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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25. 2024

삼의사비 비문

[신축항쟁 뒷이야기-10] 三義士 碑文

“삼의사 비문(三義士 碑文)은
신축민란을이끌었던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
세 장두를기리기 위한 대정읍
청년 후배들의 추모글이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一八九九년 濟州에 포교를 시작한 天主敎는 당시 국제적 세력이 우세했던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그때까지 민간신앙에 의지해 살아왔던 도민의 정서를 무시한 데다 봉세관과 심지어 무뢰배들까지 합세하여 그 폐단이 심하였다.     


신당의 신목을 베어내고 제사를 금했으며 심지어 私刑을 멋대로 하여 성소 경내에서 사람이 죽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에 大靜 고을을 중심으로 일어난 도민 세력인 象武會는 이 같은 상황을 진정하기 위하여 城內로 가던 중 지금의 翰林邑인 明月鎭에서 주장인 吳大鉉이 천주교 측에 체포됨으로써 그 뜻마저 좌절되고 만다. 


이에 분기한 李在秀 姜遇伯 등은 二鎭으로 나누어 섬을 돌며 민병을 규합하고 교도들을 붙잡으니 민란으로 치닫게 된 경위가 이러했다.     


규합한 민병 수천 명이 濟州市 외곽 黃蛇坪에 집결하여 수차례 접전 끝에 濟州城을 함락하니 一九ㅇ一년 五월 二十八일의 일이었다.    

 

이미 입은 피해와 억울함으로 분노한 민병들은 觀德亭 마당에서 천주교도 수백 명을 살상하니 무리한 포교가 빚은 큰 비극이었다.     


천주교 측의 제보로 프랑스의 함대가 출동하였으며 朝鮮 조정에서도 察理御使 黃耆淵이 이끄는 군대가 진입해 와 난은 진압되고 세 장두는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재판 과정을 거친 후에 처형되었다.  

   

장두들은 끝까지 의연하여 제주 男兒의 기개를 보였으며 그들의 시신은 서울 靑波洞 만리재에 묻었다고 전해 오나 거두지 못하였다. 

    

대정은 본시 의기남아의 고장으로 조선 후기 이곳은 민중봉기의 진원지가 되어왔는데 一八ㅇ一년은 黃嗣永의 백서사건으로 그의 아내 丁蘭珠가 유배되어 온 후 딱 一ㅇㅇ년만에 일어난 李在秀亂은 후세에 암시하는 바가 자못 크다.     


一九六一년 辛丑에 향민들이 정성을 모아 「濟州大靜郡三義士碑」를 대정고을 홍살문 거리에 세웠던 것이 도로확장 등 사정으로 옮겨 다니며 마모되고 초라하여 이제 여기 대정고을 청년들이 새 단장으로 비를 세워 후세에 기리고자 한다.‘


당돌했던 이순옥은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추모비라도 세워달라고 조선총독에게까지 탄원서를 보냈다. 1928년 그해, 그녀는 스물두 살 처녀였다. 그러나 총독 각하는 당연히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강점기 내내 이어진 천주교회와 일제의 우호적인 관계를 그녀는 알 리 없었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오빠의 의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재수의 실기 ’야월(夜月)의 한라산‘을 준비했다. 그녀는 국내에서 자신의 책을 출간할 방법이 없자 오사카로 건너가 바느질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은 후 한경면 훈장 출신 조무빈(趙武彬) 선생을 찾아갔다. 그녀의 구술원고를 다듬은 조무빈 선생은 1931년 오사카에 있는 중도문화당(中島文華堂)에서 <야월의 한라산-이재수의 실기>를 출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오라비의 실기를 들고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사람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며 오빠 이재수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 뛰어다녔다. 이후 평리원에서 엉터리 재판을 받고 처형된 뒤 청파동 죄수 묘지에 묻혔다는 오빠의 유골을 찾는 일에 매달렸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해방 후 이순옥은 각고의 노력 끝에 대정 홍살문 거리에 오빠 이재수를 비롯한 세 장두를 기리는 제주대정군삼의사비를 세웠다그 해는 1961묘하게도 신축제주항쟁 후 첫 육갑이었다그러나 그 삼의사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적이 드문 드랫물에 버려졌다천주교 측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7년 마을 청년회가 새로운삼의사비를 세우면서 그녀가 세웠던삼의사비는 그 아래 땅속에 묻어버렸다     

-2020년 12월 31일 자 한라일보 <김양훈의 한라시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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