이~요즘 누가 나이를 따져요? 제가 아는 사람도 50대인데 얼마 전 직장 관두고 학원 차렸어요. 엄청 잘되요!"


손을 내저으며 걱정 말라는 듯 제스처를 취하면서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가서는 적당한 물건을 찾는지 분주했다. 이내 수첩을 가져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분은 학원이고, 저는 공부방 할 거라서요."


"공부방이 더 좋죠. 집에서 하는 일인데, 얼마나 좋아요?"


"좋죠. 근데 나이가 많잖아요? 얼마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집에서 하는 일이라서 어쨌든 집도 이사를 해야 하고... 또..."


힐끗 나를 한번 다시 보더니, 위아래로 스캔하듯이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나 곧바로 내 눈치를 의식했는지 다시 수첩으로 눈을 고정한 채 손가락에 침을 묶여 한 장 한 장 신중히 넘기면서 말했다


"별 걱정은! 집은 내가 구해주고 이사는 이삿짐센터에서 다 해주는데. 공부방일 처음 하는 거예요?"


"아니요, 학원일 한지 20년이 넘었어요"


"어맛! 전문가구만! 걱정을 왜 하세요? 난 또 처음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손바닥으로 박수를 살짝 치더니 한컷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알아보기만 하고 가버리는 손님이 아닌 고객이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니까요! 일 그만두고 2년밖에 안 쉬었는데 한 10년은 쉰 것 같아요."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저도 언니랑 같이 일하다가 언니가 갑자기 아파서 관두고 혼자 하다 보니 외롭기도 하고, 또 요즘은 부동산 경기도 안 좋아서 손님도 없고... 가끔은 '확 그만둘까?'싶은 마음도 들어요.

그런데 막상 관두고 집에만 있자니 뭐 하겠어요? 애는 다 컸고, 남편은 직장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늦게 들어오는데, 전 집에서 멍하나 앉아 있을게 뻔하잖아요? 할 일도 없고, 또 뭔가 새롭게 시작할 용기도 없고...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어요. 괜히 관뒀다가 정말 영영 아무것도 못 하게 될까 봐서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까? 적을까?'속으로 가늠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한국인다운 질문.


"저요? 이제 오십 넘었어요 자세히 묻지는 마세요. 난 나이 생각 안 하고 살려고요."


"저도 비슷해요."


"그럼 됐죠. 나이가 많다고 망설일 거 뭐 있어요? 지금 시작해도 앞으로 10년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별것 아닌 듯 던진 그 말이 이상하게 단단하게 가슴에 박혔버렸다.


"괜찮을까요?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괜히 용기가 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진짜 좋은 집으로 구해 드릴게요!"






2024년 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출발선에 서서 망설이고만 있던 나는 조용히 '출발'을 했다.

그렇게 결심했고, 곧바로 공부방 계약까지 끝마쳤다.

3월 신학기에 맞춰 공부방을 열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부방이라 해도 준비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는 1999년 12월, 방한 칸에서 처음 공부방을 시작했다.

50만 원 벌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2년 만에 학원으로 확장했고, 2012년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다시 공부방을 열고, 다음 해에 또 학원으로 키워가기를 반복하며 2022년 2월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런데 2024년 2월, 익숙했던 그 일이 내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돼버렸다.


2월 마지막 날, 이삿짐을 옮기고 3월 초 교육청 등록을 마쳤다.

프랜차이즈를 가맹하고, 1박 2일간 신입원장 교육도 받았다.

결심이 서기까지는 힘들었지만,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은 순식간에 굴러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진행된 탓에, 결국 3월 오픈을 하지 못했다.

등록증 발급도 2주 넘게 걸렸고, 아이들 책상도 배송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3월엔 물량이 많아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3월 중순은 되어야 가능하실 거예요. 가까우시니 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보내드릴게요!"


하.., 공부방도 참 치열하구나.

공부방. 이 일이 나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50살, 공부방을 하기 딱 좋은 나이일까?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스멀스멀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출발한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기로 했다.


진짜 약속대로 2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기다리던 책상이 도착했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스물여덟, 처음 공부방을 준비하던 때가 떠오른다.
살던 아파트의 방 한 칸을 비워 시작했다.
공부방을 먼저 연 언니는 같은 동 같은 라인 10층, 나는 5층에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방’이란 말조차 낯설었다.
언니가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 것이 전부였으니, 어떻게 꾸미고 어떤 책상을 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애들 집에서 가르치는 건 보통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니야. 현민 아빠도 재택근무가 많아서 힘들어할 텐데... 의논은 해봤어?”


친정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돈 버는 일이라 그런지 별말은 없었어. 그냥 내가 낮에 잠깐 하고 50만 원 번다니까 그러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50만 원조차도 벌 자신이 없었다.

책상과 의자 몇 개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공부방 준비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초도물품으로 받은 전단지 3000장을 밤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우편함과 집집마다 전단지를 꽂는 일부터 시작됐다.

낮에는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 눈치가 보여 붙이지 못했고, 혹여 걸리기라도 하면 호되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는 경력도 전공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아이를 가르쳐 본 적도 없었다.
할 수 있는 홍보라곤 전단지를 붙이거나 아파트 게시판에 광고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또한 이 일의 시작으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언니와 하루아침에 경쟁자가 되었고 권사님, 집사님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매님, 제가 소개하려고 해도 이미 유빈 자매님께 다 보내드려서 더 소개할 사람이 없네요. 어쩌죠?”

나는 웃으며 "괜찮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는 소개해 주고, 또 누구는 안 해 주는 서운함’을 지울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친정엄마가 나섰다.


“우리 옆집에 초등학생 3, 4학년쯤 되는 여자아이가 있어. 그 엄마랑 오며 가며 인사하는데, 내가 공부방 얘기 좀 해볼게. 학생이 한 명도 안 들어온다니 나도 걱정이 돼서 그래.”

그렇게 엄마의 소개로 체험수업에 온 아이는 단정한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모범생포스가 확 풍기는 4학년 학생이었다. 나는 긴장 속에 최선을 다해 수업했다. 꼭 등록시키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너 상처받을까 봐 말 안 하려 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요즘 누가 컴퓨터로 공부하냐’면서 곧 망할 거라고 하더라.”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엄마는 덧붙였다.


“그 후로 그 옆집 여자가 나를 피하는 것 같더라. 나도 어색하고... 너한테 말할 수가 없었어. 근데 계속 걱정이 돼. 이제라도 그만두는 게 어때? 무슨 집에서 돈을 번다고... 애나 잘 키우고 살림이나 해.”

그 말을 들으며 속이 타들어갔다.
어이없고, 창피하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는 지금보다 ‘책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훨씬 강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데, 1999년에는 ‘컴퓨터로 공부한다’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저을 때였다.
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10층 언니네 공부방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대기자까지 있었다.

나는 ‘접어야 하나? 가맹비야 그렇다 쳐도, 이대로 그만두면 이 동네에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나’ 하는 생각에 밤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또 붙였다.
추운 겨울,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붙였다
‘꼭 성공해서 망할 거 같다고 했던 그 꼬맹이 코부터 납작하게 해 주리라’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그때, 내가 공부방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고작 초등4학년 여자아이가 한 말 때문이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다.





시작하는 이유, 또 포기하지 않는 이유,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그냥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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