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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Aug 29. 2024

풍자화는 사치품, 무지개

장 자끄 상뻬 著 <뉴욕의 상뻬> p71-72

L-전 ‘텔레라마’ 편집장 겸 대표 마르크 르카르팡티에
S-장 자끄 상뻬(Jean-Jacques Sempé) <<인터뷰>> 발췌

L: 풍자화는 보는 사람의 지성에 호소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S: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 

L: 그럼 고귀하군요.

S: 그래요. 내가 보기에 풍자화가들은 왕족입니다. 고귀함 그 자체죠.

L: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타인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S: 포도주 따개를 발명한 사람이나, 의자를 발명한 사람이나, 망치를 발명한 사람이나, 못을 발명한 사람이나, 다들 자신도 모르게 타인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이바지를 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L: 맞습니다. 그렇지만 풍자화에는 그런 것들과 비슷한 실용적인 기능은 없지요. 

S: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풍자화를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치품 없이 살 수 없어요. 산다고 해도 재미없게 살게 되지요. 사치품은 무지개입니다. 항상 비가 내리는 브르타뉴 지방에서 산다고 해봅시다. 살기야 살죠. 하지만 하늘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겠지요. 

L: 그러니까 풍자화는 무지개와 같다?

S: 그렇네요! 물론 잘 그렸을 때 그렇다는 말이지만!

L: 그 무지개는 현실에서 도피하게 해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S: 내 경우에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분명 모두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서전을 쓰는 게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자신에게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싶은 거예요. 나는 그런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비웃고 싶지는 않아요. 

L: 선생이 실제로 비웃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까?

S: 일종의 속물근성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그림에서 그런 것들을 꼬집는 편이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속물 기질이 있는 한 여자가 다른 속물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눠요. “샤를 앙드레와 난 예전에 데이트하던 시절, 관념적으로 말해 서로 속고 속이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살고 있어.” 요컨대 이런 것들이지요.

L: 풍자화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합니까? 타인의 실수까지도 말입니다. 

S: 맞아요, 맞습니다. 나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삽화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위험한 건 남의 실수를 표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고, 그러므로 많이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나와 난처해지지요. 

L: 그림과 관련해 모욕적인 편지를 받은 적이 혹시 있습니까?

S: 네, 한 번! 장 폴 사르트르에 관한 그림이었는데, 사르트르를 공격하는 내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 농부가 신문에서 “장 풀 사르트르의 유산은 어떻게 되나?”라는 기사를 읽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지요.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쁜 뜻이라곤 전혀 없어요. 그런데 누가 그 그림 위에 마구 낙서를 해서 나에게 도로 보냈더라고요!    


- 장 자끄 상뻬 著 <뉴욕의 상뻬>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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