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떠 있는 뗏목처럼, 이혼 과정 속 첫 명절
이번 설에는 면접교섭이 있었다. 아이 아빠는 설 전에 두 번 아이를 보러 왔다. 아이가 아빠를 못 알아보는 바람에, 결국 한 공간에서 계속 면접교섭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서 열심히 놀았고, 아빠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아이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아기에게 눈길을 주긴 했지만, 어딘가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는 한 달 만에 아이를 보러 온 사람이, 눈물 한 방울 흘리거나 감동적인 표정 하나 짓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한 시간 전에 본 아이를 다시 보는 것처럼 담담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모습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결혼 생활 중에도 그는 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주말부부로 지낼 때, 내가 “헤어져서 슬프다.”고 하면 그는 “어차피 다음 주면 또 보는데 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서늘해졌고, 혼자 많은 밤을 눈물로 보냈다. 그땐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꼭 사랑의 유무와는 관계없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던 그의 특성이 떠올랐다. “남편의 뇌는 질병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구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가 마냥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답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 답을 찾아 헤매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안다. 우리는 이미 남이 되어가는 중이다.
의사도 내게 조언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 애쓰지 마세요.”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금 깨닫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해볼 것이다.
아이 할머니, 그러니까 전 시어머니는 요즘 SNS에서 변화를 보이는 듯하다. 그녀의 프로필 문구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행복과 불행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손주 없는 첫 명절, 그들은 어떤 기분으로 보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불편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정리했으니, 나에게 손주 사진을 보내달라고 연락할 면목도 없었겠지.
요즘의 나는 마치 스위스의 큰 호수 위에 떠 있는 뗏목 같다. 호수는 잔잔하고, 맑고, 아름답다. 풍경은 평화롭고, 바람도 부드럽다. 나는 그저 그 뗏목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뗏목도 그저 물 위에 떠 있을 뿐이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은 상태. 그냥 그렇게, 가만히 떠 있는 느낌. 이번 명절은 내게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