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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27. 2019

읽고 싶은 것들을 쌓이게 만드는 책

서효인, 박혜진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난다, 2019)

어떤 책에 대한 글을 쓸지 고민했다. 2주 전 글을 썼으니, 고민할 시간은 2주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며칠 전이 되자 ‘고민하기 시작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이 책이 생각났다. 언제 읽어도 부담 없는 책. 읽고 너무 좋아서, 친구에게도 선물했던 책. 바로 서효인, 박혜진의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이 책을 쓴 두 사람은 민음사의 한국문학팀에 있는 편집자다. 그중에서도 난 서효인 시인의 글을 좋아했었다. 서효인 시인이 게스트로 나오던 라디오 코너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게 그의 글은 믿고 읽는 글이 되었다.  특히 난다 출판사의 <읽어본다> 시리즈를 좋아했기에 더 기대됐다. <읽어본다> 시리즈는 작가가 읽은 책에 대해, 6개월 동안 매일매일 쓴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왼쪽 페이지엔 서효인 시인의 글, 오른쪽 페이지에는 박혜진 편집자의 글이 있다.      


이 책은 2018년 12월 31일에 나왔다.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며칠 후에 알았다.      


2019년 1월 3일 잠시 또 인스타를 보다가 아까 저녁쯤에 새롭게 팔로우한 '난다날다' 계정을 봤다. 문학3 계정도 봤다. 그러다가 문득 서효인 시인의 계정이 궁금해졌다. 검색했다. 그런데 뜨앗! 3일 전에 책이 나왔다는 게시글!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읽은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내일 당장 사서 읽어야지.


블로그에 적어둔 글이다. ‘내일 당장 사서’라고 다짐했지만, 책은 17일에 집으로 왔다.      


2019년 1월 19일. 
이틀 전쯤, 책이 도착했었다. 책의 표지만 바라봐도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기다렸던 책이니깐. 동네책방에서 사려고 했는데, 방문한 책방에선 없었거나 다른 책방을 가기엔 동선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교보문고에서 구입. 하루만에 집으로 왔다.    

읽다보니 1시간이 금세 지났다. 마음 속으로, 읽을 책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서효인 시인의 글에는 책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가 적절히 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선지 더 잘 읽히고, 좋다.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표현들을 빛난다. 옆에 체크 표시를 하면서, 감탄했다.


이 글의 두 번째 문단이,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하고픈 말의 핵심이다. 서평이라고 해서 책에 대한 지식을 요약하거나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적는데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힌다. 그리고 읽다보면 두 사람이 애정을 듬뿍 드러낸 책들을 읽고 또 읽고 싶다. 인용한 블로그 글에는 서효인 시인의 글에 대해서만 언급해두었는데, 박혜진 편집자의 글도 정말 좋다. 아래는 책에서 1월부터 3월까지, 책에서 좋았던 부분 중 일부다. '좋다'는 말만 적는 것보단, 좋았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보았다. [서]는 서효인 시인, [박]은 박혜진 편집자의 글이다.      


- 1/3 [서] 백년의 고독

내 엉덩이에 돼지 꼬리가 돋아나도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순간만큼 놀라진 않을 것이다. 내가 편집해 무사히 세상에 나온 소설을 옆옆에 끼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다시 읽는 중이라니... 감흥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음악을 찾는다.      


- 1/3 [박]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우리가 믿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하물며 책에 대한 책이라니. 소설집도 시집도 책에 대한 책보다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사람이 책에 대한 책의 영향을 받는다. 가장 적은 사람들이 읽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오랫동안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비평서다. 작가도 작품도 남지 않지만 내용이 남아서 책 읽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비평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혼자 뛰는 단거리가 아니라 같이 뛰는 장거리가 비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1/8 [서] 걱정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후에 김현 시인의 다른 책도 읽어본다. <걱정말고 다녀와>는 알마 출판사 특유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티스트가 아티스트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 책만큼 근사한 것도 없으리라. 김현 시인에 이어서 유진목 시인도 옥타비아 버틀러로부터 촉발되어 <디스옥타비아>라는 책을 냈다. 읽을 것들은 언제나 이토록 쌓여간다. 무심한 듯 뜨겁게.      


-2/20 [서] 피프티 피플 

‘아무도 죽지 않았다. 유가족을 만들지 않았다.’

 소설은 마지막 장의 이 문장을 목표로 해 달려온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 그 일에서 비롯되는 재미나는 이야기. 그것이 정세랑의 소설이다. 


- 2/23 [박] 페르세폴리스1 

“네 이야기에 대해서 뭔가 해보는 게 어때?”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완성한 작가들 곁에는 항상 책을 써보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다 해도 작가는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어디에선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겠지만 그들의 제안이 있어 지금 이렇게 마르잔 사트라피의 글과 그림을 읽고 볼 수 있다. (123)     


- 3/14 [서]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가 4만 부 넘게 출고되었다. <82년생 김지영>만큼은 아니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볼 만한 판매고가 아닐 수 없다. 담당 편집자인 혜진씨보다야 덜 읽었겠지만 컴퓨터 파일로, 교정지로, 그리고 책으로 읽을 때마다 저릿하게 좋았다. 하지만 좋다고 하여 사람들이 다 알아봐주진 않는다. 이번에는 독자들이 알아봐주어 뿌듯하게 또 좋았다. 좋은 소설과 많은 사람이 찾는 소설이 겹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가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팀이 된 걸까? 이런 건방짐이 화를 부르고는 한다. 자중하자.(162)   



좋았던 부분은 넘쳐난다. 계속 쓰다간 글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은...맛보기처럼 여기까지만. 이 책의 어떤 점들이, 왜 좋았는지, 다음 글에서 더 길게... 쓸 수 있겠지? 1월 22일에는 북토크를 다녀왔었는데, 그 후기도 함께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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