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꼰스딴찐 드미뜨리예비치 발몬뜨
나는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꿈으로 붙잡았네
-꼰스딴찐 발몬뜨
나는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꿈으로 붙잡았네,
저무는 날의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나는 탑 위로 올라갔고, 계단이 떨렸네,
내 발밑에서 계단이 떨렸네.
높이 오를수록 더 뚜렷이 보였네,
저 먼 곳의 형체들이 더 두렷이 보였네.
그리고 어떤 소리가 멀리서 울렸네,
하늘과 땅에서 퍼져 나와 내 주위에서 울렸네.
높이 오를수록 더 밝게 빛났네,
졸고 있는 산꼭대기가 더 밝게 빛났네.
마치 작별의 빛으로 애무하듯이,
흐릿한 시선을 부드럽게 애무하듯이.
이윽고 내 아래 저 밑으로 밤이 성큼 다가왔네.
잠든 땅에는 이제 밤이 다가왔는데,
나에게는 한낮의 태양이 빛나고 있었네.
불같은 태양이 저 멀리 소진되고 있었네.
나는 알아냈네,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붙잡는 법을,
어두워가는 날의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나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갔고, 계단이 떨렸네,
내 밭밑에서 계단이 떨렸네. (1894년)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6)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꼰스딴찐 발몬뜨(Konstantin Balmont)의 이 시는, 찰나의 미학을 영원으로 붙잡으려는 인간의 영적 갈망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894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작품을 바탕으로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러시아 상징주의의 서막
역사적·문학적 맥락
이 시가 쓰인 1894년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당시 러시아 지성계는 사실주의의 무거운 사회적 책임감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세계와 신비주의, 그리고 순수 예술의 가치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몬뜨는 이른바 '데카당스(퇴폐주의)'와 '초기 상징주의'를 이끈 인물로,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수직적 공간의 상징성
시 속의 '탑'과 '계단'은 지상(현실)에서 천상(이상)으로 향하는 영혼의 상승을 상징합니다. 19세기 말의 세기말적 불안 속에서 시인은 어둠이 내려앉는 지상을 뒤로하고, 홀로 빛을 향해 올라가는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 시평: 찰나를 영원으로 바꾸는 연금술
빛과 어둠의 이중주
이 시의 가장 뛰어난 지점은 시각적 대비입니다. 지상에는 이미 밤이 찾아와 만물이 잠들었지만, 높이 올라간 시인의 눈앞에는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 지상: 밤, 잠든 땅, 사라져가는 그림자 (유한함, 소멸)
∎ 탑 위: 한낮의 태양, 불같은 빛, 명확한 형체 (무한함, 영원)
시인은 물리적 고도를 높임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시각적 초월'을 경험합니다. 남들이 어둠에 잠길 때 혼자 빛을 보는 행위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 예술가의 예언자적 기질을 드러냅니다.
불안한 계단과 확고한 의지
"계단이 떨렸네, 내 발밑에서 계단이 떨렸네"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합니다. 진리를 향한 상승은 결코 안락한 길이 아닙니다. 발밑이 흔들리는 위태로움(불안과 고독)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더 뚜렷이" 본질을 볼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그림자를 붙잡는 법: 예술의 힘
시의 제목이자 핵심 문구인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꿈으로 붙잡았네"는 발몬뜨 미학의 정수입니다. 그림자는 곧 사라질 운명이지만, 시인은 '꿈(상상력/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박제합니다. 이는 허무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의지입니다.
3. 종합평
이 작품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상승 의지를 다룬 철학적인 시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계단을 오르고,
그 끝에서 소멸해가는 태양의 마지막 찬란함을 목격한다."
발몬뜨는 이 시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다가오는 밤(어둠)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떨리는 계단을 딛고 올라가 지지 않는 태양을 붙잡을 것인가? 그의 시어는 1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자의 가슴 속에 '불같은 태양'의 잔상을 남깁니다.
이미지 속의 시는 발몬뜨의 초기 시집 『끝없는 공간(В безбрежности)』(1895)에 수록된 작품으로, 젊은 시절 그의 열정적이고도 반항적인 영혼이 잘 드러난 수작입니다.
1. 시 번역
[無題]
— 꼰스딴찐 발몬뜨 (1895)
아니, 나는 잠들 수도, 기다릴 수도,
-굴복할 수도 없네 -
심장 속의 일렁임은 커져만 가고 또 커져 가네!
자유로운 바람이
-누군가에게 길들여질 수 있겠는가 -
별들의 강강술래가 빛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 내게는 안식도 필요 없고,
-망각도 필요 없네!
만약 우리에게 행복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
절망의 바다로, 고통의 어두운 심연으로
가장 깊은 바닥까지 나를 던지리라!
2. 시평: 타오르는 불꽃의 미학
안주(安住)를 거부하는 역동성
앞서 감상한 1894년의 시가 '탑 위를 오르는 정적인 고독'을 그렸다면, 이 시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노래합니다. "잠들 수도, 기다릴 수도, 굴복할 수도 없다"는 첫 구절은 현실의 평온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젊은 시인의 선언입니다. 발몬뜨는 자신을 '자유로운 바람'과 '빛나는 별'에 비유하며, 예술가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힘과 같음을 역설합니다.
상징주의적 극단성
이 시에서 가장 강렬한 대목은 마지막 연입니다. 시인은 어설픈 행복이나 평온한 망각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없다면 절망의 가장 깊은 바닥으로 가겠다"는 결기는 상징주의 특유의 극단적 탐미주의를 보여줍니다.
그에게는 '적당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찬란한 빛이 아니라면 차라리 완전한 어둠(심연)을 택하겠다는 이 파토스(Pathos)는,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적 에너지로 연소시키려 했던 발몬뜨의 생애와도 닮아 있습니다.
음악성과 리듬
러시아어 원문을 보면 반복되는 리듬과 강렬한 어조가 느껴집니다. "pastët и pastët(커져만 가고 또 커져 가네)" 같은 표현은 심장의 박동수를 높이는 듯한 효과를 주며,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고조된 감정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3. 종합평
이 시는 "행복보다는 강렬함을, 안식보다는 파멸을" 갈구했던 19세기 말 데카당스 시인들의 전형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위 사진 속 발몬뜨의 깊고 예리한 눈빛이 바로 이 시 속의 "절망의 바다로 몸을 던질 준비가 된" 예술가의 눈빛이 아닐까 싶습니다.
5월 독서 과제 연재물 <나는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꿈으로 붙잡았네>에 이 시를 더불어 감상하신다면, 발몬뜨가 추구했던 '태양의 찬란함' 뒤에 숨겨진 '심연의 어둠'을 함께 보여주는 훌륭한 대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