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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un 05. 2024

‘행복이라는 건 올바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퇴사했던 2018년, 그 이후 적었던 글

2018년에 쓴 글.


“행복이라는 건 내가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해요. 올바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에요."


<인간극장> 신년기획으로 출연한 100세 철학자가 말했다. 신년이라고 사람들은 행복을 기원하는데, 사실상 행복이라는 건 바란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야 이뤄진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의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지난해 나는 대체로 불행했다. 불행의 근원은 회사였다. 정확히는 입사 2년차에 새로 들어온 상사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편집국장을 포함한 선배들로부터 기자로서의 역량을 많이 배워나가고 있었다. 선배들은 수평적이었다. 잘 하는 지점은 칭찬해줬고 부족한 지점은 친절하게 알려줬다. 써야할 기사 외에도 쓰고픈 기사들도 쓸 수 있는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롤모델이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휴가는 반드시 써야했고, 야근도, 퇴근 후 연락도 거의 없었다. 회식은 점심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회사 구조적인 문제로 좋은 선배들은 전부 떠나버렸다. (현재- 구조적인 문제를 다 쓸 수는 없지만 요약하면, 2년마다 연합회의 집행부가 바뀌고 바뀔 때마다 이래라저래라 방침이 바뀐다는 점)


새로 온 상사는 일에 대한 피드백을 넘어서서, 모욕적 언행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매일매일. “글 이따위로밖에 못 써?”, “취재를 못 하면 글이라도 잘 쓰든가!”. 싸늘한 눈초리에 애정없는 막말들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에게도. 회의실이 아니라 공개된 사무실에서도 막말은 이어졌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귀를 쫑긋 세운 다른 부서 사람들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니터만 바라봤다.


회의 시간은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로 이뤄졌다. 5일 중 3, 4일은 야근을 했다. 그는 휴가를 쓰려면 “해야할 일 없냐”며 쏘아봤다. 의무적으로 한 달에 이틀을 쉬던 제도도 마음대로 없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에게서 처음 일을 배우지 않았던 나를 길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평적인 환경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더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에게선 배울 실력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계속 다니면 그 사람처럼 변해버릴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통장 잔고를 보니 엄두가 안 났지만 주위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곳을 벗어났다.      


몇 년 사이, 청년들의 조기 퇴사 흐름이 커지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지만, 그중에서도 강압적인 조직문화, 야근, 성장 가능성 없음 등이 원인으로 얘기된다. 결국엔 다 회사의 조직문화가 너무 구식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퇴사하는 청년들에게 “너무 쉽게 그만두는 거 아니냐”는 시선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퇴사한 청년들이 나오는 EBS 다큐멘터리 한 편 봤다. 퇴사한 청년들이 모여 서로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을 건넸다. 이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순간, “너가 잘못해서”, “너가 나약해서”라는 말을 들을까봐, 퇴사를 결정하는 데 오래 걸렸단 걸 깨달았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스스로에게 말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퇴사가 가능한건가?   


나는 내 행복을 위해 퇴사했다. 제대로 시도하지 않았던 꿈에 도전할 용기도 얻었다.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내겐 선택에 따라 노력할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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