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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지 못하는 기자

"그래서 야마가 뭐야?"라는 물음에, 내려놨던 글쓰기

by 방구석 특파원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쯤으로 회자되는 장문 댓글이 있다.


그래서 야마가 뭔데? / 이런 내용을 사람들이 보겠냐? / 마감 안 하냐 / 콜미 / 회사 들어와라 / 정보보고 안해? / 야 이게 정보야? 이런 건 그냥 보고하지 마 너나 알고 있어 / 기자수첩 제목이 왜 이래? / 너 지금 어디냐 / 사람 만나라 그랬지? 너 요즘 저녁 미팅 일주일에 몇 개 잡냐 / 이 기사 봤냐 / 넌 왜 놓쳤어? / 그게 자랑이야? / 연합은 다르게 말하는데? / 니 일만 하지 말고 후배들도 챙기고 관리 좀 해라 그 정도 여유는 있잖아? / 너 A사 B실장 만난 지 얼마나 됐어? / 이번 주부터 하던 거 다 내려놓고 C사 집중해 / 내일까지 D사 E회장 관련 정보 싹 긁어와 / 넌 대체 현장 가서 하는 게 뭐야? / 그럴 거면 가지 말고 그냥 연합 받아 써 뭐하러 가? / 지금 당장 여의도로 와봐(분당에 있었음) / 야 지금 내가 전화했는데 미팅이 중요해? / 니가 전문가야? 딥하게 가지 마라고 / 제목 좀 섹시하게 뽑아봐 / 오늘 저녁 일정 없지? 회식 함 하자(오후 5시에)


예전에 봤던 댓글인데 원문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자기 전 침대맡에서 이 댓글 발견하고 빵 터져서 본인의 '문장서랍'에 넣어둔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해당 댓글에 좋아요/답글 호응이 상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기자들 대다수가 '야나두 짤' 조정석 배우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개인적으로 내용 하나 하나가 이른바 '거를 타선이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만은 그중에서 첫 번째로 등장한 "그래서 야마가 뭔데"라는 부분에 주목한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20여명 중에서도 주장 1명이 있지 않나. 내 기준서는 위 이야기들 중 야마 관련 이야기가 주장처럼 보인다.


야마가 뭔데요?


'야마'란? 기사 작성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고작 2년여간 기사 써온 사람이지만 (내 짬밥에 감히) 야마를 설명해 보자면 주제라거나 프레임, 문제의식, 한 줄 요약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면접 앞두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이라는 두괄식 말하기가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았을지? 그 이야기에서 '결론'이 기사 속 야마라는 것과 꼭 닮아 있다. 직장 생활에서도 가끔 윗선에서 '그래서 핵심이 뭐냐'고 묻곤 한다. 그 '핵심'이란 게 이쪽 업계에서 야마라고 불린다. 비록 데스크가 이걸 물어봤다는 건 "그게 말이 되냐"는 지적으로 이어지는 게 대다수지만...


아무튼, 이 글은 야마가 옳다 그르다 따지려는 건 아니다. 업계에 이런 경향성이 있고, 나 또한 그런 관습에 익숙해졌는데, 이것 때문에 글쓰기를 피하게 됐다는 것. 특히 야마를 정하지 않고 주절주절하는 글쓰기(ex: 일기)를 못 쓰게 됐다는 것. 이번 글 야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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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야마 때문에 글을 못 쓰겠어


대학생 시절 꾸준히 일기를 썼다. 군대 다녀와서는 혼자 대학가 맛집탐방 깨고 다니며 리뷰글을 기록해 오기도 했다. 대학가 맛집 리뷰어로 꽤나 유명해졌을 때 본캐 닉네임은 '회기동 매콤주먹'이었고 부캐는 '이문동 달콤주먹'이었다.


누가 시켜서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취업 스펙용도 아니었다. 그저 기록을 남기고,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해서, 타인으로부터 호응받는 게 좋았다. '정보성! 재미! 공?감' 외치면서 두서 없는 주저리 늘어놨다. 교내 구성원들 호응이 긍정적이었고, 나는 이를 즐기며 매주 1~2회씩 꼬박꼬박 글을 토해냈다.


이쪽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글이든 '야마'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선명한 주제 하나 붙잡고 '한놈만 팬다' 식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그러한 문제의식이었다. 이러한 관념을 체화하니 일기 쓰기, 맛집 리뷰, 여행 기록과 같은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이를 떨쳐보려고 술 먹고 개발새발 글 써보는 만용을 저지르기도 했다. 세상에 전해져서는 안 될 볼썽사나운 글들이 탄생하곤 했다.


요원한(?) 대학 시절에서 다시 요즘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평소 기자와 시민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와중에 기록한 단상들이 있다. 당연히 한국 언론을 까는 내용들도 포함이다. 이것들이 계속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토해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기 시작했다. '가짜 기자 일기장'이라는 브런치북 만든 계기다. 다시 야마 없는 글쓰기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몇 번 써내다가 '에라이' 하고 때려칠지도 모르지만.


야마에 얽매이지 않고 가볍게 한 번 ㅡ 물론 그게 100% 되지는 않겠지만서도 ㅡ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본인 브런치 자기소개란에 '포토그래퍼'라고 돼 있다. 야마 없는 글 쓰기 싫어 포토덤프식 글을 써왔더니 전직해 버렸다. 내가 포토그래퍼라니... 물론 사진에도 상당히 자신 있는(?) 21세기 호모사피엔스이긴 하지만, 이는 본인이 카카오브런치 작가를 도전한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촉촉한 글쓰기, 하고싶다!


언젠가 신문사 수습기자 생활 중에 일을 그만뒀다는 이의 기록을 봤다. 그가 <대학알리>에 남겨둔 당시 이야기에는 "나는 더 이상 야마가 없는 글을 쓰지 않았다"는 문구가 있었다. 기록 막바지 "나는 끝내 건조해지지 못했고, 또 축축하고 질척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등 글 곳곳에서 글장이의 향기가 물씬 났는데, 그런 그조차 기자 생활 중 야마 없는 글을 안 쓰게 됐다고 고백한 거다.


그는 또한 자신의 기자 생활을 털어놓는 와중에 "내 안의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부서지고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며 슬퍼했다"고도 했다. 나는 그 두 문장을 필사하면서 다시금 '야마 없는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한때 '야마' 운운하며 건조한 글쓰기를 동경했으나, 결국 본인이 글 쓰는 이유는 독자들로 정보성을 주거나 공감케 할 수 있는 '촉촉한'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뱀다리: 중국 여행기는, 그러니까 나를 '포토그래퍼'로 전직시킨 상당 요인인데, 어떻게 마무리해야 될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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