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사랑은 하나
지나이다 기삐우스
한차례 거품으로 끓어오른 뒤
산산이 흩어지는 파도.
심장은 배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배신은 없다. 사랑은 하나.
우리는 화내거나 꾸며대거나
혹은 거짓을 말하지만―심장은 평온하다.
우리는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 영혼은 하나―사랑도 하나.
단조롭고 황폐하게
단조로움으로 단련된
삶이 흘러가고 … 이 기나긴 삶 속에서
사랑은 하나, 언제나 하나.
변치 않음에 영원히
한결같음에는―심오함이.
길이 멀수록 영원은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명백하게―사랑은 하나.
우리가 피로써 사랑의 대가를 치른다 해도.
신실한 영혼은―신실한 법.
하나의 사랑으로 우리는 사랑하니…
죽음이 하나이듯 사랑도 하나.
(1896년)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세계문학 2014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 (4)
작품의 배경과 시평
러시아 은의 시대(Silver Age)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상징주의의 대모, 지나이다 기삐우스(Zinaida Gippius)의 1896년 작 <사랑은 하나)>는 그녀의 형이상학적 철학이 투명하게 드러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시는 연애시를 넘어 존재의 단일성과 영원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과 비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시대적·창작적 배경
19세기말 러시아 상징주의의 태동
1896년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리얼리즘의 시대가 저물고, 내면의 신비와 상징을 중시하는 상징주의가 기지개를 켜던 시기입니다. 기삐우스는 이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 너머의 '본질'을 포착하려 애썼습니다.
'세 명의 결합(The Triple Bond)'
이 시는 그녀의 독특한 애정관을 반영합니다. 기삐우스는 남편인 드미트리 메레쥬꼽스끼와 평생 정신적 동반자로 살았지만, 동시에 '제3의 인물'⁽¹⁾과의 영적 결합을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육체적 탐닉이 아니라, 신의 섭리 안에서 영혼이 하나로 수렴되는 종교적 고행에 가까웠습니다.
2. 시평: 유한한 삶 속의 유일한 절대성
① 배신을 부정하는 심장의 평온
"심장은 배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배신은 없다. 사랑은 하나."
기삐우스는 인간의 변덕(화내거나, 꾸며대거나, 거짓말하는 행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거품'일 뿐이라고 치부합니다. 그녀는 현상적인 흔들림 아래에 있는 '변하지 않는 영적 핵심'에 주목합니다. 본질적인 자아(심장)는 배신할 수 없다는 선언은 사랑을 감정이 아닌 의지이자 진리로 격상시킵니다.
② 단조로움(Monotony)의 미학
"단조롭고 황폐하게...
이 기나긴 삶 속에서 사랑은 하나, 언제나 하나."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단조로움'에 대한 긍정입니다. 보통 단조로움은 지루함이나 권태로 읽히지만, 기삐우스에게 이는 '불변성'의 증거입니다. 삶이 황폐할지라도 사랑이 하나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단조로움은 오히려 영혼을 단련시키는 신성한 수행이 됩니다.
③ 죽음과 사랑의 등치(等値)
"하나의 사랑으로 우리는 사랑하니…
죽음이 하나이듯 사랑도 하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사랑을 '죽음'과 연결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절대적 사건이듯, 사랑 또한 나누어질 수 없는 유일한 사건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는 사랑의 무게를 생명 전체의 무게와 동일하게 두는 비장미를 보여줍니다.
3. 종합적 분석
이 시는 '일자(The One)'⁽²⁾에 대한 갈구를 보여줍니다. 파도처럼 부서지는 일상의 소란 속에서도 시인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지점, 즉 '유일한 사랑'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기삐우스는 여성 시인으로서 당대에 흔했던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어조를 거부하고, 대신 차갑고 명료하며 단단한 문체로 사랑의 형이상학을 구축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죽음만큼이나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註1]
'세 명의 결합(The Triple Bond)'
기삐우스가 시도했던 '제3의 인물'과의 영적 결합 실험에서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비평가이자 작가인 아킴 볼린스키(Akim Volynsky)입니다. 이 실험은 단순히 개인적인 연애 사건이 아니라, 기삐우스가 지향했던 '세 명의 결합(The Triple Bond)'이라는 형이상학적 종교 철학을 실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1. 아킴 볼린스키와의 관계
기삐우스는 남편 메레쥬꼽스끼와 정신적·지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들의 관계 속에 또 다른 영적인 존재(제삼자)를 끌어들여 '완전한 삼위일체'를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볼린스키는 이 실험의 첫 번째 대상이었습니다.
∎ 실험의 성격: 육체적 사랑을 배제하고, 세 사람의 영혼이 신성한 결합을 이루어 지상에서 '신의 나라'를 미리 맛보려는 시도였습니다.
∎ 결과: 하지만 인간적인 질투와 소유욕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볼린스키와의 관계는 갈등과 결별로 끝을 맺게 됩니다.
2. '세 명의 결합' 철학의 본질
기삐우스에게 '2'라는 숫자는 분열과 대립을 의미했지만, '3'은 조화와 완성을 의미했습니다.
∎ 나와 너, 그리고 그(신/제삼자): 부부라는 '둘'의 관계는 고립되기 쉽지만, 그 사이에 매개자나 신성한 존재가 개입함으로써 비로소 사랑이 영원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시적 투영: 앞서 감상한 시 <사랑은 하나>에서 "우리 영혼은 하나"라고 선언하는 대목은, 단순히 남녀 간의 결합을 넘어 이러한 '초월적인 일체감'에 대한 그녀의 집착에 가까운 신념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이후의 전개
볼린스키 이후에도 기삐우스는 작가 드미트리 필로소포프(Dmitry Filosofov)와 함께 이 '삼위일체'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메레쥬꼽스끼, 기삐우스, 필로소포프 세 사람은 수십 년간 공동생활을 하며 러시아 상징주의와 종교 철학의 독특한 가풍을 형성했습니다.
'성스러운 삼위일체'
지나이다 기삐우스와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 드미트리 메레쥬꼽스끼와 드미트리 필로소포프의 관계는 20세기 초 러시아 지성계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강렬한 '영적 삼각관계'로 불립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애정을 넘어, 새로운 종교와 철학을 지상에 구현하려는 하나의 '공동체 실험'이었습니다.
1. 드미트리 메레쥬꼽스끼:
52년간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은 동반자
기삐우스와 메레쥬꼽스끼는 1889년 결혼한 이후, 1941년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52년 동안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내지 않았습니다.
∎ 지적 쌍둥이: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 '지적 쌍둥이'에 가까웠습니다. 기삐우스는 남편의 사상을 날카롭게 비평하고 다듬는 편집자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였으며, 메레쥬꼽스끼는 그녀의 파격적인 사상을 체계화하는 학술적 토대였습니다.
∎ 육체를 초월한 결합: 기삐우스는 육체적인 접촉을 혐오하는 성향이 있었기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철저히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결합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서로의 영혼 속으로 녹아들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남편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2. 드미트리 필로소포프:
'세 명의 결합'을 완성한 마지막 조각
아킴 볼린스키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후, 기삐우스는 비평가이자 귀족이었던 드미트리 필로소포프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기삐우스가 꿈꾸던 '성스러운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완성해 줄 적임자였습니다.
공동생활의 시작: 1905년부터 메레쥬꼽스끼, 기삐우스, 필로소포프 세 사람은 한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매일 밤 함께 기도하고 토론하며, 기독교를 넘어서는 '제3의 성령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 정치적 동지: 이들은 단순한 종교 공동체를 넘어,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정치적 노선도 함께했습니다. 1919년 볼셰비키 정권을 피해 폴란드를 거쳐 파리로 망명할 때도 세 사람은 늘 함께였습니다.
∎ 필로소포프의 갈등: 하지만 필로소포프는 기삐우스의 강한 통제와 집착에 때때로 힘겨워했습니다. 그는 한때 이 관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결국 파리에서 홀로 남겨질 때까지 이 기묘한 유대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3. 이 관계가 추구했던 가치: '미래의 교회'
이들이 왜 굳이 '셋'이어야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성부, 성자, 성령의 재현: 기삐우스는 지상의 인간관계도 천상의 삼위일체를 닮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나'와 '너'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제삼자'가 들어옴으로써 화해시키고 완성한다는 논리였습니다.
∎ 기독교적 유토피아: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새로운 종교적 의식의 중심지'로 여겼습니다. 파리 망명 시절 운영했던 '그린 램프(The Green Lamp)' 문학 살롱은 바로 이러한 이들의 철학이 집약된 장소였습니다.
요약하자면
메레쥬꼽스끼는 기삐우스에게 있어 '나 자신의 연장선이자 뿌리'였고,
필로소포프는 그 뿌리 위에 피어난 '이상적인 영적 열매'였습니다.
기삐우스는 이 두 남자 사이에서 군림하는 여왕이자 사제였으며, 이들의 기묘한 동거는 1940년 필로소포프가 사망하고 1년 뒤 메레쥬꼽스끼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됩니다. 홀로 남겨진 기삐우스는 남편의 전기를 집필하며 남은 생을 보내다 1945년 뒤를 따랐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나면, 아까 보신 시 <사랑은 하나>에서 말하는 "우리 영혼은 하나"라는 선언이 단순히 연인에게 바치는 고백이 아니라, 세 사람의 영혼이 섞여 신에게 닿으려 했던 처절한 의지였음을 느끼게 됩니다.
[註2]
일자(The One)
일자(The One)는 고대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분열과 대립이 사라진 절대적 통일체이자 만물의 근원을 뜻합니다. 기삐우스에게 사랑이란 개별적인 존재들이 이 '일자'의 상태로 회귀하여 영원한 안식을 얻는 신성한 합일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 일자와 신(神)의 관계: 신플라톤주의에서 일자는 종종 '신(theos)'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것은 인격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궁극적 원천이자 최고의 원리라는 의미에서의 신이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의지나 의도를 가진 창조주가 아니며, 세계를 특정한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도 아니다.
일자로부터의 유출은 의식적인 창조 행위가 아니라, 일자의 풍요로움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넘침이다. 플로티노스는 이를 종종 빛의 은유를 통해 설명한다. 마치 태양이 자신의 빛을 자연스럽게 방출하듯이, 일자는 자신의 충만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유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자 개념은 후대 신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특히 야믈리코스와 프로클로스 같은 후기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일자 아래 더 많은 신적 위계를 추가하여, 전통적인 그리스-로마 신들과 동방의 신들을 자신들의 형이상학 체계 안에 통합하려 했다.
기삐우스의 문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인 '일자(The One, Единое)'는 고대 철학에서 시작해 종교적 신비주의로 이어진 형이상학적 개념입니다. 그녀의 시에서 '사랑은 하나'라고 반복될 때, 그 '하나'는 바로 이 '일자'를 의미합니다.
1. 철학적 정의: 만물의 근원이자 종착지
∎ 신플라톤주의(Plotinus): '일자'는 세상 모든 존재가 태어난 근원적인 '단 하나의 실체'입니다. 빛이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듯 세상 만물은 일자로부터 흘러나왔으며(유출설), 모든 존재는 결국 다시 이 '하나'로 돌아가려는 본능적인 갈망을 가집니다.
∎ 분열의 극복: 세상은 나와 너, 선과 악, 육체와 영혼으로 나뉘어 있지만, '일자'의 상태에서는 이 모든 대립이 사라지고 완전한 통일을 이룹니다.
2. 기삐우스의 해석: "둘은 미완성, 셋은 통로"
기삐우스에게 '일자'는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에서 구현해야 할 목표였습니다.
∎ 감정이 아닌 존재론적 사건: 그녀에게 사랑은 감정의 유희가 아니라, 분열된 두(혹은 세) 영혼이 만나 다시 근원적인 '하나(일자)'로 합쳐지는 복원 작업이었습니다.
∎ 불변성: 시에서 "삶이 단조롭고 황폐해도 사랑은 하나"라고 한 이유는, 현상 세계의 변화(황폐함)와 상관없이 '일자'라는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상징적 의미: 죽음과 일자
기삐우스는 "죽음이 하나이듯 사랑도 하나"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죽음을 통해 개별적인 육체를 벗어던지고 우주의 근원(일자)으로 돌아가듯,
진정한 사랑 또한 자아의 벽을 허물고 상대와 완전히 결합하여 '일자'에 도달하는 과정임을 뜻합니다.
"사랑을 원하나
나는 사랑할 수 없노라!"
1. 텍스트 번역 및 분석
이미지 하단의 러시아어 필기체 텍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Мне близок Бог — но не хочу молиться, Хочу любви — и не могу любить!" — Z. Gippius
"...내게 신은 가까이 계시나 — 나는 기도하고 싶지 않네, 사랑을 원하나 — 나는 사랑할 수 없노라!" — Z. 기삐우스
이 구절은 그녀의 1893년 지은 詩 <노래(Песня)>의 마지막 연을 장식하는 핵심 문구입니다.
2. 문구의 배경과 의미
이 짧은 고백은 기삐우스가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영적 갈등'과 '권태'를 상징합니다.
① 신과의 거리감 (신은 가깝지만 기도하기 싫다)
기삐우스는 독실한 신비주의자였지만, 기성 종교의 정형화된 방식(기도)을 거부했습니다. 그녀에게 신은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실체였기에, 관습적인 기도는 오히려 불필요하거나 고통스러운 행위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신을 향한 갈망과 인간적인 오만함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② 사랑의 불가능성 (원하지만 할 수 없다)
그녀는 '사랑'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믿었지만, 동시에 육체적이고 감상적인 사랑에는 깊은 혐오를 느꼈습니다.
"사랑을 원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합일(일자)에 대한 갈망을 뜻합니다.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타락한 현실 세계에서 그런 완벽한 사랑을 구현하기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시인의 절망을 뜻합니다.
③ 러시아 상징주의의 정수
이 문구는 19세기말 러시아 지식인들이 겪었던 '세기말적 우울(Decadence)'을 잘 보여줍니다. 영혼은 높은 곳(신, 사랑)을 지향하지만, 의지는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자기모순'이 이 두 줄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3. 이미지 정보: 1895년의 기삐우스
오른쪽 측면에 세로로 쓰인 날짜 "29-3-95" (1895년 3월 29일)를 통해, 그녀가 20대 중반일 때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문단에서 '데카당스의 여왕'으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속 그녀의 차가우면서도 지적인 눈빛은, 자신이 쓴 글귀처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차마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냉철한 관찰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