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시쁘 예밀리예비치 만젤시땀
오, 나 얼마나 원하는지
오시쁘 만젤시땀
오, 나 얼마나 원하는지
아무에게도 감지되지 않는 나,
거기에 내가 전혀 없는 저 빛,
그것을 따라 날아가기를.
너는 부디 두루 빛나라,
다른 행복은 없으니.
또한 별들에게 배우라,
빛이 뜻하는 바를.
그것이 광휘인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광명인 이유는 오로지,
속삭임으로 강력하며
혀짤배기소리¹로 따사롭기 때문.
너에게 하고픈 말 있으니,
나는 속삭이며,
속삭임으로, 아이야, 너를
빛에 안겨주노라. (1937)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44)
창작 배경과 시평
오시프 예밀리예비치 만델슈탐(Osip Emilyevich Mandelshtam)의 1937년 시 「오, 나 얼마나 원하는지」라는 그의 생애 가장 어둡고 처절했던 시기에 피어난 역설적인 빛의 기록입니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과 문학적 가치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보로네시의 유배객'
이 시가 쓰인 1937년은 스탈린의 대숙청(Great Purge)이 정점에 달했던 해입니다. 만델슈탐은 1933년 스탈린을 조롱하는 시 「스탈린 에피그램(우리 발밑의 땅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네)」을 쓴 죄로 체포되었고, 고문과 자살 시도 끝에 보로네시(Voronezh)로 유배되었습니다.
∎ 고립과 감시: 당시 그는 사회적으로 매장된 상태였으며,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극심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 보로네시 노트: 이 시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 예술적 불꽃을 태웠던 『보로네시 노트(Voronezh Notebooks)』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육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시인이 도달한 '형이상학적 자유'를 담고 있습니다.
Left, Joseph Stalin; Right- Memorial plaque with photos of victims of the Great Purge who were shot in the Butovo firing range near Moscow.
2. 시 평론:
존재의 소멸을 통한 빛의 완성
① '무(無)'의 상태를 향한 갈망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아무에게도 감지되지 않는 나", "거기에 내가 전혀 없는 저 빛"을 노래합니다. 이는 단순히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스탈린 체제의 삼엄한 감시와 강제적인 자기 과시적 집단주의 속에서, 시인은 차라리 '투명한 존재'가 되어 온전한 빛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자아(ego)가 소멸할 때 비로소 순수한 광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선언입니다.
② 빛의 속성: 별에 배우는 '낮은 언어'
만델슈탐은 빛의 본질을 "속삭임"과 "혀짤배기소리"로 정의합니다.
∎ 권력의 언어 vs 시의 언어: 당시 소련의 공식 언어는 우렁찬 함성과 웅변, 그리고 명령이었습니다. 반면 만델슈탐은 가장 작고 나약한 소리인 '속삭임'이야말로 빛만큼 강력하다고 믿었습니다.
∎ 따사로움의 회복: '혀짤배기소리'는 아이의 옹알이처럼 미숙하지만 순수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비정하고 차가운 공포 정치를 이기는 힘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적인 온기를 품은 낮은 목소리임을 강조합니다.
③ 아이에게 건네는 구원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누군가(혹은 다음 세대인 '아이야')를 "빛에 안겨주노라"고 말합니다. 시인 자신은 고통 속에 스러져가더라도, 자신의 시적 언어(속삭임)를 통해 누군가는 구속 없는 빛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성스러운 헌신이 돋보입니다.
3. 총평
이 시는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서정의 극치입니다. 만델슈탐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시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스스로 빛이 되어 사라지는 길을 택함으로써 예술적 승리를 거둡니다.
"물질적인 존재로서의 시인은 지워지고 있지만, 그의 언어는 '속삭임'이라는 가장 부드러운 수단으로 독재의 고함 소리를 뚫고 영원한 빛의 영역에 안착합니다."
비극적인 천재 시인이 남긴 이 짧은 고백은, 예술이 어떻게 절망을 빛으로 번역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註1]
혀짤배기소리
국가권력의 위압적인 함성과 대조되는 시인만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상징한다. 이는 문명화된 언어 이전의 순수성을 지닌 아이의 옹알이와 같은 소리로, 시인은 이 연약한 소리가 오히려 차가운 세상을 녹이는 빛의 본질(따사로움)에 가장 가깝다고 통찰한다.
만델슈탐의 시에서 '혀짤배기소리'는 그의 시학(poetics)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되는 단어입니다. 시어(詩語)로써의 '혀짤배기소리'가 갖는 그 함축적 의미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립니다.
1. 사전적 의미와 시적 변용
• 사전적 의미: 혀가 짧아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어린아이 같은 소리를 뜻합니다. (러시아어 원어로는 'lisping' 혹은 'babbling'에 가까운 뉘앙스인 'lepet' 계열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시적 변용: 만델슈탐은 이를 단순한 발음의 결함이 아니라, 문명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언어'이자 '생명의 속삭임'으로 격상시켰습니다.
2. 정치적 저항으로서의 '작은 소리'
• 거대 담론에 대한 거부: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소련은 웅변, 행진곡, 고함과 같은 '강하고 명확한 소리'를 강요했습니다.
• 연약함의 승리: 시인은 이에 맞서 가장 나약하고 불완전해 보이는 '혀짤배기소리'를 내세웁니다. 이는 국가의 폭력적인 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시인만의 고유하고 사적인 목소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입니다. 시구에서 이를 "따사롭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은, 날 선 권력의 언어보다 인간적인 미숙함의 언어가 더 구원적임을 시사합니다.
3. 유아적 순수성과 회귀
• 아이야(Child): 마지막 연의 "아이야"라는 호칭과 연결됩니다. 혀짤배기소리는 아이가 세상을 처음 배울 때 내는 소리입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 선 시인은 오히려 생명이 시작되는 지점의 언어를 소환함으로써,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을 초월하여 영원한 순수의 상태(빛)로 돌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