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와 사람의 시간은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같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다르다.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오래 사는 것과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죽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고대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에 대한 표현이 흥미롭다. "히파리스 강변에는 단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동물이 있다". "그런데, 그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아침에 죽으면 청춘에 죽은 것이고, 저녁에 죽으면 살만큼 살고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철학자답게 이미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어차피 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삶은 먼지와 같으니 사는 동안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을 큰 가치로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건강에 위협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사실 주어진 일만 하기도 바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같은 나 자신의 시간이라도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졌다.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아팠던 것을 계기로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다.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그동안 참으로 어리석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까짓 일이 뭐라고, 건강까지 해치면서 그렇게 살았을까?"라는 교훈을 비싼 값을 치른 후에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실제로 삶과 죽음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메멘토모리'라는 고대 로마부터 유래한 의미가 결국 현재 나의 삶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의 철학자인 몽테뉴는 10년여에 걸쳐 집필한 저서인 수상록에서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목표여야 한다."라고 했다. 시대가 달라도 이런 말에 공감이 가는 것은 사람의 삶이 어느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첨단과학으로 AI가 우리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도 삶의 목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고,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정해진다. 영어에서 '현재(Present)'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 서양에서는 고대시대에 이미 하루살이의 시간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 사람의 긴 시간은 선물로 느껴질 수 있다. 시간이라는 선물은 값을 치르지 않고 조물주로부터 받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무엇으로도 시간을 살 수 없다. 그래서 각자의 시간은 소중하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말도 있다. 시간을 금처럼 여겨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곧 돈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보통사람은 돈을 낭비하는 것은 금세 알아차려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한 대가는 참혹하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중요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은, 생각날 때 바로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업을 하면서 생긴 습관인데, 지금도 잘 유지하고 있다. 이 변화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습관 하나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습관은 삶의 터닝포인트 같은 계기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 같다. 변화된 환경에서 살기 위함이다.
사람은 환경이 변화면 스스로 변해야 산다. 교도소같이 사회에서 격리된 경우를 예로들 수 있다. 강제로 자유시간을 빼앗겼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감생활을 통해서 책을 많이 읽거나 체력단련을 하는 등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시간활용은 각자에게 달려있고, 좋은 습관이 반복되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삶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