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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는 사람

3. 28 / 「32살 앞 30날」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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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들기 전 눈을 감고 ‘28’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늘 쓸 30날 글쓰기 제시어가 ‘28’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있는 일정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낮에 미리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해선지 글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네이버 클라우드 사진을 봤다.(사진들을 이곳에 저장해둔다.) 28살이었던 2017년 1월부터. 사물이나 풍경보다는 아무래도 사람들 사진이 많다. 물론 장소들, 여행지들도 눈에 띈다. 근데 나는 사람이 더 눈에 보인다. 그 장소와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 옛날에 언론고시 스터디 같이한 사람들, 사회생활 하며 알았던 친구들, 부모님, 친한 언니들, 대학 친구 등등.


5년 전쯤, 언론고시(시사교양 PD 준비) 스터디를 함께한 3명과는 친한 편이었다. 한 명은 잠수, 한 명은 가끔씩 연락해서 보자고는 했으나 올해에도 흐지부지, 한 명은 1년에 2번 정도는 봤는데 현재 시험 공부 중이라 못 보는 상황이다. 자주는 못 봐도 다같이 모이면 재밌게 웃고 떠들었던 사이인데, 씁쓸하다. 사회생활 하며 알았던 친구 두 명과는 여전히 연락하지만 그 중 한 명과는 소원해졌다.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만드는 말들을 하던 친구. 친구에게 말할 자신은 없고, 그래서 서서히 피한다.


2017년 클라우드에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찍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꽤 있다. 엄마와는 같이 찍은 셀카도 많고, 엄마만을 찍은 사진도 많다. 엄마가 지금 살아있진 않지만,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편인 듯 하다. 대학에 올라왔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시간은 많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종교는 없지만.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닌 거라면. 아빠는 창원에서 다소 외롭고도 심심하게 지내고 계시지만, 아빠만을 위해 창원에 내려갈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다. 나중에는 또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내 삶은 서울에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지금 서울에 없다. 물리적으로만 멀어진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조금은 멀어졌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음이 맞는 소수의 친구들을 정말, 많이 좋아했다. (친구 관계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편) 다행히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오면서 계속 자주 만났다. 서울 곳곳을 하나씩 찾아다니고, 밴드 공연도 같이 보러가고, 서로의 연애 고민도 들어주고... 각자의 대학 생활이나 전공을 제대로 잘 이해하지는 못 했어도, 서로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이야기 나눴는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삶의 방향과 속도가 다들 달라졌다. 취업을 했고, 대학원을 갔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몇 년 전부터는 미국으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청주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인연을 이어간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한때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었던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절 인연.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서울에 아무도 없다니. 쓰다 보니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곁을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만큼, 또다른 사람들이 곁에 머무르기도 했으니까.


친한 언니 두 명의 사진이 유독 2017년 클라우드엔 많이 보인다. 2015년 청년허브라는 곳에서 일할 때 알게된 썬(선) 언니와 보미언니. 나에게 그곳은 사회생활하며 다닌 두 번째 회사였다. 서울시에서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일자리의 일환인 ‘청년혁신활동가’라는 이름으로 10개월 일하는 계약직이었는데, (브런치에는 사진을 올릴 순 없을 듯)


언니들이 “버라야~”라고 불러주면 그냥 좋고, 또 좋았다. 마음이 맞으니 청년허브를 그만두고도 계속 만났고, 돈독해졌다.


[크기변환]20178월강릉다녀오고강변포장마차.jpg 사진1 강변역에 도착해, 안주와 맥주를 마셨다. 셋 다 이때의 맥주를 매우 인상깊게 기억한다. 맛있었다.


[크기변환]201712월크리스마스.jpg 사진2 시트지 붙이는 데에 열심인 언니들


2017년 여름에는 언니들과 강릉을 다녀왔다. 셋이서 함께한 첫 여행. 1박 2일이 꿈같이 알찼다. 술을 안 마시는 언니들이지만, 내가 밥 먹을 때마다 맥주를 시키니 어느새 여행이 끝날 땐 반주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기도 했다. (사진1: 여행을 마치고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또 맥주 한 잔) 내 자취방은 언니들과 만날 때 아지트처럼 쓰이곤 했는데, 그해 크리스마스에도 언니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자고 다음날 아침도 맛있게 먹고! (사진2는 내 방에 있던 테이블에 시트지를 붙여주는 언니들의 모습.)


시간이 흘러, 지난해에 두 언니 모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더라도 만날 수는 있지만, 이천, 의정부로 삶의 근거지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가 있다보니 자주 만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서로 가끔씩이라도 안부를 묻는다. 셋이 못 모이면 둘이서라도 본다. 그러니 여전히 언니들은 내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해 클라우드에서 지속적으로 계속 등장하는 사람이 또 있다. 같은 대학을 다닌 친구 동미. (동미가 이 글을 볼 것 같기에 조금 쑥쓰럽지만, 그래도 써본다.) 동미가 나를 찍어준 사진도 꽤 많고, 함께 찍은 셀카도 많다. 그때 우리는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 근처 동네에 살았었다.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다. 둘다 자취생이니까 꼭 맛있는 ‘밥’을 파는 식당에 가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하고, 근처를 산책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렀다. 언니들과도 그랬지만, 동미와도 시시콜콜 농담하는 것도 재밌었고, 취업 고민이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함께 나누는 것도 좋았다. 나랑 성향이 다소 다른 편인데(키워드로 친다면? 내향과 외향, 느리게와 빠르게, 고민과 실행 등)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인지 또 잘 맞았던 것 같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동미는 내 곁에 사람이다. 우리 둘 다 옛날에 살던 동네는 떠났고, 각자 은평구와 서대문구에 살다가 지난해 12월부터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다. 친한 친구와 이렇게 가까이 살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후면 동미가 이사를 간다. 그러나, 그래도, 계속 함께 팟캐스트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만나서 밥도 먹으며 이야기 나눠야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이 글에 미처 다 쓰지는 못 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3년 전인, ‘28살의 나’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도 내 곁에 있다. 고맙고 소중하다. 그리고 또 고마운 사람들은 그사이 새롭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내 곁에 있으면 좋을텐데. 바라지만 말고. 바라는 만큼, 그럴 수 있도록 나또한 사람들과 마음을 잘 나누며 살아가야겠지.


보라야, 너에게 남을 사람은 어떻게든 남아.

얼마 전 함께 여행을 했던, 보미 언니가 내게 했던 말인데 나를 신경 써준다는 게 느껴지고 너무 따사로왔다. 언니가 내 곁에 있듯이, 남을 사람은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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