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적 산문(詩的 散文)②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루어진 그곳
그 꿈을 꾼 것은 2014년 여름,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그 후 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꿈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도시에 대한 꿈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빠르고 직관적이었던 그 결론은 내 오해였거나 너무 단순한 이해였는지도 모른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스무날 가까이 열대야가 계속되던 무렵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거실의 고장 난 에어컨 아래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찬물 샤워를 이미 수차례 했지만, 땀에 젖은 몸은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있어도 식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 경에야 약간 기온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삼십 분 뒤면 다시 해가 떠오를 테니 짧게 찾아오는 은총이었다. 마침내 잠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 거의 잠들었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감은 눈꺼풀 속으로 별안간 그 벌판이 밀려 들어왔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던 눈발이, 잘린 우듬지마다 소금처럼 쌓여 빛나던 눈송이들이 생시처럼 생생했다.
그때 왜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과 같은 떨림이었지만, 눈물 같은 건 흐르지도, 고이지도 않았다. 그걸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이라고, 전율이라고, 돌연한 고통이라고? 아니, 그건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각성 같은 거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이―사람의 힘으로 들어 올릴 수도 없을 무거운 쇳날이―허공에 떠서 내 몸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마주 올려다보며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봉분 아래의 뼈들을 휩쓸어가기 위해 밀려들어 오던 그 시퍼런 바다가, 학살당한 사람들과 그 후의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다만 개인적인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루어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1부 「새」 (11~12쪽)