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발레리 야꼬블레비치 브류소프
나
발레리 브류소프
내 영혼은 모순의 안갯속에서도 지치지 않았고,
내 정신은 지독한 혼돈 속에서도
-약해지지 않았다.
나는 온갖 몽상들을 사랑하고,
-모든 이야기들이 내게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모든 신들에게 내 시를 바친다.
나는 아스타르테¹와 헤카테²에게 기도를 올라고
신관처럼 손수 백 마리 희생양의 피를 따랐다.
그런 다음 책형 기둥의 발치로 다가가서
죽음처럼 강력한 사랑을 찬미했다.
나는 리케이온³과 아카데미아⁴의 정원을
-찾아가곤 했고,
밀랍 위에 현자들의 경구를 새기곤 했다.
충직한 학생처럼 나는 모두의 총애를 받았지만,
나 자신은 오로지 글쓰기만을 좋아했다.
석상들이 서 있고 노래 흐르는 몽상의 섬에서
나는 불빛 속에, 혹은 등불 없이 소요하였다.
때론 보다 명료하고 물질적인 것에
-경의를 표하며,
때론 그림자들을 예감하며 불안에 떨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모순의 안개를 사랑했고,
열렬히 지독한 혼돈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온갖 몽상들이 달콤하고,
-모든 이야기가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모든 신들에게 내 시를 바친다…
(1899)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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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 (15)
[註]
1) 고대 바빌로니아의 대모신(大母神) 이슈타르의 그리스어 명칭. 미, 사랑, 풍요, 다산의 여신이다.
2)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계(冥界)와 암흑, 마법을 관장하는 여신. 그리스 신화의 여신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3) 기원전 335년 무렵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 근교 리케이온에 설립한 학교
4) 기원전 387년 무렵 플라톤이 아테네에 설립한 학교. 대학교를 뜻하는 ‘아카데미’가 이 단어에서 연원 한다.
러시아 상징주의의 개척자이자 ‘러시아 상징주의의 수장’으로 불리는 발레리 브류소프(Valery Bryusov)의 1899년 시 <나(Я)>는 그의 초기 예술관과 세계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선언적 작품입니다. 이 시에 대한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러시아 상징주의의 태동과 '은세기'
19세기말 러시아 문단은 사실주의(Realism)의 거대한 파도가 지나가고, 인간의 내면과 신비주의, 탐미주의를 강조하는 ‘은세기(Silver Age)’ 문학이 피어나든 시기였습니다. 브류소프는 이 운동의 중심에서 프랑스 상징주의를 러시아에 도입하며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1899년: 전환점의 기록
1899년은 브류소프가 자신의 초기 시적 성과를 정리하고 상징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던 때입니다. 그는 예술이 도덕이나 사회적 메시지에 예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을 지향했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예술가의 독창성과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한 결과물입니다.
2. 작품 해설 및 시평
① 모순과 혼돈의 미학 (Embracing Ambivalence)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반복되는 ‘모순의 안개’와 ‘지독한 혼돈’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는 질서 정연한 이성적 세계보다, 정해진 답이 없는 혼돈 상태에서 더 큰 창조적 영감을 얻습니다. 시인에게 안개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온갖 몽상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의 자궁’과 같습니다.
② 종교적·문화적 싱크레티즘 (Syncretism)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고대 이교(Paganism)와 그리스 철학, 그리고 기독교적 이미지를 하나로 융합한 점입니다.
∎ 이교의 신: 풍요의 아스타르테와 마법의 헤카테에게 기도를 올리고 피의 희생을 치릅니다.
∎ 기독교: ‘책형 기둥’(십자가) 앞에 다가가 사랑을 찬미합니다.
∎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리케이온, 아카데미아를 거닙니다.
이것은 시인이 특정 종교나 사상에 귀속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모든 신에게 시를 바침으로써, 예술이야말로 모든 종교와 철학을 초월하여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임을 역설합니다.
③ 고독한 관찰자이자 창조자로서의 '나'
"충직한 학생처럼 나는 모두의 총애를 받았지만, 나 자신은 오로지 글쓰기만을 좋아했다."
이 구절은 시인의 철저한 예술적 개인주의를 보여줍니다. 그는 세상의 지식과 사랑을 흡수하지만, 결국 그가 머무는 종착지는 타인과의 교감이 아닌 '글쓰기'라는 고독한 행위입니다. 그는 몽상의 섬에서 등불 없이도 소요하는 존재이며, 실재하는 물질(현실)과 보이지 않는 그림자(상징)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영적 순례자’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④ 수미상관의 구조: 반복되는 선언
1연과 5연은 유사한 구조를 반복하며 주제를 강화합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혼돈을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 ‘열렬히 갈구하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한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시적 자아가 혼돈을 두려워하는 단계를 지나, 그 혼돈 속에서 영원한 미적 가치를 발견하겠다는 능동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3. 총평
브류소프의 <나>는 "시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상징주의적 답변입니다.
그에게 시인은 단순히 운율을 맞추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모든 신화와 철학, 빛과 어둠을 자신의 내면이라는 용광로에 넣어 새로운 상징을 주조해 내는 ‘제사장’입니다.
18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시는 구시대의 낡은 도덕관념을 깨부수고, 오직 예술적 영감과 모순의 아름다움만을 따르겠다는 젊은 천재의 오만한 듯 당당한 예술적 독립 선언문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에게 시를 바친다“
이 고백은, 역설적으로 시인 자신이 그 모든 신 위에 군림하는 예술의 창조주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