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자들이 욕하는 법(2): 팩트폭력에 관하여

과거 언행을 발굴해 팩폭...기자들이 멕이는 법

by 방구석 특파원






과나.jpg


비록 미간이 약간 찌푸려질 수 있겠으나, '정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말들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자. 여의도나 국회의사당, 청문회장 등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다. 내로남불이라거나 아전인수, 동물국회 등으로 생각이 가닿아 눈을 질끈 감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부정적인 신호다.


그중 정치인들의 '자신과의 싸움' 이미지를 빼먹자니 섭하다. 정치인들이 과거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 발목 잡히는 행보 말이다. 이는 기자들이 이른바 '멕이는' 방법 중 하나다. 누군가의 과거 언행을 상기시킨 다음, 현재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검 왜 거부?" 대통령... 거부권 '신기록'


어떤 정치인은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카메라 앞에서 "특검을 왜 거부하나? 죄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놓곤 대통령이 된 이후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다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고작 2년쯤 지나서 세웠던 신기록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줄거부권' 행보에 대해 언론은 구구절절 설명하며 비판할 필요가 없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된다.


< 尹 "특검 왜 거부하나, 죄 지었으니까"...과거발언 재조명 >

(2024. 01. 01 / 국민일보)


< 윤 대통령의 '셀프 호통'..."죄 졌으니까 특검을 거부하는 겁니다" >

(2024. 01. 06 / 한겨레)


< 지난 대선 땐 "죄 지었으니까 특검 거부"...오늘은 "특검은 반헌법적" >

(2024. 11. 07 / JTBC)


그렇다. 언론은 과거 언행을 다시금 재소환하면 되는 거다. 과거 그와, 오늘의 그가 다르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상대 진영의 비판을 가져온다거나, 통계/전문가 취재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비판 방식이다. 반박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과거 언행을 가져와버리면 자기가 자기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센세 vs 국 센세"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됐으나, 정작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본인의 과거 SNS 게시글들로 줄곧 비판당해 온 인사 이야기다. 그는 지킬 앤 하이드에 빗대어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물론 당시 검찰 수사가 지나쳤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검찰이 해당 인사의 딸내미 일기장까지 털어가며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판단 이전에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사안이다. 당사자 스스로도 '저는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고 밝혔고, 감옥에 가서 2년 동안 푸쉬업/스쿼트 하고 나오겠다고도 했다.


아무튼, 해당 사안 또한 과거 언행을 발굴해 팩폭에 나선 사례에 해당한다. 그의 과거 SNS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행적이 낱낱이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바탕으로 '팩폭' 하는 일


유능한 기자들은 과거 사실 발굴을 통한 팩트폭력에 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방법이 되기도 한다.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면서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적 있는데, 이때 동아일보 칼럼이 눈에 띄었다. 김순덕 대기자가 2014년 동아일보의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기사에서 권한대행의 과거를 발굴하고, 해당 권한대행이 최근 비상계엄에 반대했다는 상황까지 짚어줬다. 그러면서 "한국의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이 당신 어깨에 걸려 있으니 헌법재판관 임명하라"고 촉구했다.


김 기자 설명에 따르면, "10년 전 얼굴 뽀얀 동안"이었다는 권한대행도 이 기사를 읽었으리라. 공직사회에서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유력 일간지를 읽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것도 본인을 겨냥한 칼럼이 있었으니 더더욱. 그는 아마 '나도 잊어먹은 걸 꺼내왔네' 하며, 자기 생각을 재고했을지 모른다.


최근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보여주는 행보는 어떤가. 8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국회 측 탄핵소추단장을 맡았던 사람이, 오늘날 대통령 탄핵 반대에 나선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권성동과 싸우는 권성동..."'내란발뺌 치매현상' 시전중">

(오마이뉴스/2025. 01. 06)


이라는 제목을 참고할 만하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렸으나, 8년 전과 오늘날 행보가 다르다는 걸 꼬집은 것이다.




"사실을 나열해 주장하는 것은 효과적"


"사실의 나열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효과적"이라던 유시민 작가. 이는 본인 주장을 직접 내세우기보다, 연관 사실을 나열하며 은근히 드러내는 게 더욱 설득력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실제로 신문 사설, 법원 판결문 등을 톺아보면 주장은 극히 일부다. 해당 글들은 대체로 각 문단마다 굵직한 주장 하나와, 그 주장을 뒷받침할 빼곡한 근거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글쓰기와 토론 등에서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는 유 작가도 비판받는다. 상대 진영에서 뭐라 하는 이야기야 반박 논리가 있을 테지만, 그조차 자신이 과거 "60살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고 발언해 오늘날까지 지적받는 데 대해서는 반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요컨대, 누군가를 비판할 때 있어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에는 그의 과거 언행이 백미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해학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고, 그때는 맞고 오늘은 다르다고 말하니 내로남불 이미지를 씌워버릴 수도 있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때 사정과 현재 사정이 다르니 구구절절 해명하고 싶겠지만, 이는 기자들에게 불쏘시개를 던져주는 상황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기사 쓰는 기자들이 이를 잘 안다. 석연치 않은 해명은 더 큰 오해를 낳는다는 걸.


요컨대, 이러한 행보는 기자들에게 익숙한 '팩트폭력'의 요체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3화기자들이 욕하는 법(1): 고상하게 '멕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