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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an 11. 2022

읽는 재미를 안겨줬던 흥미로우면서도 먹먹한 작품

[독후감] 2018년 트레바리 ‘책바 살롱’ <기나긴 이별> 5월 25일

  

<기나긴 이별>을 읽으며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너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아껴놓고 천천히 읽고 싶다’. 추리 소설을 제대로 읽었던 적이 없었다. 레이먼드 챈들러도 처음 접하는 작가였다. 내용 자체로 먼저 접하고 싶었기에 저자 약력 등 정보들을 읽지 않고 본문으로 바로 들어갔다.     


‘필립 말로? 이 사람은 뭐지? 테리 레녹스는?’. 책의 두꺼움에 압도당해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보내며 시작도 못 했던 2주라는 시간이 무색하도록. 빠른 속도로 읽었다. 사건이 흘러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말과 생각에 완전히 이입됐다. 책을 읽으며 마음 속이 아니라, 입 밖으로 감탄, 탄식이 절로 나오곤 했다. 소설(그것도 장편 소설) 읽는 즐거움을 다시금 알게 됐다.     


‘슬프기는 했지만 베린저 박사가 원했을만큼 슬프지는 않았다.’(210), ‘모든 사람들이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 아니오.’(293), ‘별로 개의치 않으면 운도 좋은 법이다.’(317), ‘그녀는 나를 위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단지 눈물 몇 방울 흘리기에 적당한 때였던 것이다’(599) 등등... 좋았던 문장들을 옮겨 적으려면 끝이 없다.     

냉소적이면서도 차갑지만은 않으며, 담담하고 솔직하면서도 통찰력있고, 사람의 본질을 간파하고, 위트있는 필립 말로. 그의 말과 행동엔 일관성이 있었다. 경찰들과 으르렁거릴 땐, ‘조금은 부드럽게 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사람. 그런 모습이 좋았고, 인상깊다.     


물론 사건 전개도 흥미로웠다. 읽으며 들었던 궁금증과 기억남는 지점들은 아일린의 등장 당시 눈을 떼지 못 하던 말로, 말로가 세 명의 V박사를 찾아가는 과정, 괴로워하는 웨이드 그는 왜 괴로워하는가, 아일린은 무엇을 노리고 접근한걸까, 할란 포터와의 1대1대화, 린다 로링이 알고보니 할란 포터 딸이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519페이지에 알게된 아일린의 진실, 린다 로링과의 이별, 601페이지 ‘칼자국’.     


숨가쁘게, 때론 어느 부분은 궁금한 마음에 매우 빨리 읽어나가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소설의 끝을 만난다. 필립 말로와 테리 레녹스는 다시 만나지만, 결국 서로를 잃어버린다. 아쉽고 먹먹한 마음에 표시해둔 부분들을 다시 펼쳤다. 그 중 테리 레녹스가 자신의 탈출을 도와주는 말로에게 묻는 질문이 눈에 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가, 말로?”. 그 답은 책 후반부에 말로가 스스로에게 반문한 말 속에 있었을까. ‘나는 술주정뱅이에 빈털터리로 길바닥에 나앉고, 굶주려 진이 빠졌으면서도 자존심을 가졌던 그가 더 좋았다. 아니 정말 그랬던가?’. 테리의 ‘왜’라는 질문에, 딱히 이유가 없더라도. 두 사람은 빅터의 바에서 김릿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였다. 그랬지만 마지막엔 눈물을 보이며, 상대방의 희미해져가는 발소리에 귀기울이며 이별한다. 그 장면을 보며 마음 한켠이 저리기도 했다.     


내게 <기나긴 이별>은 읽는 재미를 안겨줬던 흥미로우면서도 먹먹한 작품이었다. 필립 말로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는데 다른 시리즈들도 읽어보고 싶다.      




20220111 comment

: 이 책 이후로 레이먼드 챈들러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정말 취향이 확고하구나, 안 읽던 책은 이렇게 잃어도 더 찾아읽지 않는구나. 그래도 이땐 트레바리를 하고 있어서 완독을 할 수 있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6643

책 소개 : 하루키가 사랑한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마지막 장편소설.『기나긴 이별』은 1954년에 발표된 레이먼드 챈들러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지명도와 문학성에서 그의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전 작품과 달리 냉혹한 현실 인식과 염세주의가 가득한 『기나긴 이별』안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기사도적 정체성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을 심각하게 의식하는 필립 말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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