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헌사
지나이다 기삐우스
하늘은 음울하고 나지막한데,
나는 아네—내 영혼 드높다는 것.
당신과 나 이상스레 친근하지만,
우리 각자는 고독하네.
나의 길은 가혹하여,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신(神)처럼 사랑하니,
사랑이 내 영혼을 구원하리.
만약 내가 도중에 지쳐
무기력하게 한탄하거나,
스스로를 다시 딛고 일어나
감히 행복을 갈구한다면,
막막한 고난의 세월 속에
나를 영원히 내버리지 말아 주오.
간청하나니, 연약한 형제를
위로하고, 동정하고, 품어주오,
둘도 없이 가까운 당신과 나,
우리 둘 다 동방으로 향하네.
하늘은 사악하고 나지막한데,
나는 믿네—우리 영혼 드높다는 것.
(1894년)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세계문학 2014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 (3)
작품의 배경과 시평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모로 불리는 지나이다 기삐우스(Zinaida Gippius)의 1894년 시 <헌사(Посвящение)>는 그녀의 초기 문학 세계와 당시 러시아 세기말(Fin de siècle)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시는 한 편의 서정시를 넘어, 기삐우스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철학적·종교적 탐구의 출발점을 알리는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1. 시대적 및 개인적 배경
세기말의 고독과 '데카당스'
1890년대 러시아 지식인 사회는 기존의 사실주의와 사회 참여적 문학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통, 죽음, 그리고 개인의 영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데카당스(퇴폐주의)'라고 부르는데, 이 시의 첫 구절인 "하늘은 음울하고 나지막한데"라는 당시 사회 전반에 깔린 암울한 공기를 상징합니다.
[註] 데카당스(décadence)는 본래 '쇠퇴'를 뜻하며, 19세기말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난 퇴폐적·회의적·탐미적 경향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퇴폐적'이란 도덕과 건전함이 사라진 상태를, '허무'는 세계와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한국어로는 보통 퇴폐주의라고 번역되지만, 단순한 도덕적 타락보다는 예술적·미적 실험과 감각적 탐닉을 포함합니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 데카당스는 문학과 예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대표 작가로는 보들레르, 베를렌, 랭보, 위스망스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규범과 도덕을 비판하며, 병적이거나 기이한 미를 추구했습니다. 데카당스는 이후 그림, 영상 등 다양한 예술 분야로 확장되었습니다.
데카당스는 단순한 예술적 흐름을 넘어, 사회적 쇠퇴와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거나 반영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는 러시아 상류층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설명할 때 데카당스적 현상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자기애(Self-love)와 신성(Divinity)
기삐우스는 당시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곧 신에게 닿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나는 나 자신을 신처럼 사랑하니"라는 구절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안에 깃든 신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상징주의적 열망의 표현입니다.
지나이다 기삐우스라는 인물
그녀는 중성적인 매력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문단을 지배했습니다. 남편인 드미트리 메레즈콥스키와 함께 '새로운 종교의식'을 주창하며, 인간의 고독이 결국 절대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2. 시평:
고독을 통해 완성되는 영혼의 연대
고독의 역설: "따로 또 같이"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고독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화자는 당신과 내가 "이상스레 친근"하면서도 "각자는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고독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고차원적인 유대감을 강조합니다.
자아 숭배와 구원
"나는 나 자신을 신(神)처럼 사랑하니,
사랑이 내 영혼을 구원하리."
이 대목은 기삐우스 철학의 핵심입니다. 외부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나'를 극도로 긍정함으로써 죽음과 허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여기에서 '자기애(自己愛)'는 이기심이 아니라, 영혼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에 가깝습니다.
동방(東方)으로의 여정
마지막 연에서 두 사람은 "동방으로 향하네"라고 말합니다. 상징주의에서 '동방'은 지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빛, 진리, 새로운 탄생, 혹은 영적 고향을 의미합니다. 현실의 하늘은 사악하고 낮게 내리눌러 숨이 막힐 듯하지만, 두 영혼은 그 압박을 뚫고 드높은 이상(동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연약함에 대한 고백과 자비
강인한 자기 긍정 속에서도 화자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한탄"하거나 "행복을 갈구"하는 속세의 유혹에 빠질까 두려워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동정'과 '위로'입니다. 이는 고고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며, 서로서로 영적 동반자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인간미를 보여줍니다.
3. 총평
기삐우스의 <헌사>는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영적 갈망이 결합한 걸작입니다. 130여 년 전의 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느끼는 근원적인 고독과 그 안에서 찾고자 하는 자아의 가치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습니다. 낮은 하늘(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높은 영혼(이상)을 믿는 그녀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는 나 자신을
신처럼 사랑한다"
기삐우스의 "나는 나 자신을 신처럼 사랑한다"라는 선언은 단순히 자아도취적인 '나르시시즘'이 아닙니다. 이는 19세기말 러시아의 종교 철학, 니체의 초인 사상, 그리고 상징주의 미학이 결합한 형이상학적 자기 긍정입니다. 구체적인 철학적 해석과 동시대 시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 구절의 무게감을 짚어보겠습니다.
1. 철학적 해석: '신인(神人, God-man)' 사상과 자기애
기삐우스가 말하는 자기애는 인간 내부의 신성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 니체의 영향과 초극: 당시 러시아 지식인들은 니체의 '초인' 사상에 열광했습니다. 기삐우스는 인간이 고통과 고독을 뚫고 자신을 극단적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유한한 '인간'을 넘어선 '신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솔로비요프의 신인(神人) 사상: 러시아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인간과 신이 결합한 '신인'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기삐우스에게 자아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신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내면의 신을 경배하는 종교적 행위가 됩니다.
▪ 구원으로서의 사랑: "사랑이 내 영혼을 구원하리"라는 구절은, 외부의 메시아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무한한 가치를 스스로 긍정하는 힘(사랑)이 나를 죽음과 허무로부터 건져 올린다는 인본주의적 신비주의를 담고 있습니다.
2.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과의 비교
기삐우스는 동시대 시인들과 '고독'과 '자아'라는 키워드를 공유했지만, 그 결은 사뭇 달랐습니다.
<비교 대상: 주요 특징 및 자아관 -> 기삐우스와의 차이점>
•발레리 브류소프 (Valery Bryusov): 장인으로서의 자아. 시인을 예술의 절대적 지배자로 설정함. -> 브류소프가 예술적 '기술'과 '권위'에 집중했다면, 기삐우스는 영혼의 '구원'과 '종교적 합일'에 집중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Alexander Blok): 수동적 자아.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절대적 대상을 기다리고 갈망함. -> 블로크가 외부의 신비로운 대상을 향해 자신을 던졌다면, 기삐우스는 철저히 자기 내면(자아)을 응시하며 주체적 구원을 찾았습니다.
•콘스탄틴 발몬트 (Konstantin Balmont): 순간적 자아. 태양과 불꽃처럼 찰나의 희열과 감각을 찬양함. -> 발몬트가 감각적인 쾌락과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했다면, 기삐우스는 차갑고 명징한 지성으로 '고독한 영혼'의 형이상학을 탐구했습니다.
3. 기삐우스만의 독창성: '고독'의 연대
기삐우스가 다른 상징주의자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고독의 공유"에 있습니다.
많은 데카당트(퇴폐주의자) 시인들이 고독 속에 침잠하여 파멸해 갔다면, 기삐우스는 "우리는 각자 고독하지만, 그 고독을 아는 자들끼리 함께 '동방'으로 가자"라고 제안합니다. 나를 신처럼 사랑하는 주체적인 개인들이 모여 형성하는 '영적 공동체'를 꿈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남편 메레즈콥스키와 함께 평생 추구했던 '제3의 성약' 혹은 '새로운 종교의식'의 맹아입니다.
기삐우스의 동방(東方)
기삐우스의 시와 사상에서 '동방(East)'은 단순한 방위가 아니라, 타락한 현실을 구원할 '영적 빛의 근원'이자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탄생지'를 상징합니다. 이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한계와 기삐우스가 추구한 신비주의적 종교관이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1. '동방'의 구체적 상징성: 빛과 부활
상징주의 문학에서 '서방'이 물질문명의 몰락, 황혼, 죽음을 의미한다면, '동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 엑스 오리엔테 룩스(Ex Oriente Lux): "빛은 동방에서 온다"는 라틴어 격언처럼, 진리는 동쪽에서 태동한다는 믿음입니다. 기삐우스에게 동방은 영혼이 회복되고 신성한 지혜를 얻는 공간입니다.
▪ 새로운 예루살렘: 그녀는 제도화된 교회가 아닌,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 만드는 새로운 종교적 이상향을 '동방'이라는 공간에 투영했습니다.
▪ 수직적 상승: 시에서 "하늘은 나지막한데" 우리는 "동방으로 향한다"라는 표현은, 짓눌린 현실(낮은 하늘)을 벗어나 영적 고양을 이루겠다는 의지입니다.
2.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 비판적 계승
기삐우스와 그녀의 남편 메레즈콥스키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State Church)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도적 교회에 대한 반기
당시 정교회는 차르 체제와 결탁하여 경직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기삐우스는 이를 '죽은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동방'은 정교회의 전통적인 영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화석화된 제도는 거부하는 '제3의 성약(The Third Testament)'의 장소였습니다.
신비주의적 정교회의 재해석
그녀는 정교회의 핵심 가치인 '소보르노스트(Sobornost, 영적 공동체 의식)'를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 개별적 고독+영적 연대: 시에서 "각자는 고독"하지만 "함께 동방으로 향한다"라는 논리는, 개인이 각자 신과 단독으로 만나되(고독), 그 영적 체험을 공유하는 진정한 공동체(동방)를 꿈꾼 것입니다.
3. 요약: 기삐우스의 '동방' 여정
기삐우스에게 동방으로 가는 길은 정교회의 외적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신성을 깨닫고 고독한 타인과 영적으로 결합하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구분: 기성 러시아 정교회 -> 기삐우스의 '동방' (신종교 의식)>
•중심: 교회 제도와 율법 -> 개인의 자유로운 영혼과 사랑
•구원: 교회를 통한 구원 -> 자기 긍정과 영적 연대를 통한 구원
•지향: 과거의 전통 고수 -> 미래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동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