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여 년 전부터 현재의 교회에서 성가대원을 하고 있다. 성가대(聖歌隊)는 그리스도교(개신교, 가톨릭 등)에서 성가를 부르는 합창단이다. 교단에 따라 찬양대라고 부르는 곳도 있으나, 현재 내가 속한 교회에서는 콰어어(choir)로 부른다. 좀 더 큰 의미로 예술사역단, 메스콰이어라고도 부른다. 교회의 규모는 큰 편이지만 콰이어는 한 팀만 운영한다. 그래서 2,3부 예배 2번에 걸쳐 찬양한다.
다 함께 정성을 다하여 아름답게 찬양하는 것은 하나의 예배인도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배시간 이외에 주기적으로 연습을 한다. 연습을 주도하는 성가대 지휘자와 연주자(오르간, 피아노, 앙상블), 각 파트별 솔리스트들은 음악 전공자들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프로페셔널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비전공자인 성가대원들은 프로페셔널들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연습하고 예배 때 찬양을 한다. 매주 하는 일상이라서 나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얼마 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로부터 "성가대를 하면 뭐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친구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친구는 성가대는 찬송가만 부르는지 궁금해했다. 나는"찬송가를 포함해서 다양한 교회음악들을 부른다."라고 대답해 줬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성가대를 하면 좋은 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었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다.
친구가 무심코 한 질문 때문에, 나는 20년 이상 성가대원을 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려왔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나 같은 성가대원이 찬양하는 것을 봉사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성가대원으로 찬양하는 것이 '봉사인지 혜택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둘 다 맞는 것 같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친구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계기가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2년 여 기간 동안 사실상 성가대를 하지 못했다. 그때 온라인 예배는 가능했지만, 성가대 활동을 못하니 뭔가 중요한 일상 중 하나가 빠진 것 같았다.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이 지속반복되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성가대원을 하면, 예배를 위한 찬양은 단 하루지만 일주일 내내 연습곡이 머릿속에서 떠올려진다. 나도 모르게 좋은 음악이 무의식으로 작동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새로운 곡을 일주일 단위로 접하고 연습하니 늘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프로페셔널들과 함께 한다는 점도 큰 혜택이다. 매스콰이어 전체 80여 명 중 20여 명이 음악 전공자이자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다. 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다 보면 스스로가 성장함을 느낀다. 이 부분이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가대원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할 수 있으면 가능한 오랫동안 하고 싶다.
나의 어머니는 거의 평생을 교회에서 성가대원을 하셨다. 80세가 넘어서도 사설 합창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인지 일상의 대화에서도 목소리에 힘이 있으며, 새로운 악보를 보고 연습하니 치매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내가 자연스럽게 성가대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어머니가 성가대원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모습이 내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 것 같다.
다음에 내게 "성가대를 하면 뭐가 좋아?"라고 물었던 친구를 만나면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친구도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네가 좋아하는 '어떤 일'과 같지 않을까?"라고. 그 '어떤 일'을 위하여 주말에 연습하고, 새벽에 일찍 집을 나서도 크게 힘들지 않다면 그 '어떤 일'을 좋아하는 것일 테니까. 내가 성가대 하는 것이 그런 느낌일 거라고.
나의 성가대와 친구의 좋아하는 일이 관련이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비유하면 '좋아함에 대한 이해'가 쉽게 설명될 것 같다.
조금은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질문도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낸다. 총균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뉴기니의 한 청년이 던진 질문 때문에 책을 저술한 계기가 되었단 것처럼.
찬양곡 : 단단히 더 단단히
창작자 : 최휘숙(2025년작)
바리톤 : 정광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