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

by 마리나 이바노브나 쯔베따예바

by 김양훈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

마리나 쯔베따예바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

내가 시인인 줄 나도 몰랐던 시절,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듯

로켓에서 불꽃 쏟아지듯 터져 나온 나의 시들,


꿈과 훈향 깃든 성당 안으로

작은 악마들처럼 불시에 잠입한

청춘과 죽음을 노래한 나의 시들,

아무도 읽지 않은 나의 시들!


먼지에 덮인 채 서점마다 널려 있는 나의 시들,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사지 않을

나의 시들에게도, 값비싼 포도주가 그렇듯,

제 차례가 오겠지.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47)


Young Marina Tsvetaeva
마리나 쯔베따예바(Marina Tsvetaeva)의 시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Моим стихам, написанным так рано)>은 그녀가 고작 21세였던 1913년에 쓰였습니다. 이 시는 자신의 문학적 운명에 대한 놀라운 예지력과 자부심, 그리고 고독한 확신을 보여주는 초기 대표작입니다.

1. 창작 배경:

천재성과 고독의 조우

이 시가 쓰인 1913년은 쯔베따예바가 첫 시집 『저녁 앨범』(1910)과 두 번째 시집 『마법 등불』(1912)을 펴낸 직후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문단은 상징주의와 아크메이즘) 등 여러 유파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독자적인 길: 쯔베따예바는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강렬하고 개성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즉각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폭발적 에너지: 시 본문에서 언급되듯,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인 여섯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은 그녀에게 시가 '노력'이 아닌 '본능'임을 의미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견: 쯔베따예바는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의 시가 지닌 영원한 가치를 믿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가 시대를 앞서갔음을 직감했고, 언젠가 올 '자신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시를 썼습니다.


2. 시평:

먼지 쌓인 책장에서 익어가는 포도주

분출하는 생명력과 '작은 악마'

시의 초반부는 창작의 비의도성과 강렬함을 강조합니다. "분수"와 "로켓"의 이미지는 통제할 수 없는 천재성을 상징합니다. 또한, 성당(성스러운 공간)에 침입한 "작은 악마"라는 표현은 그녀의 시가 기존의 관습이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리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청춘과 죽음의 공존

그녀는 시의 주제를 "청춘과 죽음"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가장 찬란한 순간에 소멸을 응시하는 쯔베따예바 특유의 비극적 세계관이 이미 초기작부터 완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값비싼 포도주'의 메타포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포도주 비유입니다.

•소외: 현재 서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아무도 찾지 않는 시의 처지는 비참해 보일 수 있습니다.

•숙성: 그러나 포도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풍미가 깊어지고 가치가 높아집니다. 쯔베따예바는 자신의 시가 대중의 입맛에 맞춘 '값싼 음료'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야 진가를 발휘하는 '빈티지 와인'임을 선언합니다.

3. 총평:

시대를 앞서간 시인의 자존감

"제 차례가 오겠지."

이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확신에 찬 예언입니다. 실제로 쯔베따예바의 시는 그녀가 살아생전 겪었던 망명과 가난, 비극적인 자살 이후에야 비로소 러시아 문학의 정점으로 재평가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의 고독'을 슬픔이 아닌 '기다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걸작입니다.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려는 시인의 뜨거운 자부심이 독자의 가슴을 울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만젤시땀의 시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