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끄메이즘의 선봉장
옮긴이의 해설
만젤시땀의 詩에 대하여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옮긴이 이명현 교수
만젤시땀은 앞서 소개한 아흐마또바와 함께 아끄메이즘의 핵심 멤버였다. 그가 아끄메이즘 시학을 확고하게 정립한 시기는 1913년 경이지만, 새로운 예술관과 시학에 대한 갈망은 훨씬 전부터 그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08년에 쓰인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의 다음 구절을 보자. “오로지 아동서만 읽고,/오로지 아이 같은 생각만 품을 것./모든 큼지막한 것은 저리 날려버리고,/깊은 슬픔으로부터 우뚝 일어설 것.” 이 시행은 아끄메이즘의 별칭이었던 ‘아담이즘(adamizm)을 상기시킨다. 자신들의 새로운 미적 비전을, 태초에 아담이 세상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단순 명료하게 바라보고 사물을 명명한 것에 빗대고자 함이 이 별칭의 취지다. 지상에 우뚝 서서 아이처럼 아무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형상은 상징주의적인 이데아계에서 하강하여 균형 잡힌 자세로 지상에 직립한 아끄메이스뜨의 탄생을 예고한다.
만젤시땀의 제1의 관심사는 말이었다. 그는 상징주의 같은 예술적 이념이든 사회주의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든 말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것에 저항하였다. 만젤시땀에게 말은 모든 인문적 유산, 즉 예술·문화와 동의어였다. 그러한 말의 창조와 보존은 그의 창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체이다. 「침묵」은 말을 주제로 다룬 초기의 대표작이다. 여기서 말은 아프로디테가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예술의 동의어이다. 그런데 말의 탄생을 주제로 하는 이 시의 제목이 왜 역설적이게도 ’침묵‘인가. 만젤시땀은 이 시에서 침묵과 말의 고전적인 대립 관계를 해체한다. 이 시의 논리에 따르면, 말은 곧 침묵이며 침묵은 곧 음악이다. 태초의 말을 낳은 것은 말 이전의 침묵이며, 따라서 그것은 말-로고스로 창조된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침묵과 말의 관계는 모든 존재의 “파괴할 수 없는 연결”을 지시하며,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음악이다. 한편 “파괴할 수 없는 연결”은 시간의 무상함과 공간적 단절을 극복하는 말과 문화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만젤시땀 시의 궁극적 메시지가 이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노트르담」은 이른바 ’건축시‘ 계열에 속하는 대표작이다. 만젤시땀에게 예술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건축이었다. 빠리의 노트르담은 콘스탄티노플의 성쏘피아 성당, 뻬쩨르부르그의 해군성과 함께 그의 시에서 예술과 문화의 환유로서 기능한다. 언급된 건축물들은 아끄메이즘이 옹호하는 지상적 리얼리티의 구체성·물질성·가시성을 체현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의미는 단지 삼차원적인 구조물이라는 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상적인 건축물, 즉 예술작품으로서의 노트르담은 ’신경‘ ’근육‘ ’늑골‘을 소유한 유기체이자 ’이성‘을 지닌 인간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것은 ’사악한 중력‘에 저항하며 직립한 채 지상에 아름다운 문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인간-예술가의 의지를 표상한다.
만젤시땀은 아끄메이즘을 “세계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진술은 아끄메이즘보다는 그 자신의 창작에 대한 정의로 더 적절하다. 문화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파괴할 수 없는 연결”의 속성을 지닌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이른바 문화의 응축기로 간주하는 도시, 그중에서도 뻬쩨르부르그이다. ‘유럽을 향한 창’으로 불리며,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석조 건축물들이 즐비한 이 도시는 세계문화와 러시아문화의 융합을 무엇보다도 건축적으로 표상한다. 또한 「뻬쩨르부르그의 시」에서 보듯이 이 도시의 풍모는 “거인 같은 러시아”의 역사와 운명을 체현하며, 뿌시낀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위시하여 뻬쩨르부르그를 테마로 삼은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이 도시에 관한 또 다른 시 「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의 시행들 속에는 문화에 대한 지독한 향수, 말과 문화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마지막 시 「오, 나 얼마나 원하는지」에 등장하는 말은 ’속삭임‘과 ’혀짤배기소리‘이다. 이 두 종류의 말은 「뻬쩨르부르그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에 나오는 “축복받은 무의미한 말”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쏘비에뜨의 이데올로기로 오염된 요란하고 거친 말들과 대립한다. 그것은 쏘비에뜨의 언어와 달리 아무 목적도 의도도 없이 자족적인 ’무의미한‘ 말이다. 무엇보다 만젤시땀이 ’속삭이는‘ 그 자신의 시들이 바로 그러한 말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쏘비에뜨의 밤”과 “범세계적 공허”를 뚫고 빛나는 ’태양‘과 ’별‘처럼 영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