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발레리 야꼬즐레지치 브류소프
형식에 바치는 쏘네뜨
발레리 브류소프
한 송이 꽃의 자태와 향기는
미묘하고도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는 법.
면면들이 연마되어 금강석에서 소생할 때까지
다이아몬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변화무쌍한 공상 속 형상들은
하늘의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갈고 닦여져 완성된 시구 속에서
견고히 굳어 영원히 사는 법.
그러므로 나는 내 모든 꿈들이
말과 빛에 끝끝내 도달하여
바라던 형태를 얻길 바라노라.
나의 벗으로 하여금 시집을 펼쳐
쏘네뜨의 유려함과
고요한 미의 문자에 취하게 하라. (1894)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 (12)
러시아 상징주의의 개척자, 발레리 브류소프(Valery Bryusov)가 1894년에 발표한 이 시는 시의 '형식(Form)' 그 자체를 찬양하는 예술론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러시아 문단은 시대를 지배하던 사실주의와 사회 참여적 경향에서 벗어나, 순수 예술과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하던 과도기에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 담긴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러시아 상징주의의 태동
이 시가 쓰인 1894년은 브류소프가 러시아 상징주의의 서막을 알린 시집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을 발간하던 시기입니다.
▪ 데카당스와 미학주의: 브류소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베를렌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깊게 받았습니다. 그는 시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완벽한 미적 구조물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형식의 미학: 당시 그는 "예술은 오직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태도를 가졌으며, 특히 엄격한 규칙을 가진 '쏘네뜨(Sonnet)' 형식을 통해 자신의 예술 철학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2. 시평: 무정형의 공상을 영원한 보석으로
무색의 탄소에서 금강석으로: 연마의 미학
1연에서 시인은 다이아몬드(금강석)를 비유로 듭니다. 원석은 연마되기 전까지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지만, '면면들이 연마'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이는 시인의 영감이나 감정(원석)이 엄격한 운율과 형식(연마)을 만났을 때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승화됨을 의미합니다.
구름에서 고체로: 찰나의 영원화
2연은 시적 형상의 응고 과정을 보여줍니다.
▪ 공상: 하늘의 구름처럼 형체 없이 떠다니는 가변적인 상태.
▪ 시구: 시인의 노력을 통해 '견고히 굳어진' 상태.
브류소프에게 형식은 흩어져 사라질 운명인 인간의 상상력에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틀입니다.
빛과 말의 결합
3연과 4연에서 시인은 자신의 모든 꿈이 '말'이라는 구체적인 형식을 얻기를 갈망합니다. 여기서 '쏘네뜨'는 단순히 14행의 시 형식을 넘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도구로 묘사됩니다. 독자가 시집을 펼쳤을 때 느끼는 '유려함'과 '고요한 미'는 철저히 계산된 형식미에서 나오는 쾌락입니다.
3. 총평
"형식은 시의 구속이 아니라, 시를 완성하는 해방이다."
브류소프의 「형식에 바치는 쏘네뜨」는 내용보다 형식을 우위에 두는 '주지주의적 미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는 감정을 가공되지 않은 채로 쏟아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대신, 차갑고 단단한 보석을 세공하듯 언어를 다듬어 '영원히 죽지 않는 미'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이 시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진정한 창조란 영감의 분출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아낼 그릇을 빚는 인고의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시인이 1894년에 새겨 넣은 이 '금강석' 같은 시구들은, 그의 호언장담대로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살아남아 우리에게 '미의 문자'를 전하고 있습니다.
옮긴이 이명현 교수의 ‘브류소프’ 소개 글
발레리 야꼬블레비치 브류소프
(Valeri Yakovlevich Bryusov, 1873-1923)
발레리 야꼬블레비치 브류소프는 1873년 12월 1일 모스끄바에서 태어난다. 1893년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접한 그는 당대 문학이 나아갈 유일한 방향은 상징주의와 데까당스라는 확신을 품고서 러시아 데까당의 수장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1894~95년에 그의 주도하에 『러시아의 상징주의자들』(Russkie simvolisty)이라는 제목의 시선집(詩選集)이 세 차례 발간되는데, 거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브류소프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이 치기 어린 실험적인 시선집 발간을 통해서 상징주의 시(詩)의 가능한 전범과 형식들을 모조리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문단으로부터 엄청난 조롱과 혹평을 받았지만, 독자들의 관성화된 미적 취향에 충격을 가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자기중심주의, 에로티시즘, 악마주의와 도회주의를 표방하는 시집 『걸작들』(Chefs d’oeuvre, 1896)을 발표하여 문명(文名)을 떨치고, 발몬뜨를 비롯한 상징주의자들과 교유한다. 1899년 모스끄바 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한 브류소프는 모스끄바의 상징주의자들과 함께 스꼬르삐온 출판사를 설립한다. 이후, 이 출판사는 러시아 상징주의의 가장 뛰어난 저작들의 발행처가 된다.
시집 『세 번째 파수』(Tertia vigilia)가 출간되던 1900년에 브류소프는 이미 상징주의 그룹 내에서 공인된 리더였다. 그는 시를 쓰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일 외에도 뿌시낀에 관한 연구서와 작시법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는 등 문예이론가, 역사학자, 번역가, 드라마 작가로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1903년 출간된 시집 『로마와 세계만방에』(Urbi et orbi)는 그의 창작하는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1903년 잡지 『천칭』(Vesy)을 발간하여 뱌체슬라프 이바노프(Vyacheslav Ivanov), 메레시꼽스끼, 블로끄(A. Blok), 쏠로구쁘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규합한다. 탁월한 리더십과 백과사전적인 지식, 8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 능력, 정교하고 정확한 비평적 통찰력으로 그는 당대 가장 교양 있는 작가이자 문학적 스승으로 추앙받는다. 1904년에는 상징주의 선언문으로 간주하는 에세이 『비밀의 열쇠』(Kluchi tain)를 발표하여 “초감각적인 직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이라는 상징주의적 예술관을 공표한다. 시집 『화관(花冠』(Stepphanos)이 발간된 1905년 혁명 이후 상징주의 내에서 신구(新舊) 세대 간 분열이 일어나고 예술의 본질을 종교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젊은 상징주의자들이 부상한다. 안드레이 벨리(Andrei Bely)를 위시한 젊은 상징주의자들과 논쟁을 펼치던 브류소프는 1909년 문단의 지도적 위치에서 스스로 물러나 1910년부터는 전집 출간 등 그간의 문단 생활을 결산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후 그는 일상적인 삶에 밀착되고, 윤리적인 모티프가 강조되는 시들을 발표하여 세계관의 뚜렷한 변모를 드러낸다.
혁명의 창조적인 힘을 맹신하면서 볼세비끼 혁명을 환영했던 그는 혁명 이후 7년간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문화 관련 각종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곱 권의 시집을 연이어 출간한다. 1921년부터 브류소프는 자신의 발의로 설립된 문학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1924년 10월 9일 폐렴으로 사망한다. 가까운 지인 중에는 그가 모르핀중독의 후유증으로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