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트만 급 다중서사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에 버금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드 투 미>를 소개한다. <데드 투 미>는 죽음을 둘러싼 거짓말과 그 거짓말로 인한 또 다른 거짓말로 짠 그물망을 촘촘하게 그린 드라마다. 죽음과 연관된 여러 인물의 처지를 질서 있게 다루는 다중서사이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제목인 'Dead to me'는 주로 10대들이 "넌 이제 내 친구가 아냐!"라고 절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제목처럼 주인공 젠(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과 주디(린다 카델리니)는 우정을 쌓고 절교했다가 다시 서로에게 기대기를 반복한다. 남편 테드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부동산중개인 젠은 집담회를 찾았다가 "잠이 오지 않을 때 전화하라"며 살갑게 다가오는 주디를 만난다. 그렇지 않아도 젠은 남편을 잃은 뒤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차 운전석에 앉아 헤비메탈에 머리를 흔들며 오열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을 뻉소니 사고로 잃은 젠(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왼쪽)과 용의자인 주디(린다 카델리니·오른쪽)
주디는 젠의 약한 지점을 파고들어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슬픔을 나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위험한 법. 주디는 사실 테드를 친 뒤 도망친 용의자였다는 점이 후에 밝혀진다. CCTV 등 증거가 남지 않아 용의자 없이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에 주디가 사고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젠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주디는 조금 특이하지만 좋은 사람이다. 테드를 쳤던 순간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고 엉뚱하게도 홀로 남은 젠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약혼자와의 사이에서 태아 다섯을 떠나보냈기에 상실의 감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젠과 주디, 두 사람은 가족 상실을 통과하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상호의존적인 존재가 되고, 동거인으로까지 발전한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하며 사고와 관련된 단서를 알려준다. 주디는 왜 젠에게 접근한 건지, 주디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지, 사고 발생 후 주디가 도망친 이유는 무엇인지. 넷플릭스 플랫폼에 특화된 스토리 아크(Storyarc)를 따라가다 보면,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후, 정말 재밌으니까 넷플릭스에서 확인해보세요) 2015년 건강심리학 연구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몰아보기(binge viewing)'는 평균 세 개의 에피소드를 2시간 반 동안 한 자리에서 시청하는 패턴을 말한다. 시간과 공간은 오후 5시 이후 잠자리에서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몰아보기'에 맞는 텍스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드라마 패턴과는 다른 스토리 아크를 택해야 한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 연출이 필요한 것은 물론 에피소드 3개 내에서 어느 정도의 기승전결을 갖춰야 한다. <데드 투 미>는 반드시 마지막 국면에서 클리프행어를, 3회쯤 되는 에피소드 내에서 기승전결을 매듭짓는다. 1회에서 주디의 범죄를 보여주고, 2회에서 주디에게 변명거리가 될 범죄의 조력자를 등장시키고, 3화에서는 피해자인 테드에게도 인간적으로 큰 결점이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다음 시리즈를 위한 예고편과 같아진 최근 마블 영화와 달리, <데드 투 미>는 3회 내에서 젠과 주디의 관계가 깊어지는 계기와 방식을 충분히 그린 뒤 한 단락을 매듭짓고 넘어간다.
주디의 약혼자 스티브(제임스 마스던)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와 린다 카델리니는 폭발적인 연기를 펼친다. 두 주연 배우는 남편을 사고로 잃은 여성과 그 사고를 낸 여성이 처한 복잡한 환경과 인간적인 모습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아울러 <엑스맨> 클래식에서 싸이클롭을 연기했던 제임스 마스던이 주디의 약혼자인 스티브로 등장해 호연을 보여준다. 부유하고 잘생긴, 그러나 엉성한 남성을 연기하면서 소위 '남성성'에 계속해서 잽을 날린다. 마스던이 나오면 진짜 웃긴다.(현웃 보장)
넷플릭스가 지난해 7월에 발표한 실적에 따르면, <데드 투 미>는 이사분기 동안 가장 많은 이용자가 본 오리지널 드라마다. 5월 공개 이후 한 달 만에 전세계적으로 3000만 명의 시청자를 모았다. 미국 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When they see us>보다 500만 명 많은 숫자다.('센트럴 파이브' 사건을 다루며 인종 문제에 초점을 맞춘 <When they see us>도 띵작입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는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시즌 2에서도 활약할 예정이다.
덧1. 애플게이트가 에미상을 받지 못했네요. 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은 영드 <플리백>의 각본가이자 주연배우인 피비 월러브리지에게 돌아갔습니다. <킬링 이브>의 각본가이기도 한 월러브리지는 연이어 성공작을 내놓고 있네요. 1월6일 다가오는 월요일에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데, 역시 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에 애플게이트와 월러브리지가 함께 후보에 올랐습니다.
덧2. 시즌2는 2020년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촬영을 대부분 마친 상태이며 제작진은 여름에 공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하네요.
덧3. 시즌1 프로모션 사진들을 보다가 윌 페럴이 배우들과 찍은 사진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페럴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었군요.(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