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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07. 2024

겨울 길

[백석의 푸시킨 번역 詩]

굽실거리는 안개 속을

달이 샌다.

슬픈 들판에

슬픈 달빛이 흐른다.  

   

쓸쓸한 겨울 길에

살 같이 달리는 뜨로이까⁰.

언제나 외가락 방울 소리

딸랑소리도 역하고나.     


말모릿군의 기나리¹ 속에

그 무슨 살틀한¹⁻¹ 것 들린다.

정에 격한 소동과도 같이,

가슴 아픈 수심과도 같이...   

  

등불도 꺼먼 오막살이도 없이

외진 벽촌과 눈 뿐...

알락달락한 길 표말이

우뚝 우뚝 서 있을 뿐...  

   

쓸쓸하고나, 서글프고나... 내일은 니나여,

내일은 사랑하는 네게로 돌아 가,

난로 가에 모든 것 다 잊고 앉아

한 없이 너만 그냥 바라 볼란다.   

  

시계 바늘은 똑딱거리며,

제 길을 틀림 없이 뱅뱅 돌아가,

그제²는 시끄러운 사람들과는 멀리

깊은 밤을 너와 나 같이 하리라.   

  

서글프다, 니나여, 쓸쓸한 이 길,

말모릿군 조으느라 말이 없고나,

언제나 외가락 말방울 소리

달은 안개에 어리였다. (1926년, 27세) 


[註]    

■트로이카(삼두마차)⁰ : 트로이카는 러시아의 특유의 교통기관으로서 세 필의 말이 끄는 마차에 두 사람 내지 세 사람이 탈 수 있었다. 보통 때에는 마차로서 이용하다가 겨울이 되면 차바퀴를 떼어내서 차체를 큰 썰매 위에 싣고 달렸다. 그리고서 다시 눈이 녹으면 마차로 전환시켰다. 마부석(馬夫席) 뒤에 포장이 달린 좌석이 있는데, 좌석은 2인승 정도의 좁은 면적으로 마부석보다 낮다. 방울소리를 울리며 눈 쌓인 벌판을 질주하는 이미지는 민요의 서정적 주제가 되어 왔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로서, 러시아에서는 최근 외국인의 이국의 정취를 충족시키기 위해 트로이카 놀이를 겨울 관광코스에 넣었다.

■기나리¹(=긴아리)- 길게 뽑아서 부르는 민요조의 노래. 황해도 일부와 평안도 강서, 용강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의 하나. 바닷가 개펄에서 조개를 주울 때나 밭에서 김을 맬 때 부른다고 한다. 장구 반주도 없이 잔가락을 많이 붙여 일종의 푸념과 같이 목청을 길게 뽑아 부르며 긴아리 뒤에는 자진아리를 연이어 부른다.

■살틀한² -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정성이 있고 지극한.

■그제(際)³ - ‘그때’의 일본어식 표현. 때, 즈음, 기회. その際(さい)

■<겨울 길>은 마치 백석의 시를 보든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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