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를 모르는 영혼

by 마리나 이바노브나 쯔베따예바

by 김양훈

절도를 모르는 영혼

마리나 쯔베따예바


절도를 모르는 영혼,

태형을 그리워하는

채찍과 광신의 영혼,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처럼

형리를 마중하는 영혼!

더 이상 마녀들을 화형시키지 않는

모욕을 참지 못하는 영혼,

타르 먹인 높다란 새끼줄처럼

고행의 거친 옷 아래 연기 피우며…

이를 부드득 가는 이교도 여인,

싸보나롤라¹의 누이

장작불에 태워 마땅한 영혼! (1921)

[註1] 지롤라모 싸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98). 15세기 후반 이딸리아의 그리스도교 설교가이자 종교개혁가로, 전제군주 및 부패한 성직자들과 맞서 싸우다 화형당했다. 사보나롤라는 설교를 통해 피렌체를 개혁하고, 민주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또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부도덕을 비난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이탈리아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페라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1475년에 도미니코수도회에 들어가기 전에 인문주의, 철학, 의학을 공부했다. 1482년에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회에 파견되어 높은 학식과 금욕 생활로 명성을 얻었고, 그 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공화주의 사상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기조로 한 설교를 했다. 1490년에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당시 지배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를 공격하고, 교회와 속세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보나롤라는 부패한 교회와 정치를 비판한 예언자였지만, 그의 정치는 무능했고 경제가 위축되어 피렌체 시민들은 더는 사보나롤라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4년 만에 실각하여 1498년 화형으로 처형되었다. 이 처형 광경을 피렌체 시청 서기관이 되어 출근한 날에 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시민의 천성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이들에게 어떠한 일을 설득하기는 쉬우나 설득된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말로 되지 않으면 힘으로 믿게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파라오를 굴복시키는 실력이 있었던 모세, 그리고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 역시 무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의 율법이 오랫동안 지켜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예가 있다." (군주론 6장)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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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50)


Marina Tsvetaeva and Sergey Efron in Weddingday
창작배경과 시평
마리나 쯔베따예바의 1921년 작 <절도를 모르는 영혼(Душа, 안 지키는 영혼)>은 시인의 치열한 내면과 타협 없는 예술적 기질을 가장 극렬하게 드러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신앙 고백이나 역사적 회고가 아니라, 혁명과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불길' 속에 던져 넣었던 한 시인의 자기 확인입니다.

1. 창작 배경: 파괴와 결핍의 시대

이 시가 쓰인 1921년은 러시아 역사와 쯔베따예바 개인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 러시아 내전의 막바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이어진 내전으로 러시아는 기근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쯔베따예바의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은 백군(반혁명군) 장교로 참전하여 생사조차 알 수 없던 때였습니다.

∎ 극한의 결핍: 쯔베따예바는 모스크바에서 홀로 두 딸을 키우며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차가운 방에서 가구를 땔감으로 태우며 연명하던 시기였으며, 둘째 딸 ‘이리나’는 끝내 영양실조로 고아원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 절대적 고립: 그녀는 혁명의 광기에 동조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현실에 순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자신만의 법도'를 따르고 있었으며, 그 결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립 속에서 쯔베따예바는 도리어 자신의 영혼이 가진 '길들여지지 않는 속성'을 발견하고 이를 시적 에너지로 폭발시켰습니다.


2. 시평:

타협을 거부한 '불의 영혼'

'절도(節度)'를 모르는 영혼의 파격

제목에서 말하는 '절도를 모르는(안 지키는)' 영혼이란, 사회적 규범이나 이성적 판단,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쯔베따예바에게 시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거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행위였습니다.

가학적 성스러움: 채찍과 고행

시인은 영혼이 "태형을 그리워한다"라거나 "채찍과 광신"을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비판했던 사보나롤라의 광적인 신념과 궤를 같이합니다.

∎ 고통의 환대: 고통(태형, 화형)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중 나가는 모습은, 세속적 안락보다 정신적 고결함이나 예술적 진실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시인의 의지입니다.

∎ 이교도 여인과 마녀: 스스로를 "이교도 여인", 화형당해야 할 "마녀"로 규정하는 것은 당대 러시아의 집단주의적 혁명 열풍 속에서 시인이 느꼈던 이질감과 반골 기질을 상징합니다.

Girolamo Savonarola
사보나롤라와 화형의 이미지

이탈리아의 개혁가 사보나롤라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사보나롤라는 부패한 세상을 정화하려다 결국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 정화(Purification)로서의 불: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장작불에 태워 마땅하다"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자학이 아니라, 타협하는 삶이라는 '모욕'을 견디느니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하겠다는 예술가적 자존심의 발현입니다.

∎ 나비의 변신: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처럼 / 형리를 마중하는 영혼"이라는 표현은 죽음이나 처벌을 통해 오히려 영혼이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역설적인 승화(Sublimation)를 보여줍니다.

3. 총평: 시인이 선택한 자발적 가시관

이 시는 쯔베따예바의 시론(詩論)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영혼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진실을 위해 불태워야 할 땔감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를 '무력 없는 예언자'라며 현실적 무능함을 비판했지만, 쯔베따예바는 오히려 그 비현실적인 고결함과 광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녀는 1921년의 굶주린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육신의 배고픔을 영혼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맞섰습니다.

이 작품은 엄혹한 세상을 견뎌내고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화형대에 올리는 고독한 천재의 장엄한 자기 진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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