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리나 이바노브나 쯔베따예바

by 김양훈

마리나 쯔베따예바


찌푸린 눈썹 아래

마치 내 청춘 같은 집

낮은 내 젊음인 양

나를 맞이한다. “나야, 안녕!”


기분이 징표인

이마, 달라붙은 담쟁이의

망또 아래 숨어

더 넓어질까 쑥스러워하네.


그럴 만하여 나는―실으라! 나르라!―

질척이는 진흙탕 속에서 외치며

내게 맡겨진 허물어져 가는 집들의

이마를 박공¹이라 느낀다.


박물관스러운 박공의

아폴론적인 도약은―나 자신의


이마, 거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나는 딱총나무 가지 같은

시행들 뒤편에서 매일을 마감한다.


온기라곤 전혀 없는 눈동자.

그것은 백오십 년간 텅 비어 있던

정원을 백 년 동안 응시 중인

오래된 유리의 초록빛.


잠처럼 어둠침침한 유리창

그것의 유일한 법칙은

손님을 기다리지 않기,

행인을 비추지 않기.


당면한 현실에 굴하지 않는

눈동자―그래!―

여전히 스스로의 거울이었다.


찌푸린 눈썹 아래

오, 내 청춘의 초록빛이여!

내 가사(袈裟) 그 빛, 내 묵주의 그 빛,

내 두 눈의 그 빛, 내 눈물의 그 빛…


빙 둘러싼 건축물 사이

집―그것은 유물, 집―그것은 대공(大公)

보리수 사이에 숨어 있는

처녀다운


내 영혼의 은판사진²… (1931)

[註]
1) 박공(牔栱, gable)은 맞배지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삼각형의 벽면이다. 아래쪽 벽면의 연장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간혹 아래쪽의 벽과 위쪽의 박공을 다른 소재로 건축하여 지붕이 있는 구역과 벽만 있는 구역을 미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박공의 안쪽 공간은 새로운 층을 지어 다락방으로 활용하거나, 새로운 층을 짓지 않고 아래층이 높게 트이도록 두기도 한다.
2) 은판사진인 다게레오타이프(daguerréotype)는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된 최초의 사진술이다. 루이 다게르에 의해 1839년에 소개되었다. 후대에 개발된 다른 사진술들의 단가가 싸지고 효율이 높아지기 전인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다게레오타이프는 광택을 낸 은판(銀板)을 사용하며, 이 은판을 셰필드 건판이라고 한다.
[제작과정] 우선 은판을 요오드 증기에 노출해서 감광성의 ‘할로겐화 은(銀)’ 피막을 형성시킨다. 이 판을 사진기로 가지고 와 빛이 통하지 않는 건판꽂이에 꽂아 넣는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어두컴컴한 사진기 내부에 보이지 않는 잠상을 만들어낸다. 이후 건판을 뽑아내 뜨거운 수은 증기에 쬐어 현상시킨다. 현상 작업이 끝나고 묽은 티오황산나트륨 용액 또는 뜨거운 포화 소금 용액으로 건판을 씻어내서 ‘할로겐화 은’을 제거한다. 상의 색온도를 높이고 은 입자를 강화시키기 위해 염화금 용액을 붓고 불꽃 위에서 건판을 살짝 가열한다. 마지막으로 건판을 헹구고 말린다. 이렇게 도금을 한 이후에도 건판에 새겨진 상은 매우 연약하고 은 자체가 공기 노출로 변색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건판을 유리로 덮은 뒤 봉한다.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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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51)


작품 배경과 시평
마리나 이바노브나 쯔베따예바(Marina Ivanovna Tsvetaeva)의 1931년 작 <집>(Dom)은 망명 시기 그녀가 겪었던 고립감과 고결한 정신적 자부심이 교차하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건축물로서의 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영혼의 요새'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1. 시대적 배경: 망명과 고립의 1931년

1931년은 쯔베따예바가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든 시기입니다.

•정치적 고립: 그녀는 소련 체제를 거부한 망명객이었으나, 동시에 파리의 백계 러시아인(제정 러시아 지지자) 사회와도 잘 어우러지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시는 너무나 현대적이고 독창적이어서 보수적인 망명 문단에서 배척당했습니다.

•실존적 빈곤: "질척이는 진흙탕"이라는 표현처럼, 그녀의 현실은 비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구걸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오래된 집'은 바로 그러한 현실 속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시인 자신의 투영입니다.

2. 주요 상징 및 시어 분석

① 박공(Gable)과 아폴론적인 도약

시인은 집의 삼각형 벽면인 '박공'을 사람의 '이마'에 비유합니다.

•아폴론적 도약: 그리스 신화의 이성적 신 아폴론을 소환함으로써, 비루한 일상(진흙탕)에서 벗어나 드높은 예술적·정신적 경지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육체는 누추한 곳에 있을지언정 정신은 고전적 엄숙함을 지키겠다는 선언입니다.

② 초록빛 유리와 거절의 미학

"손님을 기다리지 않기", "행인을 비추지 않기"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입니다.

•폐쇄성: 이 집의 창문은 소통을 거부합니다. 150년 동안 비어 있던 정원을 응시하는 "초록빛 유리"는 세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영원 속에 침잠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거울: 외부를 비추지 않는 창문은 결국 "스스로의 거울"이 됩니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정의되는 삶이 아닌, 철저히 자아를 직시하는 삶을 상징합니다.

③ 은판사진(Daguerreotype)의 비유

마지막 구절 "내 영혼의 은판사진"은 매우 정교한 비유입니다.

•불변성과 연약함: 은판사진은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결과물이 매우 섬세하며, 공기에 닿으면 변색하기 쉬워 유리로 밀봉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이처럼 예민하고 고귀하며, 동시에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밀봉된 보석' 같은 것이라 느꼈습니다.

Childhood of Marina Tsvetaeva

3. 종합 평론:

"내면으로 망명한 자의 당당한 고독"

이 시에서 '집'은 거주 공간을 넘어 시인의 시적 자아(Poetic Self) 그 자체입니다.

쯔베따예바는 주변의 현대적 건축물들("빙 둘러싼 건축물") 사이에서 홀로 "유물"이자 "대공(Grand Duke)"처럼 서 있는 낡은 집을 발견합니다. 이는 물질주의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고전적 가치와 고독한 천재성을 고수하는 시인 자신의 초상입니다.

특히 "가사(袈裟)"나 "묵주" 같은 종교적 시어를 사용한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녀에게 시를 쓰는 행위와 고독을 견디는 것은 일종의 고행이자 성스러운 의식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집>은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음으로써 오히려 자기 내면의 우주를 완성하려는 역설적인 승리를 노래합니다. "나야, 안녕!"이라는 첫 대화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인 셈입니다. 그녀는 무너져가는 집들의 이마에서 아폴론의 신전을 보았고, 그 낡은 창문 뒤에서 누구보다 찬란한 '영혼의 은판사진'을 인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 이 시는 쯔베따예바 특유의 파격적인 문장 부호(대시 '―', 느낌표 '!')가 두드러집니다. 이는 그녀의 거친 호흡과 단절된 감정, 그리고 진흙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단호한 정신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Vivre dans le feu - Confessions (Marina Tsvetaeva)
마리나 쯔베따예바의 산문, 일기, 편지들을 엮은 문집의 표지 제목 "Vivre dans le feu : Confessions"(불 속에서 살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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