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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05. 2024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백석 번역 푸시킨 詩] 12월 당원들에게 바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1825, 26세)     


■이 시는 미하일로프스꼬예에 이웃한 뜨리고르스꼬예 마을의 여지주 쁘라스비야 오시뽀바의 딸 예프쁘라끄시야(Evpraksia Brib)의 앨범에 쪽지에 쓰여서 꽂혀있었다. -박형규/이대우 번역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999년)에서     

■1824년 6월까지 4년간 러시아 남쪽 지역에서 유형 생활을 한 푸시킨은 황제의 명에 의해 방면이 되었다. 그리고 황제는 시인 푸시킨을 모스크바로 불렀고, 푸시킨은 결국 1825년 12월 14일 뻬째르브르그에서 일어난 12월 당원의 반란에 참여하지 못했다. 3천 명의 근위대 장교와 병사들이 황제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시인이 대부분이었던 5명의 주모자는 처형되었고 나머지 귀족들은 귀족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처벌받은 귀족의 자제들과 이에 동조한 병사들은 시베리아 등 유형지로 유배당했다.      

푸시킨은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이 주옥같은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불행한 현실에 대한 시각을 나타내었다. 미래를 보고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그래서 이 시에 드러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시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번역시집에서는 이 시가 사실상 푸시킨의 대표작이었지만 백석은 이 시를 자신의 번역시집에 수록하지 못했다. 이는 고정훈 선생이 구전으로 전해준 것이다.     

한편 1947년 12월에 과보권(戈寶權 gē bǎoquán)이 번역하여 초판이 나온 중국 상해판 푸시킨 시집인 보희금문집(普希金pǔxījīn文集)에는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假如生活欺騙了你)’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수록되었다. 아직 중국 대륙 전체가 공산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공산주의 국가가 된 상황에서는 반체제적 은유를 쓴 이 시를 그렇게 쉽게 수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송준 엮음 <백석 번역시 전집(I)> (2013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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