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by 꼰스딴찐 드미뜨리예비치 발몬뜨

by 김양훈

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꼰스딴찐 발몬뜨

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저 푸른 지평선도.

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저 높은 산들도.


나는 바다를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저 화사한 계곡도.

나는 온 세상을 단일한 시선 속에 가두었노라

나는 모든 것의 주권자.


나는 냉담한 망각을 정복했노라

내 꿈을 창조함으로써.

나는 매 순간 비밀의 계시로 충만하므로

나는 늘 노래하노라.

내 꿈을 일깨운 건 고통이지만

나는 그로 인해 사랑받노라.

내 노래의 힘에 맞설 자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아무도.

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그러나 혹 날이 이미 저물었다면,

나는 노래하리라… 태양을 노래하리라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도! (1902)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10)


문화적 배경과 시평
러시아 상징주의의 선구자, 꼰스딴찐 발몬뜨(Konstantin Balmont)의 대표작인 이 시는 생의 찬란한 긍정과 예술가의 오만한 자부심이 결합된 시작품입니다.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의 역동성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의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문학사적 배경

러시아 상징주의와 '태양'의 이미지

1902년 발표된 이 시는 러시아 문학의 '은세기(Silver Age)'를 활짝 연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당시 러시아 지식인 사회는 세기말적 우울함과 불안에 빠져 있었으나, 발몬뜨는 이를 거부하고 태양, 빛, 불꽃과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노래하며 상징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인상주의적 음악성

발몬뜨는 "나는 소리의 마법사다"라고 자칭할 만큼 시의 음악성을 중시했습니다. 이 시 역시 반복되는 문장 구조와 리듬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마치 찬송가나 선언문을 읽는 듯한 고조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2. 시평:

고통을 딛고 선 예술적 주권자의 선언

태양을 향한 실존적 의지

시의 화자는 단순히 풍경을 구경하러 온 관찰자가 아닙니다.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라는 반복적인 선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빛(진리/예술)'에 두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그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단일한 시선 속에 가두는" 주권자(Sovereign)로서의 자아를 드러냅니다.

고통을 연금술처럼 승화시키는 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고통에 대한 태도입니다.

"내 꿈을 일깨운 건 고통이지만

나는 그로 인해 사랑받노라."

예술가에게 고통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꿈'을 창조하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입니다. 그는 냉담한 망각(죽음이나 허무)을 자신의 창조적 꿈으로 정복하며, 매 순간을 비밀스러운 계시로 채워나갑니다. 여기서 발몬뜨가 추구하는 '범신론적 미학'이 잘 드러납니다.

죽음마저 압도하는 노래의 영원성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운명적인 비극성마저 포용합니다. 설령 해가 지고 죽음이 닥칠지라도, 끝까지 '태양'을 노래하겠다는 결의는 예술의 불멸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 절대적 자유 의지의 표현이며,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3. 요약 및 감상

이 시는 '빛의 시인' 발몬뜨가 세상에 던지는 당당한 명함과 같습니다. 그는 삶의 비극과 고통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황금빛 환희로 바꾸어 놓습니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태양'을 보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소중한 주권자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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