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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Apr 17. 2022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한 날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며

거의 본방 사수하며 보았던 <서른, 아홉>의 어느 한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없겠다.


그렇게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다.


찬영이가, 진행이 많이 된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간다. 식당을 운영하는 찬영의 부모님은 식당에서 찬영이에게 이것저것 많이 먹으라고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찬영은 차마 부모님에게 자신의 암 이야기를 하지 못 하고, 다시 서울로 간다.


#고속버스를 타는 장면.


찬영이 버스에 타고, 아버지가 멀찍이 서서 찬영이를 바라본다. 웃으면서.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도, 버스가 움직일 때에도 계속.


그 시선은 찬영에게 향한다. 아무리 그렇게 쳐다봐도 딸은 서울로 떠나고, 아버지는 다시 가게로 돌아가겠지. 찬영은 외동딸이고, 나도 외동딸이다.


그 장면을 보는데 눈물이 조용히 그리고 펑펑 났다.


나를 언제나 배웅해주던 엄마와 아빠, 지금도 그렇게 배웅해주는 아빠.


두 사람의 사랑이 훅 전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순간 정말 그 사랑이 확 느껴졌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구나. 드라마 속 찬영이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겠구나.   


이어진 생각


나는 어느 한 존재를 저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의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물론 낳는다면 어떻게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고 또 주고..

다시 사랑을 받고 또 받겠지만.



아이 있는 삶을 대체로 생각해오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싶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것.
부모님이 내게 준 사랑만큼 줄 자신이 없다.


사실 지난해 자궁근종 수술을 하면서부터, 나중에 임신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도 그때 읽었다. 읽으며 그들의 가치관에 깊이 공감했다.


그러다가도, '근종 제거하고도 임신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생각도 했다.


그러던 생각들이 혼재하던 때.

드라마가 내게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를 주었다.


이 얘기를 전하고 싶어서 한 친구에게만 전화로 말을 했었는데 친구도 공감해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구나, 맞아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 이 생각이 또 달라질 수도 있고.



거의 2주만에야 <서른, 아홉>의 마지막 회 마지막 4분을 봐서 이 글을 이제야 써본다. 찬영이가 있는 곳에 두 친구가 찾아가는 모습. 조잘조잘 일상의 대화를 전한다. 찬영이의 부모님은, 그럴 수 있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 세상을 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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