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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an 11. 2022

연애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우리는 사랑일까’

2018년 쓴 글

“연애는 암살이 아니야. 들켜야 시작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건 엄마도 못해요. 섭섭하겠지만, 이 사실을 우선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에요.”     


<살아, 눈부시게!>(김보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들켜야 시작하는 연애인데 마음을 안 들키려 애쓰고,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촌철살인같은 분석이 가득한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는 동안은, 더욱더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이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읽고 나니 왜 다들 '알랭 드 보통' 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소설 초반부를 읽을 땐 아무래도 앨리스에게 공감했다. 일요일 저녁 혼자 저녁을 먹으며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사랑받길 원한다거나, 그러면서도 기대가 컸다간 실망도 커진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기대를 하지 않으려하는 모습 등은 안쓰러웠다. 안쓰러우면서도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소설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어쩔 수 없이 에릭에게도 공감되는 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에릭이 싫으면서도, 그 모습이 내게도 있었단 걸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누가 노력하는가?’와 ‘연애의 조각 맞추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의 총합이 40x라고 치면, 나는 지난 연애에서 대체 얼마를 노력했을까 싶어졌다. 설령 처음엔 20x, 20x였다고 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이 35x를, 내가 한 5x 정도.... 한 거 아닐까? 씁쓸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더 노력했어야하는데’라는 후회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책의 내용 덕분에 오히려 앞으로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확립해볼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게 <우리는 사랑일까>는 그런 책이었다. (생각보다 책이 빨리 읽히지 않아서 틈틈이 읽었는데 정말 한 달이 걸려버렸다.)     


24살의 앨리스는 ‘고단한 런던 생활에서 불안정함을 에움해줄, 자신감 넘치고 잘 나가는 미남 애인을 갈망’했고, 그 자리는 에릭이 채워줬다. 채워줬다고 착각했다. 에릭과 헤어진 뒤에는 다음과 같은 빈자리가 생겼다. ‘줏대 없지 않으면서 친절하고, 중심을 지키면서 재미있고, 성공의 외적인 지표만 추구하지 않으면서 자기 일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필요함.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지성적인 사람. 그녀가 주차할 때 아무리 헤매도 윽박지르지 않을 성인군자’ 꽤나 구체적이다. 그냥 ‘필립’이라고 써도 될 정도랄까!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그냥 '앨리스 퍼즐의 빈자리를 필립이라는 새로운 애인이 채웠다' 정도가 아니라서. 앨리스가 앞으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면 좋을 지, 누구와 함께할 때에 더 자신답게 느낄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서 좋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알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필립과의 관계가 혹시나 안 좋게 변하더라도 예전에 느끼던 '빈자리'와는 같지 않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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