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附) 블로끄의 장시 『열둘』
옮긴이의 詩 해설
블로끄의 시문학에 대하여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옮긴 이 이명현 교수
대체로 블로끄는 러시아 상징주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간주되지만, 그의 창작적 궤도는 후기로 갈수록 상징주의의 틀에서 현저히 벗어난다. 그가 상징주의를 의식적으로 넘어선 자리에서 러시아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는데, 그것은 서사적 차원으로의 자기 확장을 꾀함으로써 더욱더 심오해지는 서정의 세계이다.
블로끄의 시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서정성 그 자체이다. 그의 시는 자기 내면의 순정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러시아 현대시보다 서정시의 본령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다른 한편, 그의 서정시는 시대와 사회적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점에서 역사성과 당대성에 대한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와 같은 블로끄의 독특한 서정성은 상징주의자들을 비롯한 모더니스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관주의나 유아론에 경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인과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심대한 보편성 획득한다. “시대의 비극적 테너”라는 안나 아흐마또바(Anna Akhmatova)의 비유가 가리키듯이, 시대 전체의 맥박과 리듬에 내밀하고 충실하게 공명하는 것, 여기에 블로끄의 서정시가 지닌 고유한 미덕이 자리한다. 요컨대 그의 시는 가장 서사적인 테마에 대한 가장 서정적인 반향이다.
자신의 모든 시를 세 권의 책으로 엮어서 “인간화이 삼부작”이자 “운문으로 된 소설“이라고 명명했던 시인은 그 소설 속 주인공이 걸어간 길을 테제―반테제―진테제의 변증법으로 이해할 만한 여지를 여러 글 속에 남겼다. 테제 시기는 상징주의 2세대들이 표방했던 신비주의적이고 유토피아주의적인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던 단계였다. 「그대를 예감하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는데」와 「나 어두운 성당으로 들어가」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연작시 「아름다운 부인에 관한 시들」에 속한다. 여기서 ‘아름다운 부인’을 지극히 연모하며 그녀를 기다리는 ‘나’는 ‘아름다운 부인’의 현현(顯現)과 그에 의한 ‘나’와 지상세계의 전변(轉變)을 꿈꾼다. 그런데 ”그러나 나는 두렵소. 그대가 모습을 바꿀까 봐“(「그대를 예감하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는데」)라는 반복되는 시행에서 드러나듯이,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나’의 믿음은 늘 불안한 회의를 동반한다. 여기서 이미 ‘나’의 분열의 징후, 테제가 반테제로 부정되고 전복될 조짐이 보인다.
「미지의 여인」은 반테제 시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미지의 여인’은 성스럽고 고결한 ‘아름다운 부인’의 타락한 형태, 그녀의 패러디이다. ‘미지의 여인’의 외모와 관련된 디테일들은 선술집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그녀의 신분이 매춘부임을 지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서정적 주인공 ‘나’에게 ”매혹의 기슭“ ”매혹의 먼 곳“이 함의하는 ‘아름다운 부인’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그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운 부인‘을 닮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까지나 추하고 끔찍한 ”술 취한 괴물“이다. 이 표현은 술에 취한 서정적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 혹은 그녀와 자신 모두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테제 시기의 시들은 이와 같이 세계와 존재의 정체성이 온통 혼미해지는 혼돈의 양상을 보인다.
블로끄의 시에서 진테제 시기는 완벽하게 조화로운 합일의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진테제 시기의 시들은 세계의 총체적인 분열과 타락, 파국의 정경을 펼쳐 보인다. 「분신」과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죽은 자가 사람들 사이에서」에서 세계는 이제 분신들과 사자(死者)들이 출몰하는 무섭고 끔찍한 ’지옥도‘로 묘사된다. 「밤, 거리 가로등, 약국」에서 그것은 사반세기를 흘러도 똑같이 반복되는 출구 없는 원(圓)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이 비극적이고 무서운 ’지옥‘의 한가운데에 처한 시적 자아는 테제 시기의 정신적 허약함과 반테제 시기의 도덕적 무정부 상태를 극복하면서 선과 악, 미와 추, 허위와 진실을 가려낼 능력과 자격을 갖춘 ’인간‘으로 우뚝 선다. 그는 이제 지상의 삶의 모든 모순과 비극을 용감하게 직시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고 수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와 같은 성숙한 서정적 주인공의 내면을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와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에서 읽을 수 있다.
변증법적 경로를 따라 간
블로끄의 '인간화의 삼부작'
러시아 상징주의의 거장 알렉산드르 블로끄(Alexander Blok)는 자신의 시적 여정을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인간화의 삼부작(Trilogy of Humanization)'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정(Thesis)-반(Antithesis)-합(Synthesis)이라는 변증법적 논리에 따라 전개했습니다. 블로끄의 시적 세계가 어떻게 이 변증법적 경로를 따라 진화했는지 단계별로 설명하겠습니다.
1. 테제(Thesis):
하늘의 신비와 '그대' (제1권)
첫 번째 단계인 '정(Thesis)'은 지고의 미와 신비에 대한 몰입입니다. 블로끄는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소피아(신의 지혜)' 철학에 영향을 받아, 가시적인 세계 너머의 영원한 여성성을 찬양했습니다.
∎ 핵심 키워드: 아름다운 여인(Prekrasnaya Dama), 신비, 순수, 기다림.
∎ 특징: 시인은 성스러운 여인을 기다리는 기사이자 사제로서 존재합니다.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천상적인 빛과 색채, 모호한 상징들이 지배적입니다.
∎ 대표작: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 (1904)
2. 반테제(Antithesis):
지상의 혼돈과 '추락' (제2권)
두 번째 단계인 '반(Antithesis)'은 신비의 붕괴와 지상적 현실로의 추락입니다. 1905년 혁명의 실패와 개인적 삶의 위기를 겪으며, 블로끄는 천상의 환상에서 깨어나 어둡고 습한 도시의 거리로 내려옵니다.
∎ 핵심 키워드: 낯선 여인(Neznakomka), 가면극, 아이러니, 술집(Tavern), 보랏빛 안개.
∎ 특징: '아름다운 여인'은 도시의 매춘부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여인'으로 변모합니다. 숭고했던 신비는 냉소적인 아이러니와 절망으로 뒤바뀌며, 시인은 혼돈과 타락 속에서 방황합니다.
∎ 대표작: 「낯선 여인」, 「인형극」
3. 진테제(Synthesis):
러시아와 역사적 운명 (제3권)
마지막 단계인 '합(Synthesis)'은 개인적인 신비(정)와 파괴적인 현실(반)이 '러시아'라는 거대한 운명 안에서 결합되는 과정입니다. 그는 개인의 고통을 민족과 역사의 고통으로 승화시킵니다.
∎ 핵심 키워드: 러시아, 눈보라, 혁명,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 특징: 블로끄는 러시아를 '나의 아내'라고 부르며, 러시아의 고난과 폭풍 같은 혁명을 필연적인 정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테제의 '신비'가 반테제의 '지상적 폭력'과 만나 혁명의 소용돌이라는 거대한 합을 이룹니다.
∎ 대표작: 「꿀리꼬보 들판에서」, 「열둘(The Twelve)」⁽¹⁾
요약 및 결론
블로끄의 변증법적 경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단계: 철학적 의미-시적 대상-공간적 배경>
•테제(정): 긍정과 신비-아름다운 여인 (천상)-교회, 높은 성
•반테제(반): 부정과 타락-낯선 여인(환영/지상)-도시의 술집, 거리
•진테제(합): 고난을 통한 승화-러시아/민중(역사)-눈보라 치는 러시아 벌판
블로끄는 결국 자신의 시업을 통해 "개인적인 서정의 세계에서 공적인 역사의 세계로" 나아갔으며, 그 정점에서 혁명의 소리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장시「열둘」에 대하여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장시 「열둘(The Twelve)」의 결말에서 혁명군 부대 앞에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장면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심오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왜 블로끄가 도달한 최종적인 '진테제(합)'의 모습인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풀어서 살펴봅니다.
1. '음악'으로서의 혁명:
파괴와 성스러움의 결합
블로끄에게 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낡은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날 때 발생하는 '우주의 음악'이었습니다.
∎ 반테제의 극단: 12명의 붉은 군대 병사들은 거칠고, 욕설을 내뱉으며, 살인을 저지르는 파괴적인 존재들입니다(반테제의 혼돈).
∎ 테제의 투영: 그런데 그 행진의 맨 앞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서 있습니다. 이는 가장 낮고 천한, 심지어 피 묻은 현실(반테제) 속에서도 여전히 성스러운 신성(테제)이 흐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 합(Synthesis): 즉, "파괴를 통한 구원"이라는 역설적인 결합이 일어납니다. 블로끄는 혁명의 폭력성조차 신의 섭리 안에 있는 거대한 변화의 과정으로 본 것입니다.
2. 12명의 병사와 12명의 사도
제목인 '열둘'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 현실: 혁명 당시 순찰을 돌던 12명의 붉은 군대 병사.
∎ 상징: 예수의 12 사도.
블로끄는 이 거친 병사들을 '새로운 시대의 사도'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들이 비록 무지하고 잔인할지라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새로운 세계(신예루살렘)로 향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3. 색채의 대비를 통한 합일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앞서 가노라, 진주빛 눈보라 너머로,/꽃무늬 깃발을 들고,/가시관 대신 하얀 장미 관을 쓰고..."
∎ 붉은 깃발: 혁명의 피와 투쟁 (지상의 현실)
∎ 하얀 장미 관: 순결과 신성 (천상의 이상)
∎ 진주빛 눈보라: 러시아의 자연이자 혼돈의 도가니
여기서 붉은색과 흰색이 섞이는 눈보라는 '정'과 '반'이 뒤섞여 용해되는 진테제의 공간이 됩니다.
4. 왜 이것이 '인간화'의 완성인가?
블로끄는 자신의 삼부작을 '인간화(Humanization)'라고 불렀습니다.
∎ 초기: 인간이 아닌 천상(신비)만 보았고,
∎ 중기: 신이 없는 지옥(도시의 타락)만을 경험했습니다.
∎ 말기(진테제): 비로소 역사의 소용돌이치는 현장 속에서, 고통받고 피 흘리는 인간들 사이에 함께 걷는 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블로끄의 비극적 깨달음
하지만 이 '합'은 평온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블로끄는 이 시를 쓴 직후, 혁명이 가져온 것은 '음악'이 아니라 '침묵'과 '굶주림'이라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시 쓰기를 멈췄고, 얼마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그가 본 그리스도는 혁명을 축복하는 존재였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혁명에 의해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결말은 당시 볼셰비키(무신론자들)와 보수주의자(종교인들) 모두에게 비난받았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때의 그리스도는 '혁명을 이끄는 자'일까요 아니면 '희생되는 자'일까요?
블로끄의 그리스도는
혁명의 인도자인가, 희생자인가
블로끄의 그리스도가 '혁명의 인도자'인지, 아니면 '혁명의 희생자'인지에 대한 질문은 지난 100년간 수많은 학자와 독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온 난제입니다. 블로끄가 평생 추구했던 '음악'과 '변증법'의 논리로 분석해 본 바는 이렇습니다.
1. 그리스도는 '인도자'였다 (희망의 관점)
블로끄는 혁명 초기에 이 파괴적인 힘이 세상을 정화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이유: 구세계의 부패(반테제)를 완전히 불태우려면 그에 걸맞은 거대한 폭풍이 필요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그리스도는 피 묻은 손을 가진 병사들 앞을 걸어가며, 그들의 파괴 행위에 형이상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 결론: "너희의 폭력은 비극적이지만, 그 끝에는 새로운 예루살렘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희생자'였다 (비극의 관점)
하지만 시의 묘사를 자세히 보면 병사들은 뒤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총을 쏩니다.
∎ 이유: 12명의 병사는 자신들 앞에 누가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눈보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갈길뿐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혁명군에 의해 의도치 않게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고독한 신으로 보입니다.
∎ 결론: 혁명의 광기가 신성함마저 삼켜버리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3. 그리스도는 '음악적 정점' 그 자체입니다
블로끄는 이 장시 「열둘(The Twelve)을 쓰고 나서 "오늘 나는 천재다"라고 일기에 적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미를 묻자 "나도 왜 그가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고 답했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모순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입니니다.
테제(성스러움)와 반테제(피비린내 나는 폭력)가 격렬하게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불꽃이 바로 블로끄가 본 그리스도의 실체였을 것입니다.
그는 누군가를 이끌거나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역사가 뒤바뀌는 거대한 폭발의 순간에 나타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마무리하며
블로끄는 결국 이 '합(Synthesis)'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혁명의 소음이 음악이 아닌 비명으로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침묵 속에 죽어갔습니다.
블로끄가 만약 1921년에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아서 스탈린 시대를 보았다면, 그의 '진테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요? 아마도 '침묵' 그 자체가 그의 마지막 단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그리스도는 병사들을 용서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고 있을까요?
[註]
열둘 (The Twelve)
알렉산드르 블로끄
1. 서곡: 검은 밤과 하얀 눈
검은 저녁.
하얀 눈.
바람, 바람!
사람의 발을 휘감네.
바람, 바람 —
하느님의 온 세상 위로!
(바람은 눈을 흩날리고, 구세계의 잔재들—부르주아, 신부, 귀족 여인—이 비틀거리며 지나갑니다. 거리에 붙은 "제헌의회" 벽보가 펄럭입니다.)
2. 12명의 행진
바람은 휘몰아치고, 눈은 흩날리네.
열두 명의 사내가 걸어가네.
검은 총 멜빵, 주위는 온통 불빛.
입에는 담배, 모자에는 배지,
등에는 죄수의 낙인이 찍혀야 할 자들!
자유, 자유,
아, 아, 십자가도 없이!
3. 구세계에 대한 선전포고
우리 아이들이 모두 갔구나
붉은 군대에 복무하러 —
붉은 군대에 복무하러 —
거친 머리를 내맡기러!
(병사들은 구세계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나아갑니다.)
4. 뻬찌까와 까쨔
눈보라 속에서 마차 한 대가 달려가네.
뻬찌까(병사 중 한 명)의 옛 연인 까쨔가 다른 남자(반혁명군 장교)와 함께 있습니다. 뻬찌까는 질투와 분노에 휩싸입니다.
5~6. 비극: 실수로 죽인 연인
열두 명의 병사가 마차를 향해 총을 쏩니다. 장교는 도망치지만, 까쨔가 총에 맞아 눈 위에 쓰러집니다.
"어이, 까쨔, 즐거우냐? ... 쯧쯧, 누워 있구나, 이 년아, 눈 위에!“
7. 죄책감과 행진
뻬찌까는 자신이 죽인 여인 때문에 괴로워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다그칩니다.
"이봐, 동지, 왜 그렇게 풀이 죽었나? ... 지금이 네 유모가 되어줄 때인가?"
그들은 다시 대오를 정비하고 발을 맞춥니다.
8. 잔혹한 서정
오, 너의 고통은 나의 즐거움...
나는 내 시간을 보내리라, 보내리라...
나는 내 머리를 긁으리라, 긁으리라...
나는 해바라기 씨를 씹으리라, 씹으리라...
나는 칼날로 네 가슴을 그으리라, 그으리라!
9. 부르주아의 몰락
거리 모퉁이에 굶주린 개 한 마리가 서 있고, 그 곁에 부르주아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습니다.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감춘 그 개는 '구세계'의 상징입니다.
10. 눈보라 속의 전진
눈보라가 더욱 거세집니다. 병사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행진을 멈추지 않습니다.
"동지! 조심해, 앞을 봐!“
11. 붉은 깃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쏩니다.
"거기 누구냐? 나와라!"
대답하는 것은 오직 메아리와 바람뿐입니다. 그들은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12. 피날레: 그리스도의 등장
... 그렇게 그들은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가네.
뒤에는 굶주린 개가 따라오고,
앞에는 — 피 묻은 깃발을 들고,
눈보라 속에서도 다치지 않은 채,
총알 앞에서도 유유자적하게,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눈 위를 걸으며,
진주빛 눈보라 너머로,
가시관 대신 하얀 장미 관을 쓰고 —
그들 앞을 가노라 — 예수 그리스도가.
감상 포인트
이 시는 출간 직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 혁명가들: "신성모독이다! 왜 혁명군 앞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가?"
∎ 종교인들: "살인마들 앞에 그리스도를 세우다니, 사탄의 짓이다!"
하지만 블로끄에게 이 12명은 세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정화하는 '운명의 도구'였습니다. 시의 리듬은 마치 군화 발자국 소리처럼 '하나, 둘! 하나, 둘!' 하는 박자감을 가지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순간 이 거친 박동은 신비롭고 고요한 찬송의 분위기로 급변하며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