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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앞 30날」23

23. 08 / 오랜 친구

by 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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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많이 없다. 대부분 오래 안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 친구들. 그러니 17살 때 알았다면, 14년째. 그보다 더 오랜 친구는, 두 명 정도 남아 있다. 그중에서 유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8살에 만났다.


솔직히 8살의 기억은 거의 없다. 강렬하게 하나 남아 있는 기억은, 소풍 때. 어릴 때 나는 많이 어리버리한 편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눠준 ‘현장 체험 학습’ 안내문을 받고 엄마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현장 체험 학습이 뭔지도 몰랐고, 꼭 전달할 필요가 있단 것도 몰랐다. 그러다 그날이 왔고, 나는 평소와 똑같이 학교로 향했다. 다들 운동장에 모여 있었고, 선생님은 오늘 ‘소풍’을 간다고 했다. 엄마들도 함께. 이제라도 집에 가서 엄마에게 오늘 소풍이라고 말해야 하나? 싶었으나 뭔가 뒤늦었다. 학교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공원에 도착했고, 나는 멀뚱히, 덩그러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보라야, 엄마는 안 오셨니?” 유진이의 어머니였다.

“네...” (조금 애처로운 느낌)

“그럼, 우리랑 같이 김밥 먹자, 일로 와”


낯가리고 소심한 편이던 나는 아마도,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는 맛있게 김밥도 먹었겠지.

그뒤로 유진이랑은 더 친하게 지냈다. 서로의 집에도 자주 놀러가곤 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서로 주고 받았던 편지가 남아 있는데, 정말 내용이 별로 없지만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보라야, 여름 방학 잘 보내고 있니, 나는 잘 못 보내고 있어. 그럼 안녕’. 나도 아마 비슷한 내용과 길이와 글자 크기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을까.

유진이랑은 6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6년만에 돌아온 같은 반이라니! 너무 좋았다. 역시나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친구. 우리는 중학교도 같은 곳에 배정되었고, 중1인가 중2 때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유진이는 무던한 성격이었는데, 잔잔한 바다같은 느낌. 나는 무던하진 않은 편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이었음에도 이야기가 잘 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참 좋았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함께 보냈고, 지금도 내게 남아 있는 사람은 유진이뿐이다. 부모님이 가장 많이 본 친구도 유진이.


지금은 각자 서울과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 유진이는 24살부터 교사 일을 하고 있는데, 세어보니 횟수로 벌써 8년째다. 그사이 나는 무얼했나 짚어보면, 취업 준비를 했고 인턴도 하다가,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가 다시 퇴사하고 지금처럼 조금은 일반적인 루트와 다른 생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둘러싼 환경이, 생활이, 삶이 어쩔 수 없이 달라지고 있다.


어린 시절을 공유했기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함께한 시절이 12년, 그리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 12년이 지났다. 우리 각자를 이루는 것들이 많이 달라져서, 유진이는 나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점점 많아졌겠지. 나 또한 그랬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말하려면, 계속 설명이 이어져야하니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자주는 못 만나도, 함께한 세월 덕분인지 여전히 만나면 편안하고, 서로의 일에 대해서도 잘은 알지 못 해도 응원하는 마음은 한가득이다. 얼마 전엔 오랜만에 카톡이 왔었다. TV를 보는데 내가 만든 잡지 <We See>가 화면에 나왔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전해줬다. 나는 잡지가 TV 화면에 나온 것보다도, 그만큼 기뻐해주는 친구 덕분에 더 기쁘고 고맙고 좋았다. 서로 잘 지내라는 안부를 나누고 그날의 대화는 다소 짧게 끝났지만.


유진이와 만났던 적도 가물하다. 캘린더를 보니 지난해 10월에 창원에서 한 번 본 이후로. 1년하고도 2개월이 훌쩍 지났다. 내년 초엔 볼 수 있을까? 시간이 나면 만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유진이를 꼭 만나야지. 못 보더라도 오랜만에 전화라도 꼭 해봐야지, 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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