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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뿌니 Oct 13. 2023

10. 나이 들면 카페보다 병원

내가 꿈꾸는 은퇴생활

<커피는 디카페로 주문이요>




아침에 양치하다 목 주변에 빨갛게 수포가 올라오는 걸 보고는 하던 양치를 멈추고 물로 헹구었다

아무리 봐도 또 대상포진 같았다

한 달 전에 예방주사까지 맞았고,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데도

또 대상포진에 걸렸나?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만 있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계속 만져보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대상포진인지 재차 확인했다

일 안 하고 있어도 오늘은 어디서 게으름이 밀려왔는지 꼼짝도 하기 싫었다 

양치나 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하면서

느긋함을 누리려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병원 가는 것을 망설이며 거울 앞에 서있다 또다시

그 어마어마한 통증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오늘은 금요일

하필 오늘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있다가 주말 동안 병을 키울지도 모를 일이다

축 쳐서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옷을 입었다 


다행히 대기인원이 없었다



"여기 보세요! 선생님 대상포진 맞아요? 지난달에 예방주사 맞았는데도 걸려요?"


의사를 보자마자 옷을 제쳐 붉게 된 피부를 보여주며 어린애처럼 징징댔다

여의사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예쁜 얼굴이 마스크를 뚫고 나올 기세다

미소를 띤 눈으로 조곤조곤 설명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예방 주사 맞아도 걸릴 수 있어요 코로나도 백신 맞고 걸리잖아요"


아무리 의사라도 나이 어린 사람한테 징징대는 꼴이라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며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보다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했던 생각에 겁이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상태로는 확실하지 않아요 주말이니 약은 처방 해 드릴게요 드시고 화요일에 한번 더 오세요

그때 오시면 대상포진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화요일은 9시까지 진료하니까  꼭 오셔야 해요"


두 끼만 먹는 식사지만 삼시세끼 먹고 약을 먹지 않으면 약효과가 없다는 말에

꼬박꼬박 챙겨 정성껏 약을 먹었다

대상포진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

작년에 대상포진에 걸린 줄 모르고 병원 가는 게 귀찮아 낫겠지 하면서 아픈 걸 참다가 죽을 만큼 아픈 통증에

학원 수업도 멈추고 병원에 기어가다시피 가지 않았던가!


화요일 병원에 다시 갔다

다행히 대상포진은 아니었고 피부알레르기였다

약은 일주일 더 먹으라고 처방해 주었다




은퇴를 하고 매일 카페 가는 즐거움이 생겼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오래 머물기에는 대형프랜차이즈 카페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넓은 공간에 있으니 답답하지 않고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자리가 남아 돌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상가에는 별다방을 포함 카페가 10개는 되는 듯하다


커피맛이 별다름을 느끼지 못했는데 왜 비싼 별다방을 가는지 몰랐다

카페 투어를 하면서 커피값에는 그곳에 머무는 시간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다

난 원래 떠돌이였나 보다

아무리 좋아도 2시간 이상 한 곳에 있는 것은 힘들다


일 할 때 카페에서 여유롭게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한참 일하느라 정신없는 나와는 다르게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것일까?

나도 일할 때 카페를 안 간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미팅이나 해야 가는 곳이다

나에게 카페는 일하러 가는 곳이었다

커피맛도 그곳에 인테리어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고객을 만나서 계약을 하기 위한 일터일 뿐이었다

난 학원일을 하면서 프랜차이즈 가맹영업도 하고 있었다

쉬게 되면서 나도 그들처럼 여기저기 예쁜 카페들을 옮겨 다니며 원 없이 커피도 마신다

이젠 일터가 아닌 쉼터가 됐다


사람들은 은퇴하면 배낭여행을 가고 유럽여행을 하는 거창한 일상을 꿈꾼다

하지만 난 그냥 자유로운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


어렸을 때처럼 밥도 한 시간씩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먹는다

아침에는 침대에서 뭉개고 싶을 때까지 뭉개다 일어난다

밥 하기 싫으면 나가서 사 먹는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다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고 내가 꿈꾸는 은퇴생활이다





하지만 병원 가는 것은 싫어도 해야 한다

혼자 살면 늘 예민하게 몸을 살피고 아프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

혼자 아파 누워서 끙끙 거리는 것만큼 서글픈 건 없다


건강검진 예약을 하기까지 몇 개월을 미루고 미뤘었다

검진하다가 또 무슨 병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프지 않고 증상이 없으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얼마 전 막내고모가 건강검진을 미루다가 딸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검진을 받았다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모르고 있을 때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자 바로 시한부를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왜 병원은 카페처럼 다녀지지 않는 걸까?


임영웅가수가 건강검진받으세요

한마디에 건강검진 예약이 꽉 찼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정동원가수가 건강검진받으세요(나는 우주총동원이다)

하면 건강검진 예약할 수 있을까?


아예 건강검진받는 달을 정해야겠다

건강검진도 받고 치과 가서 매년 하는 스케일링도 하고

안과 가서 노안검사도 해야겠다  

그렇게 카페투어 대신 병원투어를 8월 초에 시작했다


건강검진은 8월 예약이 가장 쉽다고 한다

8월은 휴가철이라 한가하지만 9월부터 미루던 건강검진을 하려고 예약이 몰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영웅가수 효과인지 예약이 꽉 차 8월 30일에나 가능했다




건강검진하고 일주일 만에 유방검진에 이상소견이 있다며 재검을 받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혹제거 수술을 받고 정밀검사결과를 기다렸다

섬유종이었지만 제거를 하고 확실하게 그 혹정체가 밝혀지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건강검진은 열심히 건강관리를 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받았다

미루고 미루던 방학숙제를 하루전날 후다닥 다 해치운 듯 개운했다

마음 편하게 개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왜 미루면서 '건강검진받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병원을 카페라고 생각하자

카페 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자

혼자 살려면 모든지 스스로 해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이 셀프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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